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공감 04 >
외국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대해 놀라는 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공중화장실이다.
"이렇게 깨끗한 화장실을 공짜로 사용한다고?"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나 공중화장실이 잘 갖춰져 있다. 미국과 유럽처럼 돈을 내고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일본처럼 편의점을 이용하며 화장실을 써도 되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
다른 하나는 집집마다 현관 앞에 놓여 있는 택배 또는 커피숍에서 자리를 맡기 위해 올려 놓은 핸드폰이나 차 키 등을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럽 여행가서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 낚아채 가려고 해서 큰 일 날뻔 했어."
이런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다 보면 우리나라가 '아직은 살 만한 나라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나만의 국뽕일까?
물론 이렇게 택배나 커피숍의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는 이유는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게 들어 온 "도둑질 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물론 사방에서 시시각각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CCTV"도 한 몫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어쨌든 이렇게 서로를 '믿고 사는'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집을 가거나 문 앞에 쌓여 있는 '택배'를 볼 수 있다.
나는 아파트에서 살다보니 택배 '배달 사고'를 가끔 겪는다. 택배 배달기사님들이 모양이 비슷한 집앞까지 하루에도 수십 개의 택배를 배달해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구나 싶다.
집의 초인종이 울려서 현관문을 열어보면 주문한 택배만 남기고, 모습은 안 보이는 택배 기사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어쨌든 아파트에는 동이나 호수를 착각해서 다른 사람의 택배를 받거나 내 물건이 다른 집으로 가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운 좋게 잘못 받은 분들이 친철하게 가져다주시거나 잘못 배송된 집으로 가서 찾아오거나 반대로 잘못 받은 물건의 주인을 찾아주기도 한다.
한번은 택배로 쌀을 배달시킨 적이 있었다. '총알 배송', '로켓 배송' 같은 말처럼 아침에 주문한 쌀이 저녁에 퇴근해서 보니 벌써 도착해 있었다. 가족들과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햅쌀에 김치를 척 올려서 먹고 있는데 집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아래층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아래층에 살고 계신 아저씨였다.
"혹시 이 집으로 배달된 쌀이 있지 않나요?"
"네, 아침에 배달시켰는데 저녁에 와서."
"그거 저희 집이 배달시킨 쌀 같은데."
나는 당황해서 배달된 쌀에 붙은 송장을 살폈다. 주소가 아래집? 쌀포대를 다시 보니 내가 시킨 거랑은 좀 달랐다.
어쩐지 밥 맛도 평소 시킨 것보다 유난히 맛있더라니.
급하게 저녁을 하느라 제대로 확인을 못한 것이다. 아래집 아저씨에게 머쓱하게 웃으면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쌀값을 현금으로 건네면서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튿날.
"좀 확인을 하고 쌀 포대를 뜯지."
돌아온 아내의 잔소리와 함께 원래 주문한 쌀 한 가마니를 더 받았다. 집안에 쌀이 두 가마니가 쌓이니 뭔가 든든한 느낌!
어느 날에 직장동료 분과 택배 얘기를 하는데 그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절대로 '총알 배송', '로켓 배송'은 안 시켜요."
"아니, 왜요?빠른데."
"그렇게 배송하려면 새벽부터 분류 작업해야 하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배달해야 해서 택배 기사님들 건강에 문제 생기요."
그 동료 분의 말씀을 듣고 나니 다시 한 번 택배 기사님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는 동시에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혹시 나의 편리함 때문에 다른 누군가 힘이 든 것은 아닌지.
오늘은 휴가여서 도서관이고, 글을 쓰다보니 점심시간이라 노트북과 소지품을 자리에 놓고 얼른 밥을 먹고 돌아왔다.
제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는 노트북과 내 물건들. 미국에서 발생하는 '총기 사고'에 대한 뉴스를 들을 때와 같은 마음으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지키는 것은 '총'이 아니라 '믿음'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