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공감 13 >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긴 더운 여름과 짧은 가을이 지나간다. 올 한해도 며칠 안 남았고 끝나가고 있다. 연초에 새로 산 다이어리에 내가 적어 놓았던 계획들을 펼쳐본다.
"건강을 위해 헬스를 한다.", "노후를 위한 자격증 시험을 시작해 본다.", "책을 읽고, 글을 써 본다."
헬스는 한 달 정도하다가 회사 일이 너무 힘들고 지친다는 핑계로 끊었다. 자격증 시험도 뭘 할까 알아만 보다 접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한 달에 한 두 권 정도 책을 읽었고, e-book으로 작은 시집을 하나 발간했다는 것이다.
세 가지 중에 하나를 계획대로 이뤘으니 33%의 승률. 이만하면 괜찮은 거 아닌가? KBO 프로야구 상위권의 타자도 3할대의 타율이니까.
어떻게 그렇게 비교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사실 할 말은 없다. 이렇게라도 연초의 계획을 제대로 못 지킨 나의 죄책감을 덜고 싶은 것이 내 나름의 꼼수이고, 정신 건강을 지키는 비법이니까.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계획과 목표들을 세우지만 생각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처럼 계획을 실행하는 의지가 박약한 경우도 있고, 최선을 다해도 외부환경으로 인해서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계획이 틀어지기도 한다.
열심히 최선을 다한 사람은 분명히 목표를 이루고, 성공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어 성공 확률이 높지만 세상일이 꼭 그렇게 되는 것만도 아니다. 최선을 다하고도 운이 같이 따라줘야 일이 되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살면서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가 생각한 세 가지 방법은 무계획, 반복적 계획 그리고 작은 계획이다.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세계의 '의지(자연력, 힘, 욕망 등)'의 실체를 우리가 알긴 어렵고 다만 '표상(드러난 모습)'으로만 인식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세상의 의지 중 인간의 의지(욕망)는 충족되지 않으면 '고통'이 되고, 충족되면 '권태'가 되어 또다른 의지(욕망)를 추구하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 같은 존재라고 했다.
우리가 계획을 한다는 건 무언가 이루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욕망자체를 멈추는 길, 즉 '무계획'은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의 실망을 피하는 방법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꼭 계획대로 살아야만 한다는 강박감과 스트레스가 많다면, 하루 중 단 30분만이라도 '계획'과 '목표'가 없는 시간을 보내보면 어떨까?
주변의 자연과 사람을 있는 그대로 느끼거나, 여유있게 커피를 한 잔 마시거나 하면서 자신만의 리듬을 회복해 보는 것이다. 힘들고 복잡한 세상에서 잠시라도 여유를 찾기 위해 '멍 때리기' 같은 행사도 열리는데 같은 맥락이다.
몇년전에 한 배우가 영화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 수상소감에서 "중.꺾.그.마"라는 말을 해서 화제가 됐었다.
"중.꺾.그.마"는 "중요한 것은 꺾이더라도 그만두지 않고 계속하는 마음"의 준말이다.
그 말을 듣고 그 배우가 속이 꽉 차 있는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말을 계획에 대입해 보면 계획대로 되지 않고 꺾이더라도 그만두지 않고 계속 계획을 세우고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작심삼일'이란 말이 있다. 마음먹은 일을 3일 이상 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3일마다 한 번씩 또 결심을 하고 계획을 상기해 보고, 도전해 보는 것이다. 계획대로 잘 되지 않더라도, 느린 걸음이라도 3일마다 한 번씩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시도를 하다보면 조금이라도 진전이 생기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추천하고 싶은 것은 작은 계획이다. 천리 길을 가는 사람은 한 발부터 시작한다. 처음부터 너무 많은 기대와 욕심으로 세운 계획은 단기간에 이루기 어렵고, 성취감을 통한 지속력을 갖기 어렵다. 그러니까 큰 목표를 세웠다면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징검다리로써 작은 계획들을 세워야 한다.
만약 내가 올 해에 어떤 수필집을 내겠다고 계획했다고 해 보자. 그렇다면 매일 한 편이나 그것도 힘들면 한 장 정도를 쓰는 작은 목표로 나누어 보는 것이다. 책 한 권을 쓴다는 것은 부담이지만 하루 한 장은 부담이 훨씬 가볍다.
비슷하게 만약 한 달에 책 한 권을 읽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면 단숨에 읽겠다는 생각보다는 하루 10분 독서 또는 10장 읽기와 같은 작은 단위로 목표를 나눠 보는 것이 좋다.
계획과 실천, 그리고 성취로 이어지는 사이클을 작은 단위 부터 꾸준하게 실현하다보면 이것들이 모여서 큰 계획과 그 성과에 근접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처럼 살면서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정신 건강을 위한 '무계획'부터 좀 더 실용적인 태도인 '반복 계획'과 '작은 계획' 등을 살펴보았다. 이렇게 했을 때도 계획대로 되지 않아 불만이나 불안감이 나를 찾아온다면 마음을 비우고 이렇게 생각하자.
"계획은 계획대로 될 때도 있고, 다른 환경들로 인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냥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그리고 나서 반복 계획이나 작은 계획을 실행해 보자. 당신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질 것이다. 느리더라도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 더 진전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