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그만두는 후배"

<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공감 23 >

by 달여울 작가

"저 이번달까지만 일하고 그만 두려고 합니다."


갑작스런 회사 후배의 말에 '언젠가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당황스러웠다. 평소에 뭔가 의욕과 의지가 없어 보였던 친구였다. 흔히 말하는 MZ세대들의 '조용한 퇴사'와도 달랐다. '조용한 퇴사'처럼 본인의 워라밸을 위해 꼭 필요한 일만 하겠다는 의지라도 보였으면 차라리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맡은 일은 묵묵히 다 해내고 있으면서도 그는 스스로 모든 회사 사람들과의 인간적인 관계들을 정리한 듯이 보였다.


그 친구와 같이 일했던 선배와 입사 동기들에게 전화를 통해서 이유를 물었다.


"아! 그 친구! 같이 일해 보면 알 거야."


나보다 앞서 후배와 같이 일했던 한 선배님은 이렇게 애매한 말만 남기고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하려 했는데 잘 안 됐던 것 같고, 같이 일했던 상사와도 갈등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갈등이요?"

"네. 의욕적인 상사와 의욕이 떨어져 있는 후배 직원 간의 갈등이요."


이렇게 후배의 입사 동기와 전화 통화를 했을 때 좀 더 후배가 의욕을 잃어버린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후배가 퇴사를 꺼내기 전. 나는 그 친구가 스스로 정리해 버린 인간관계를 다시 이어보려고 노력들은 했었다. 같이 차를 마시거나 퇴근 이후 식사를 하거나 또는 가벼운 술자리 같은 걸 제안했다. 하지만 부서의 공식적인 식사 외에는 호응이 없었다. 그래서 나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접을 수 밖에 없었다. 본인이 전혀 마음이 없는데 이런 것도 부담을 주면 사실은 '직장내 괴롭힘'이 될 수도 있고.


후배가 내민 사직서를 내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한참동안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하다가 대화를 나눴다. 처음 시작은 현실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친구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됐고 아직 아이는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는 부분에 대해 아내와 가족들하고 상의는 해 봤어요?"

"네. 아내는 반대를 하긴 하는데. 제가 설득을 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지금까지 잘 해 왔고, 경력상으로 보면 내년 안에 승진 기회가 생길 수도 있고 아까운데. 그런 것들도 생각을 해 본 거죠?"

"네. 그런데 이곳에서 승진을 한다고 해서 제 미래가 크게 좋아질 거라고 생각이 들지는 않아서요."


그 말에 신입사원 때의 내 모습이 잠깐 떠올랐다. 입사 2년차. 매일 늦은 밤까지 야근에 허덕이다가 더 이상 견디기 어렵겠다고 생각한 어느 날. 이직을 위해서 주말에 다른 회사의 채용 필기 시험을 봤었다. 시험을 마친 뒤에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오는 도중 누군가 뒤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선배님!"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그 해에 입사한 회사 1년 후배였다.


"우리 여기서 서로 만난 거 비밀로 하기다."

이런 밀약을 주고 받고 우리 둘은 멋쩍게 웃으면서 헤어졌다. 그 후배와 나는 여전히 지금의 회사를 성실하게 잘 다니고 있다.


이렇게 그 때 내가 신입이어서 이직을 시도했던 것과 달리 그만두려는 후배는 입사한 지 꽤 오래되어 경력이 있었고, 이직을 위한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어 보이지 않았다. 난 회사 선배가 아닌 인생의 선배로서 현실적인 조언을 해야만 했다.


"회사를 옮기고 싶다는 것은 알겠어요. 그런데 결혼도 했고 이직을 위해 충분한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그냥 그만두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회사를 다니면서 전문 자격증 같은 것을 취득해 보는 건 어때요?"

"그런 생각도 해 보긴 했는데. 이직 준비에 집중을 할 수가 없어서요. 지금 돌이켜보면 후회 되요. 입사 초기에 이런 결심을 했어야 하는데 그 때는 용기가 없었어요."


그렇게 그 후배와 여러차례 긴 시간동안 대화를 나눴지만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그래서 나로서도 입사한 이래로는 처음으로 후배의 사직서를 최종 결재자까지 결재를 올렸다.


그 후배가 퇴직하기 며칠전에 먼저 나와 같이 저녁을 같이 하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 내가 제안한 저녁자리는 한사코 거절하던 친구여서 의외였지만 회사를 그만두는 시점이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비가 내리는 날. 둘이서 파전 집에 가서 막걸리와 파전을 시켜놓고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나눴다. 후배는 우리 회사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면서 두 가지를 아쉬워했다. 첫 번째는 자신이 좀 더 일찍 이직을 결심하지 못 하고 회사에 집중하지도 못하면서 어영부영 시간을 보냈던 점.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신과 갈등이 있던 상사와 오늘처럼 이렇게 사는 얘기도 하면서 좀 더 부드러운 인간관계 속에서 지내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점.


그렇게 그 후배가 퇴직한 지 1년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나는 아직 그에게 안부를 묻지 않았다. 이직 준비에 방해가 될까봐. 그리고 기존에 퇴사를 했던 내 입사 동기들이나 후배들이 다른 곳에 정착해서 잘 사는 모습을 많이 봐 왔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성실했던 그 후배를 잘 알기에 안부 인사는 굳이 필요하지 않다.


그가 만족스러운 좋은 직장에서, 직장동료들과 따뜻한 말을 주고 받으면서 잘 살아가길 응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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