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공감 08 >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도시로 나온 지 삼십 년이 넘었는데 부모님은 여전히 텃밭을 가꾸신다. 자식들 교육 때문에 천직이라 생각한 "농사"를 접으신 미련 때문인지 두 분은 다른 일을 하시면서도 틈틈히 살뜰하게 농작물을 가꾸신다.
"농작물이 자라고 있는 거 보고 얼마나 흐믓한 지 몰라."
농막에서 아버지는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연신 닦으면서 막걸리 한 잔을 쭉 들이키신 후에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나도 어린 시절에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거둔 적이 있어서 씨를 심고, 가꾸고 수확하는 기쁨을 모르지는 않는다. 대학때도 방학 때면 시골에 "농활"을 자처해서 가기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참 지난 일이라 만약 지금 농사일을 하라고 하면 엄두가 나지 않는 게 사실이다.
농사는 정말로 부지런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씨도 심고, 매일 물도 줘야 하고 틈틈히 잡초도 뽑고 거름도 줘야 하는 그 수고로움. 집에 있는 화초의 물도 꼬박꼬박 챙기는 걸 잊어서 시들시들하게 만든 것이 한 두번 인가.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쳐져 있는 화분의 난을 보면 주인 잘못 만나서 고생한다 싶어서 안쓰럽다.
어쨌든 부모님은 농사 일이 그렇게 재미 있으신 모양이다. 이름도 다 모를 봄나물, 드릅, 상추, 파, 고추부터 옥수수와 사과나무, 배나무, 밤나무와 감나무. 그리고 포도넝쿨까지. 언제 종류별로 심어 놓고 키우신건지 한 번씩 밭에 들를 때면 두 분의 이런 바지런함에 존경심이 저절로 든다.
가을은 농사를 짓는 이들에게는 최고의 계절. 바로 본격적인 수확의 계절이다. 매년 가을이 되면 엄마와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게 된다.
"감을 좀 보내 주려는데 보내 주면 먹으려는지?"
"응. 조금만요."
"고추가루를 빻아 놨는데 택배로 붙여 줄까?"
"응. 조금만요."
"마늘은 필요 없지?"
"어.. 마늘이요?"
엄마의 마늘 얘기에 갑자기 말문이 막혀 침묵을 해야 했다. 엄마는 늘 '조금' 보낼 테니 먹으려는지 라고 물어 보신다.
자식으로서 차마 '거절'하기 어려운 '고급 스킬'이다.
지난 여름. 퇴근 무렵에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옥수수가 제철이라 지금 먹어야 맛있는데. 여름 휴가 때에 오면 너무 늦는데. '조금' 보내주면 먹으려는지?"
엄마의 말 속에는 제철이라 맛있는 옥수수를 아들, 며느리와 손녀들에게 먹이고 싶은 바람이 들어 있었다. 그런 마음을 자식으로서 어떻게 거부할 수 있을까?
"응. 알았어요. 조금만 보내줘요."
"아, 그래. 내일 아빠한테 택배로 부치라고 할게."
아들의 대답에 엄마는 반색을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이틀 뒤. 퇴근을 해 보니 집에 커다란 택배 한 상자가 와 있었다.
설마? 급하게 택배를 열어보니 상자 안에 옥수수 '한 접'이 들어 있었다. 한 접은 10개도 아닌 100개다.
네 식구가 사는 집이라 집에는 커다란 양은 통이 없다. 싱크대 밑을 뒤져서 그나마 제일 큰 냄배를 꺼냈다. 그렇게 그 날 저녁. 큰 냄배로도 네 번쯤 옥수수를 삶아서 온 가족이 배부르게 먹고, 남은 것들은 식힌 뒤에 냉장고에 정리해서 넣어두느라 아내와 함께 진땀을 뺐다.
"어머님이 너무 많이 보내 주시네. 고맙기는 한데 앞으로는 조금만 받아야 겠어. 저 옥수수 다 먹을 수 있을까?"
"그러게. 분명히 조금만 보내 주신다고 했는데. 회사에 가져가서 나눠 먹든가."
"작년에 마늘도 조금만 보내주신다더니."
"마늘", "조금"이란 아내의 말에 또 한 번 말문이 막혀 왔다.
작년 가을. 엄마는 밭에서 수확을 해 놓으셨다가 여름내내 창고에서 정성스럽게 잘 말린 마늘을 '조금'만 보내주시다고
했었다.
"네. 알았어요. 잘 먹을게요."
음식을 할 때 다진마늘을 자주 넣는데 마트에서는 비싸다. 게다가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쌈에 농사 지은 마늘을 넣어서 먹으면 마트에서 사는 마늘보다 훨씬 맛있고 찰떡궁합이라 감사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이틀 뒤. 퇴근을 하니 역시나 집에 커다란 택배 상자가 하나 와 있었다. 상자를 열어 보니 마늘 2접이 들어 있었다. 2접이 마늘 20통이면 좋으련만 200통이었다.
"엄마. 조금 보내신다면서 뭘 이렇게 많이 보내셨어요?"
"베란다에 매달아 놓거나 선선한데 보관해 놓고 필요한 때 한 통씩 까서 먹어. 겨울내내 가도 괜찮을 거야."
"알았어요. 잘 먹을게요."
대답을 하고 마늘 두 접을 내려다 봤다. 그전에도 이상하게 보내주신 마늘을 나름대로 서늘하게 보관한다고 했는데 베란다에 두면 절반 정도는 먹지 못 하고 아깝게 버려야 했다.
힘들게 농사 지어서 보내주신 마늘을 그냥 또 그렇게 아깝게 버릴 수 있나.
나는 그날부터 이틀동안 퇴근 이후 새벽 두 세시까지 마늘 까기와 다지기에 돌입했다. 처음에는 옆에서 돕던 아내와 두 아이도 어느 틈에 슬그머니 사라지고 없었다. 양 손에 마늘 향이 듬뿍 배어 다음날 출근을 하려고 비누로도 씻어도 향이 잘 안 가셨다.
'내가 학교 다닐 때 시험공부 했었던 때랑 회사에서 신입 때 이후로 이렇게 두 세시까지 뭘 해 보긴 처음이네.'
분명히 '강한 마늘향' 때문에 이틀째 새벽에는 혼자 마늘을 까고 있으려니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렇게 자식된 도리를 지키면서 마늘 한 알도 허투루 쓸 수 없다는 일념으로 곱게 빻아서 얼린 다진 마늘은 올해까지 맛있게 먹은 것이다.
엄마가 왜 항상 '조금'만 이라고 하는지 사실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선 그게 농사를 짓는 사람의 '마음'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정성들여 키운 농작물을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
부모님은 지금도 농사를 지어서 근처에 살고 계신 처갓집과 고모네 식구들에게 가져다 주시고는 한다.
자식들에게 그 마음을 나눠 주실 때 '조금'은 당신께는 정말 '조금'이 된다. '넘치게' 주시면서도 '조금', '늘' 주시기만 하는데도 말씀은 항상 '조금'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자식인 나는 '조금'의 의미를 알기에 매년 가을이면 엄마와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면서 '조금'만 보내 주시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조금'이라고 보내주신 두 분의 그 마음과 그 사랑을 정말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