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공감 12 >
국어사전에서 '거래'라는 단어를 찾아봤다. '주고 받음 또는 사고 팜'이라고 되어 있다. 나는 일평생 회사원이니까 평소 일을 하는 중에 '거래'를 할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월급쟁이의 로망으로 가끔은 드라마 주인공처럼 사업가로서 성공하는 꿈을 꿔 볼 때가 있다. 남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좋은 물건을 팔아서 '이익'도 챙기고, '사람'도 남기는 드라마의 주인공.
최근에는 지역사람끼리 필요한 중고 물건을 직거래하는 **마켓을 가끔 이용해 본다. 그곳에서 글을 쓸 때 필요한 중고 노트북, 책상과 의자 등 꼭 '필요'한 물건을 구매해서 유용하게 잘 사용하고 있다. 나에게 물건을 넘긴 분들은 대부분 친철해서 거래를 하면서도 늘 기분이 좋았다.
중고거래를 하면 늘 '어떤 분이 나올까'하고 궁금한데 두 번 정도 특별히 인상 깊은 구매자와 거래한 적이 있다. 몇년 전. 중학생이던 큰 딸 아이가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서 데뷔한 여자 아이돌 그룹을 많이 좋아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 **마켓에서 **** 앨범 판다는 글이 올라왔는데 사 주면 안 돼?"
자기가 평소에 원하던 여자 아이돌 앨범 여러 개와 연예인 포토카드까지 3만원에 살 수가 있어서 많이 기대하는 눈치였다. 나도 학창시절에 여자 배우들의 사진이 있는 책받침을 꽤나 사 본 터라서 아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알았어. 다녀올게."
집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였고, 약간 늦은 저녁이라서 혼자서 차를 타고 갔다. 약속한 장소에서 현금을 준비해서 기다리는데 종이 쇼핑백에 앨범 등을 잔뜩 넣어서 힘들게 들고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뭐야, 초등학생?'
아이돌 앨범을 초등학생과 거래하는 이 상황이 민망해서 앨범이 든 쇼핑백을 건네 받고, 얼른 3만원을 내밀었다. 중학생 정도의 아이가 어른과 같이 나올거라 생각했지 초등학생과 거래를 하게 될 줄이야. 어쨌든 그 날 중고 거래는 그렇게 잘 끝나고 큰 애는 매우 만족스러워 했다.
그리고 몇 달 뒤에.
"아빠, **마켓에서 **** 응원봉을 사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팔아주면 안 돼?"
그 사이에 큰 아이는 여자 아이돌에서 남자 아이돌로 팬심을 갈아 탔고, 갖고 있던 여자 아이돌 응원봉을 **마켓에 내 놓았다고 한다.
"알았어. 줘 봐. 아빠가 팔아올게."
집 근처로 거래를 할 사람이 온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어떤 사람이 올까? 차로 온다고 했으니까 설마 초등학생은 아니겠지?'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 어떤 차가 내 앞에 멈췄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체격이 좋고,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
"혹시 응원봉 사시려는 분?"
내 말에 남자는 약간 쭈뼛거리면서 내게 다가와서 현금을 내밀면서 빠르게 응원봉을 챙겼다.
"여동생이 **** 팬이라..." "아, 네."
응원봉을 챙긴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급하게 차에 올라타서 떠났다.
'여동생이 팬인 거 맞을까? 본인 아니고? 팬심은 부끄러운 거 아닌데.'
어쨌든 이렇게 가끔은 민망한 중고 거래가 있을 수 있으나 서로의 '필요'로 성사된 거래는 서로에게 만족감과 행복을 준다.
나도 어렸을 때 기억에 남는 '거래'를 세 번 정도 했던 기억이 있다. 첫 번째는 시골에 살았기 때문에 강에서 '다슬기'를 잡아서 팔았던 기억이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노란 주전자에 다슬기를 한가득 잡아 동네 점방에 팔았다. 그리고 평소에 먹고 싶던 아이스크림, 사탕과 과자를 잔뜩 사서 집에 돌아왔던 행복한 기억이다.
두 번째는 고물 장수 아저씨가 동네에 들어왔을 때 빈 병이나 쇠붙이 같은 걸 주고 엿으로 바꿔먹던 기억이다. 집에서 쓰는 물건을 갖다주고 엿으로 바꿔 먹다가 어른들한테 걸려 된통 혼나는 친구도 있는데 난 착실하게 빈 병 위주로 거래했다. 아저씨는 가져온 병과 고물의 양을 보고, 커다란 엿가위로 나무판에 있는 엿을 잘라서 주곤 했다. 아저씨가 엿가위를 엿 판위로 내리칠 때 '조금만 더 크게 줬으면' 하고 작은 눈을 반짝거리면서 뚫어지게 쳐다보고는 했다.
세 번째는 북한에서 보낸 불온 선전물('삐라'라고 했던)을 주워다가 학교나 경찰서에 내고 공책이나 자 등 학용품을 받아왔던 기억이다. 가을 추수가 끝나고 찬 서리가 맺히던 어느 늦가을. 아침에 학교에 가니까 친구들이 시끌시끌 했다.
"왜 무슨 일인데?"
"밤새 북한에서 풍선으로 보냈는지 온 마을에 삐라가 널렸어."
그 날 우리는 수업이 끝나길 목이 빠지게 기다리다가 종소리와 함께 쏜살같이 마을 논밭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져 있는 종이들을 정신없이 줍기 시작했다. 하얀 작은 종이 위에는 마치 표어처럼 몇 개의 문장들이 저마다 두 줄 정도씩 적혀 있었다.
"와, 이건 진짜 '물' 반, '삐라' 반이네."
친구들과 각자 손에 가득 종이 뭉치들을 들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우리는 큰 칭찬과 여러가지 학용품을 받길 기대하면서 선생님께 주워온 삐라를 모아서 드렸다. 삐라를 손에 든 선생님은 한참 말없이 종이 위의 문구들을 살피시더니 조용히 말문을 여셨다.
"너희들 이거 다 어디서 났니?"
"그제 밤에 북한에서 풍선으로 보냈는지 온 동네에 떨어져 있어서 저희가 다 주웠어요."
"아, 그래. 이거 이따가 청소시간에 소각장에 가서 다 태워 버려."
"아니, 왜요? 어렵게 주운 건데."
청소시간에 친구들과 큰 실망을 하면서 소각장에서 그 종이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아니, 선생님은 이걸 왜 태우라고 하는 거야?"
"그러게. 이거 경찰서에 내면 학용품을 얼마나 많이 받겠어."
"근데, 이거 삐라라고 하긴 좀 모양이 이상한 거 아냐?"
그 날 선생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는 10년쯤 더 지나서야 깨닫게 됐다. 그 때 우리가 주운 건 삐라가 아니라 광주민주화 운동을 총칼로 탄압한 전두환 등 군부 세력을 처벌하라는 선전물. 도시에서 풍선에 담아 날린 선전물이 바람을 타고 우연히 우리 마을까지 오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어떤 것들은 이익을 바라고 '거래'를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나는 활어나 해산물 같은 생물을 살 때는 '사람도 먹고사는 동물'인지라 둔감하지만, 집에서 키우는 병아리, 강아지와 고양이 등을 가격을 매겨 놓고 '거래'하는 걸 보면 생명을 과연 가격을 매기고 '거래'해도 되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생명들 저마다의 입장에서는 '거래'되기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니고, 같이 살 사람을 선택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몇 년전에 중고거래 사이트에 미혼모가 아기를 판다는 글이 올라와서 큰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최근에는 동남아에서 취업이 어려운 젊은 청년들을 유혹해서 물건처럼 '거래'하고 범죄에 이용한 사건으로 사회적인 충격을 주고 있다.
'거래'는 처음 시작할 때 살펴본 사전적인 의미처럼 '주고 받음'의 행위이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필요'할 때 하는 것이 '거래'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거래'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거래하고 있거나 또는 너무 많은 것들을 '거래'의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