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공감 14 >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 태어났을 때,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나라를 잃었을 때."라는 말이 있다.
남자는 강인해야 하고, 감정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는 사회적인 통념 때문에 생긴 말이다.
요즘은 그래도 남자의 눈물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도 많이 약화되어 "초식남", "에겐남"도 인정받는 사회가 되었다.
최근에 어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가 부르는 노래를 차 안에서 듣다가 노래가 끝날 무렵에 나도 모르게 또르르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실제로 그 오디션 참가자는 노래의 마지막 소절을 끝내고 울음을 터뜨렸는데 목소리에 그런 마음이 담겨있어 공명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차 안이라서 주변에서 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나는 급하게 눈물을 닦아내면서 주변을 살폈다. 나도 모르게 스스로 해 오던 '감정통제'의 습관이 작동한 것이다.
사실 나는 눈물이 좀 많은 편이라서 다른 사람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보면 따라서 눈물을 잘 흘리는 편이다. 아내와 같이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슬픈 장면에서 주인공이 서럽게 운다던가, 뭔가 마음을 울리는 장면이 나올 때면 나는 아내가 혹시 보지 않을까 살짝 고개를 돌리거나, 아니면 하품을 하는 척 하면서 삐져 나오는 눈물을 잽싸게 훔치기도 한다.
나는 그래도 감정에 정직한 편이고 때로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부모님의 세대에는 그게 더 익숙하지 않은 편이다.
큰아버지께서 조금 일찍 세상을 떠나셔서 선산에 모시고 오던 날의 일이었다. 장례식장과 선산에서 아버지는 눈물을 조금 보이시기는 했지만 내내 담담하게 큰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시는 듯이 보였다.
"다들 배 고프지? 짜장면 시켜 먹을까?"
모든 장례가 끝난 뒤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주시고, 식사 도중에 간간히 웃기도 하셨다. 큰 아버지가 한동안 건강이 많이 안 좋으셨기 때문에 그렇게 아버지는 형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시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
저녁 무렵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친가는 아파트 5층이고 큰길 가에 있어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거리가 잘 내려다 보인다. 저녁 식사를 마친 아버지는 마음이 허하신 건지 반주를 계속 말없이 드시고 계셨다. 조금 과하게 드신다고 생각하던 순간.
"얘들아! 저기 봐!"
아버지의 말씀과 시선을 따라서 우리는 창 밖으로 길거리를 향해서 내려다 봤다.
"저기, 너희 큰아버지가 가네. 비 오는데. 바보같이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가네."
비가 내리는 길에는 차들만 무심히 지나갈 뿐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가 허전한 마음에 취하셔서 아마도 뭔가 잘못 보신게 틀림없었다.
"아니. 뭐가 있다고 그래요. 술 이제 그만 마셔요."
엄마는 술잔을 들던 아버지를 말리시면 눈물을 흘리셨고, 아버지도 엉엉 아이처럼 우셨다. 물론 옆에 있던 나와 가족들 모두 눈물바다가 됐다.
장례식장과 선산에서, 그리고 점심 때도 내내 눈물을 누르고 담담하셨던 아버지는 술 기운을 빌어서 가슴속에 꾹꾹 눌러 놓았던 슬픈 감정들을 모두 밖으러 꺼내 보이신 것이다.
나는 슬플 때는 슬픈 발라드를 듣는 편이다. 슬플 때 신나는 음악을 듣는다고 기분이 막 좋아지거나 밝아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슬픈 음악을 듣고, 한바탕 눈물을 쏟고 나면 마음이 좀 후련해졌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감정 통제'의 습관이 남아 있어서 울고 싶을 때 괜히 화장실 세면대 물을 크게 틀어 놓고 씻는 척을 하며 울고는 한다.
'아이들이 혹시 아빠의 눈물을 보지는 않을까? 슬픔도 전염이 된다는데.'하는 약간의 걱정 때문이다.
어쨌든 만약 우리 아이들이 나처럼 스스로 감정을 통제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슬퍼서 울고 싶을 때 그냥 울어도 돼!'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 말을 제일 들려주고 싶은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슬플 때는 그냥 울어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