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생크 탈출과 구의 증명

자유와 희망, 인간다운 삶에의 의지

by 달여울 작가

어쩌다보니 오랫동안 하던 일을 잠깐 쉬고 있다. 일이 없으니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다.무료함을 달래려고 세상에 나온지 30년이 된 영화 '쇼생크 탈출'을 시청한 뒤에 10여년 전에 나온 최진영 작가의 소설 '구의 증명'을 읽었다.


'쇼생크 탈출'은 벌써 여러번 봤지만 볼 때마다 명작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억울하게 살인누명을 쓴 은행가인 주인공 팀 로빈슨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서 교도소 안에서 제소자들의 삶을 바꾸고, 19년간이라는 오랜 준비 끝에 탈옥에 성공한다.


탈옥 직전에 밧줄은 구한 주인공에게 주변 동료들은 혹시라도 자살을 할까 걱정한다.

팀 로빈슨은 이런 말을 남긴다.


"바쁘게 살거나, 빠르게 죽거나"


주인공과 달리 살인죄로 40년간 복역중인 죄수 모간 프리먼은 이미 희망을 포기하고 갇혀있는 감옥 안에 갇힌 처지에 순응한 인물이다. 그의 명대사를 몇 개 인용해 본다.


"(주인공이 희망을 말하자) 희망? 한 가지 얘기해 줄까? 희망은 위험한 거야. 희망은 사람을 미치게 할 수 있어. 이 안에선 아무 쓸모도 없어.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좋아."


"만약 젊은 날의 나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이런 말을 해 주고 싶어. 언젠가 방탕하고

잘못된 삶의 끝에는 이렇게 감옥에서 늙어가는 초라한 모습만 남게 된다고."


이 영화는 감옥에 갇힌 삶, 장기간 수감 이후 가석방된 인물들이 자유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 그리고 장기간 준비 끝에 탈옥하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자유와 구속, 그리고 희망 등에 대해 많은 걸 느끼게 해 준다. 앞에서 모간 프리먼이 희망에 대해 부정적으로 했던 말에 대해 주인공 팀 로빈슨은 탈옥 이후에 이렇게 말한다.


"희망은 좋은 거죠. 가장 소중한 것이죠. 좋은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최근 몇 년 사이 SNS에 역주행 인기소설로 회자되는 최진영 작가의 소설 '구의 증명'은 작가의 말에 따르면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고 한다. 소설의 줄거리는 구와 담이 서로를 지켜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달콤한 사랑 이야기는 아니다. 작가는 소설 후기에 이런 말을 했다.


"지난날, 애인과 같이 있을 때면 그의 살을 손가락으로 뚝뚝 뜯어 오물오물 씹어 먹는 상상을 하다 혼자 좋아 웃곤 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첫째는 이 소설을 쓴 작가는 "연인간의사랑을 잘 모르는 미친 X" 같다. 소설 첫 머리에 "천 년 후 사람들은 어떤 자를 미친 자라고 부를지"라고 쓰여 있는데 본인에 대한 얘기일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내가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몸과 마음까지 하나가 되고 싶다는 감정은 누구나 한 번은 느껴봤을 것이다. 그래서 '뜯어 먹는' 상상을 할 수는 있지만 결코 실행하지는 않는다. 비도덕적이기 때문에? 아니다. 어쨌든 나는 나이고,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다. '뜯어 먹는'다고 내가 타인을 미치도록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사랑은 오히려 당연하게도 '서로 다른 사람'이 어딘가 중간 쯤에서 만나는 이야기이다.


두 번째 내 감상은 이 소설은 '사랑' 얘기가 아니고, '사람이 그 존재 자체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쓸모를 기준으로 판단되는 세상'에서 '상처받고 버림받은 사람간의 연민'에 대한 이야기이고 작가가 진짜로 하고 싶은 주제는 이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아래에 소설의 첫 머리와 중간을 일부 인용해 본다.


"천 년 후 사람들은 .. 대체 뭘 먹고 살까. 지금의 '인간적'이라는 말과 천 년 후의 '인간적'이라는 말은 얼마나 다를까. 천 년 후 사람들은 지금과 완전히 다르리라 믿고 싶다."


"사람으로서 살아내려 할 때에는 물건 취급하지 않았는가. 그의 시간과 목숨에 값을 매기지 않았는가. 쉽게 쓰고 버리지 않았는가. 없는 사람 취급하지 않았는가. 없는 사람 취급받던 사람을, 없는 사람으로 만들 수는 없다."


'담'은 이미 죽은 '구'를 뜯어 먹고 그를 추모하기 위해 천 년 후까지 오래 살아남겠다고 말한다. 그래서 '뜯어 먹는다'는 것은 세상이 사람을 '뜯어' 먹는 '식인 사회'에 대한 고발인 동시에 정반대의 의미로 세상이 '구'를 '없는 사람 취급'하지 않도록 자신이 '뜯어 먹음'으로서 존재 자체를 오롯이 기억하고 감싸주겠다는 의미가 된다.


이 소설이 '사랑' 이야기이건 '연민'에 대한 이야기이건

사람을 나쁜 의미로 '뜯어' 먹지 않는 세상, 그리고 좋은

의미로 '뜯어' 먹는 세상은 천 년 이후에는 가능할까?


영화와 소설에의 몰입에서 헤어나기 위해 잠깐 운동장을 돌았다. 운동장에는 사람들이 오늘도 어떤 식으로든지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있다.


겨울 나무들은 매서운 차가운 바람에 봄부터 가을까지 생명력을 느끼게 해주던 꽃잎과 낙엽까지 잃어버리고 뜯겨진 채 앙상하게 떨며 서 있다. 머지않은 봄 날. 뜯겨져 나가서 앙상하게 남은 나무들의 뼈마다 안에서 기적처럼 다시 새싹이 돋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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