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해결이 아니고 공감"

<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공감 06 >

by 달여울 작가

SNS 상에 떠도는 '좋은 남자친구 테스트'를 위한 재미있는 질문이 하나 있다.


"여자 친구가 새 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런데 새로 칠하는 중인 페인트 냄새에 여자친구가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다고 한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이 질문에 어떤 사람들은 "창문을 열라고 해야지." 또는 "냄새가 나지 않는 친환경 페인트를 써야 하는 거 아닐까?"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대답들은 예상하듯이 '좋은 남자친구 테스트에서 낙점에 해당되는 답변이라고 한다.


여자친구들이 선호하는 모범 답변은 "아, 그래? 머리 많이 아파? 괜찮아?" 또는 "아파? 내가 데리러 갈까?" 등이다.

이미 페인트는 칠해져 있고, 머리는 아픈 상황이라 남자친구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녀가 지금 이 순간에 필요한 것은 '괜찮냐'라는 걱정과 상황에 대한 공감 뿐이다.


기혼자로서 나도 가끔 아내에게서 이와 비슷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형편없는 오답을 말하고는 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회사에서 동료직원과 어떠어떠한 일로 다퉜어. 그 직원은 정말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아내가 이렇게 얘기할 때 나는 "그 상황에서 그 직원은 이러이러해서 그렇게 한 거 아닐까? 그 부분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잘 알아듣게 얘기하고, 당신도 이러저러하게 하면 어떻겠어?" 라고 대답한다. 내 얘기를 들은 아내의 표정은 어둡다.


아내가 나에게서 듣고 싶었던 말은 간단하다.


"그러게. 그 직원은 정말 왜 그럴까."


불합리한 이유로, 그리고 무례하고 태도로 자신을 대한 동료에 대해 화가 난 자신의 감정에 대해 공감을 원했던 것이다.


내가 했던 말 중에서 정말로 더 최악의 사례가 하나 더 있다.

아내가 직장에서 정말로 하루동안 여러 가지 힘든 일을 겪은 날 저녁. 퇴근 이후에 하루 종일 있었던 일들 중에서 기분이 상했던 일들을 하나 둘씩 얘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도 잘 들어주려고 노력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집중력은 떨어지고 나도 모르게 내 마음에도 피로감이 조금씩 밀려왔다.


"있잖아. 힘들었겠네. 그런데 말이야."


나는 조금 뜸을 들인 뒤에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말았다.


"회사 일은 퇴근 이후에 집에서는 가능하면 떠올리지 않으면 어떨까? 집에 들어오면 회사 일은 그냥 잊고. 맛있는 음식 먹고, 좋아하는 드라마 같은 거 보고."


아내의 표정은 급격하게 굳어졌고, 며칠동안 화가 난 듯이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물론 내 나름대로는 이렇게 말한 것에 대한 변명이 있다.


나는 "집에서의 감정은 출근할 때 집에 두고, 회사에서의 감정은 퇴근할 때 회사에 두고 오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집과 회사에서 생겨난 불편한 감정들은 그것을 계속 이어간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다른 공간으로 끌고 가면 집과 회사 모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계속 나쁜 감정에 몰입하면 내 에너지만 소모될 뿐이고.


나의 이런 생각과 회사일에 묶여서 힘들어하는 아내에 대한 걱정은 그 속에 담긴 내 선의와 달리 아내에게는 서운함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이 사람은 내 말을 들어주고, 내 감정에 대해 공감해 주려는 마음이 전혀 없는 건가?'


아내는 아마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내와의 대화에서 내가 '저지른' 오답들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반면교사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사실은 나도 '회사와 집에서의 감정을 다른 공간으로 끌고 가지 않는다'는 내 나름의 원칙에도 집에 오면 어린아이가 되고 싶은 때가 있다.


"있잖아. 오늘 회사에서 부장한테 이러이러한 일로 엄청 깨졌는데. 내가 만만한가? 왜 나한테만 그러는지 몰라."


내 부정적인 감정들을 아내에게 나누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가도 정말 힘든 날은 이렇게 하소연하고 싶은 때가 있다.


아마도 아내에게도 그 날은 그렇게 힘든 날이 아니었을까?

나도 '해결'이 아닌 '공감'을 해주는 좋은 남편이 되고 싶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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