20대엔 좋아하는 가수가 콘서트를 하면 꼬박꼬박 예매해서 갔었다. 콘서트에 가는 것을 꽤나 좋아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가지 않게 된 건 우울증이 깊어지면서 무기력에 시달렸기에 먹고사는 생업 조차 겨우겨우 하면서 인 것 같다. 가끔씩 무료티켓이 생기면 한 번씩 가곤 했지만 20대 시절만큼 즐기질 못했다. 콘서트 가는 것만큼이나 음악 듣는 것도 참 좋아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음악도 거의 듣지 않았다. 우울증은 참 알 수 없는 병이다. 좋아하는 것마저 할 수 없게 만들어주는 어찌 보면 무서운 병.
10월에 종영한 '슈퍼밴드 2'에서 알게 된 락밴드'크랙실버'에 빠지면서 한동안 잊고 지내던 음악을 들을 수 있었고 들으면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크랙실버를 반드시 만나고 싶다!'라는 마음이 강렬해서 정말 오랜만에 콘서트에 갔다. <슈퍼밴드 2 콘서트>
이러한 움직임, 정말 오랜만이다. 2년 전 슈퍼밴드 시즌1 콘서트도 가고 싶었지만 결국 움직이지 못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꽤나 후회되는 무기력이다.
크랙실버를 가장 좋아하긴 하지만 슈퍼밴드 2 결선에 오른 6팀 중 누가 우승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모두가 실력이 출중하고 좋은 음악을 해주는 뮤지션이다보니 모든 팀의 무대가 기대되었다. 대중교통으로 왕복 3시간 거리의 올림픽공원. 공연을 보기 위해 오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라 지하철역 출구를 나오자마자 알 수 없는 감동이 느껴졌다. 내가 지금 공연을 보러 가고 있구나..
현장 발권을 하고 코로나 백신 접종 증명서를 확인하고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 코로나 덕분인지 모두가 거리두기 좌석이었기 때문에 옆자리가 비어있어 여유로운 것은 좋았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면서 들리는 사운드에 깜짝 놀랐다. 너무 오랜만에 듣는 공연장 사운드. TV나 컴퓨터(유튜브 등)로 들을 수 있는 사운드랑은 확연한 차이가 났고 내가 공연장에 있다는 것을 실감이나 눈물이 찔끔 나왔다.
공연이 시작되었는데도 아무도 함성과 환호를 하지 않았다. 시간 촉박하게 입장하느라 안내사항을 제대로 못 봤는데, 관객에게 함성, 환호 같은 목소리를 내는 행위가 금지되어 있었다. 무대 위 뮤지션과 소통하는 방법은 박수와 팔을 흔드는 정도? 밖에 없었다. 처음엔 당연하다 생각하고 얌전히 따랐는데 3시간 반이 넘는 공연 내내 목소리를 못 내니 죽을 맛이었다. ㅠㅠ 다시 생각해도 울고 싶다. 뮤지션 윌리K님이 멘트로 "어제 공연에서 박수를 너무 쳐서 손이 부었다는 후기가 많더라고요. 박수치기 힘드시면 팔을 이렇게 올려서 흔들어보세요."라고 친절하게 말해줬을 때는 이미 2시간이 넘었었는데 그 말을 듣고 내 손을 보니 정말 손이 퉁퉁 부어있었다.(ㅋㅋ)
오랜만에 간 콘서트, 올림픽 체조경기장(KSOP DOME)에 입장한 자체로도 감동, 그 안에서 뮤지션들의 공연을 보고 듣는 것도 참 감동이었다. 내 귀는 오랜만에 찐 사운드에 열일을 했다. 3시간 반 넘는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소름이 돋고 무수한 감동을 했던지. 내가 좋아하던 음악을 너무 등한시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나 이렇게나 음악을 좋아하는데. 뭐가 그렇게 바빠서 그동안 이러한 즐거움을 잊고 살았을까.
무수한 소름과 감동을 느꼈지만 공연과 음악을 온전히 즐기기는 어려웠다. 평소 습관대로 부분에 집착했다. 이러한 나의 특성을 깨달은 건 비교적 최근이다. 그래서 여행이든 독서든 온전히 즐기질 못한다. 뭐.. 27명의 뮤지션 한 명 한 명을 눈에 담고 싶었던 욕구가 있었나 보다. 멀어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 나는 보컬, 드럼, 기타, 베이스, 거문고, 디제잉 등 악기 연주하는 모습을 내 눈에 담고 싶어서 시선을 자주 옮겼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집착이 온전히 음악을 즐기는 걸 방해한 것이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즐겨야 하는데... 공연을 보면서도 내가 부분에 집착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내려놓는 여유로움이 잘 되지 않았다. 콘서트장을 나오고 이 부분이 조금 아쉬웠다. 이 좋은 공연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 같아서.
그럼에도 긴 공연 동안 좋은 뮤지션들이 선사해주는 사운드에 많은 감동과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음악을 얼마나 좋아하는 사람인지도 느낄 수 있어서 힐링이 필요할 때 공연장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요새는 뭘 하면 내가 즐거운 지도 가물가물하다 보니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을 때마다 감사하다. 물론 예전에도 좋아했는데 무엇 때문인지 잊고 지냈던 것이지만.
"여러분, 소리 못 질러서 답답하시죠. 저희가 마음껏 질러드릴 테니까 답답해도 참아주세요!"
뮤지션 빈센트님의 말씀.
답답했다. 과거에 누렸던 것을 못 누리는 그 답답함. 코로나가 정말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그래도 거리두기로 인해 여유로운 좌석에서 편하게 공연을 보고, 서로를 위해 그러한 답답함을 함께 참아가며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의 매너에 감동을 하기도 했다. 함성소리가 없어서 공연에 뭔가가 빠진 느낌이 들긴 했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 함성소리가 섞이지 않은 라이브 사운드를 들을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라는 생각도 든다.
27명의 뮤지션 모두가 최선을 다해주어서 답답했지만 감사하고 만족했던 공연. 그리고 내 어딘가 죽어있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다시금 느낄 수 있던 기회. 나에게는 많은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하루빨리 코로나가 끝나서 공연에서 마음껏 환호하며 나 자신도 즐기고 좋아하는 뮤지션들을 목청 높여 응원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