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가 될 연습

by 달여울 작가

정년을 얼마 안 남긴 팀장님과 부모님에 대한 대화를 하게 됐다. 연세가 있으시기도 하고 막내여서 오래전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고아"가 되어 버렸다고 하셨다. 사전적으로 "고아"는 부모를 여의거나 버림받아 몸 붙일 곳이 없는 아이를 뜻한다.
그 팀장님께서 "고아"라고 말씀하실 때 그 단어가 주는 어감에서는 부모님과 다정한 대화를 나눠보거나 기댈 수가 없는 처지가 된 것에 대한 쓸쓸함과 상실감 등 여러 감정들이 듬뿍 담겨져 나왔다.
그분은 그 말씀을 하시면서 정채봉 시인의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을 말씀하셨다. 시의 내용의 일부를 소개해보면 이렇다.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단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나는 다행히도 부모님 두 분 모두 계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나도 "고아"가 될 처지에 놓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그래서 요즘 내가 규칙적으로 하는 일은 떨어져서 살고 계시는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는 일이다. 특별히 할 얘기가 없어도 엄마와 통화하면서 저녁은 뭘 드시는지, 날씨가 어떤지하고
사소한 일들을 얘기한다. 엄마와는 달리 아버지하고 전화는 자주 하지 않는 편이다.


어린시절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누구보다 엄격하셨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학교에 다녀와서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혼나거나 작은 실수에도 화를 크게 내셨던 기억이 있어 요즘 세대의 친구같은 부모와는 거리가 있으셨다.
아마도 우리들이 예의있게 크길 바라셨던 마음과 삶의 고단함 때문에 그러지 않으셨을까 하고 당시의 아버지의 나이가 된 지금에서야 조심스럽게 짐작해 본다.

노년에 가까워질수록 어른들의 마음이 여려지신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일흔이 넘으신 아버지는 가끔 먼저
전화를 하셔서 나의 사소한 일상과 아내 그리고 아이들 안부를 묻고 "사랑해 아들"하고 통화를 마무리 하신다.
물론 약간 반주를 하셨을 때이고 얼근해진 목소리로 이런 표현을 하시기는 한다.

어쨌든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의 사랑 표현이 "엄격함"에서 "너그러움"으로 바뀐 것을 느낀다.
이제는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사랑꾼이 되신 아버지의 애정 표현에 나도 쑥스럽지만 "사랑해요. 아버지."라고 말씀드린다.

나는 서서히 "고아"가 될 연습을 하고 있다. 먼 훗날에 진짜로 "고아"가 된다면 지금 아무리 부모님께 자주 전화를 드리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한다고 해도 후회와 미안함, 그리고 그리움은 반드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마저도 하지 않는다면 정말로 "고아"가 되었을 때 나는 견딜 수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