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신은 죽었다, 그리고 인간은 방황한다”

by 달여울 작가

니체는 《즐거운 학문》에서 “신은 죽었다. 우리가 그를 죽였다.”라고 했습니다. 이 문장은 단순히 기독교에 대한 신학적인 도발만은 아닙니다. 그는 ‘절대적인 기준’이 사라진 현대에 인간이 자기 의미를 스스로 창조해야 한다는 선언을 한 것입니다.


이 선언은 곧 다른 의미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시대적인 출발점이 됩니다. 현대인은 더이상 기존의 절대적인 존재였던 신이나 전통적 도덕가치 또는 사회가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해주지 않습니다. 대신에 경제적인 소득, 직업 또는 SNS의 ‘팔로워 수’나 유튜브 ‘구독자 수’ 등을 통해서 자신을 정의합니다. 그 결과, 자아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만 존재하는 허상으로 전락해 버리고 맙니다. 니체가 말한 ‘무(無)의 공허’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너는 네가 아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인간의 불안을 “타인의 가치 내면화”로 분석했습니다. 그는 “도덕은 노예의 창조물”이라며, 인간이 외부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는 순간 자유를 잃는다고 했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런 인간을 “너는 ‘해야 한다’라는 말에 길들여져 있는 낙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도덕의 계보》에서 그는 ”너는 네가 아니라, 타인이 기대한 ‘너’로 살아간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의 SNS에의 종속, 권위적이고 획일적인 직장문화 그리고 치열한 학벌 경쟁 등은 니체가 말한 “노예도덕의 현대적인 변형”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진짜 욕망’에 대신 ‘타인의 인정’을 추구하고, ‘비교’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증명하려고 합니다. 이때 우리의 자아는 ‘타자화된 자아’, 즉 ‘가짜 나’로 분열되고, ‘존재 불안’은 바로 이 분열된 자아에서 발생하는 고통입니다.



“위버멘쉬(Übermensch), 초인이 되어라.”



이런 존재의 불안에 대한 니체의 해법은 단 하나, “초인이 되어라” 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다.”, “너희는 너희 자신을 넘어설 용기를 가져야 한다.”

초인은 어감에서 느껴지는 ‘슈퍼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나 사회가 만든 종교나 도덕 또는 가치들이 아닌, 스스로의 내면에서 가치를 창조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초인은 기존의 규범을 모두 해체하고, 자기 의지로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존재입니다.

이처럼 존재 불안은 절대적 가치의 해체에서 오는 ‘의미의 결핍’에서 오지만,

초인은 의미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사람입니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나는 나의 운명을 사랑한다.”



니체는 존재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다른 해법으로《Ecce Homo, 이 사람을 보라》에서 ‘운명애’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인생에서 고통과 상실, 실패까지도 “나를 구성하는 일부로서 긍정하라”고 말합니다. 존재 불안을 극복하는 길은 행복뿐 아니라 그것이 고통일지라도 삶의 전체를 긍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살아있는 것은 자신을 넘어서는 것이다. 고통은 그 증거다.” 즉, 불안은 병이 아니라 성장의 증거이고 그것을 깨닫는 그 순간 ‘불안’은 ‘창조의 에너지’로 변하는 것입니다.

“만약 지금 이 순간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너는 그것을 원할 수 있는가?”



니체는 존재 불안의 본질적 해결방법으로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라는 개념을 제안합니다.


만약 당신이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당신의 한 생애가 무한히 반복된다면 어떻겠습니까? 마치 시프스 신화에서 산의 정상으로 밀어올린 돌이 떨어지면 다시 산 정상으로 밀어올리는 것을 반복하는 것처럼요.

이 질문은 존재 불안의 본질적인 해독제입니다. 만약 당신이 지금의 삶이 반복되어도 “그렇다, 나는 원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이미 자기 존재를 긍정한 자, 즉 초인입니다.

비록 사후에 그 예술적인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지만 빈센트 반 고흐도 “나는 내 그림 속에서 영원을 본다”라고 말하면서 자기 내면의 불꽃을 믿었습니다. 실존주의 프랑스 철학자 까뮈도 “부조리를 사랑하라”고 외쳤고요.


이렇게 니체가 제시한 “초인”, “아모르 파티”와 “영원회귀” 등 존재의 불안을 극복할 제안에도 막연하고 조금은 어렵게 다가옵니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그의 제안을 어떻게 적용을 하면 좋을까요?


그래서 “니체식 자기 창조를 위한 실천적인 5단계”를 따라해 보시는 것을 추천을 드려 봅니다.


1단계는 “해체”입니다. 기존의 가치와 비교 기준 등을 모두 버리세요. 하루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SNS 단식을 하고, 타인의 기준을 돌아보고 외부에 의존해 왔던 것이 있다면 벗어 던지세요.


2단계는 “고독”입니다. 스스로의 내면과 마주하기 위해 하루 몇 분이라도 자기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기를 작성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세요.


3단계는 “창조”입니다. “나는 왜 이 일 또는 행동을 해야 하는가?” 질문하고, 자기만의 가치 체계를 설계하세요. 또한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라고 글로 적어 보고 자아를 다시 정립해 보세요.


4단계는 “긍정”입니다. 과거의 고통이나 실패의 경험 중에서 본인의 성장에 도움이 된 것이 있다면 실패 일지가 아닌 감사 일기로 남겨 스스로 운명을 사랑하는 “운명애”를 체득하세요.


5단계는 “ 반복”입니다. 매일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오늘 하루를 되돌아 바라보고 만약 오늘과 똑같은 하루가 다시 무한히 반복된다면 어떻게 살 것인지, 자신을 긍정하면서 살아낼 것인지 생각을 정리해 보세요.

니체가 전하는 메시지를 몇 가지 다시 정리해 드리니까 필사를 통해 반추해 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니체가 전하는 치유의 문장>

“너 자신이 되어라.”

“나는 나의 운명을 사랑한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모든 고통을 견딜 수 있다.”

“너의 삶을 예술로 만들어라.”


지금까지 살펴본 것을 다시 정리하면 현대인의 존재 불안은 절대적인 가치와 기준이 사라진 “비교 사회”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너는 너다. 타인과의 비교는 존재의 모독이다.”

당신의 자기 존재의 의미는 타인의 인정보다 내적 창조성에서, 결과보다 의지의 순도에서, 완벽함보다 자기 긍정의 힘에서 나옵니다.

“불안은 초인의 탄생 신호다”

니체는 불안을 없애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을 존재의 원동력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인간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는 다리를 건너는 존재이다 ― 짐승과 초인 사이의.”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끝이 아니라 출발이고, 그 질문을 통해 인간은 자신을 새롭게 창조할 수 있습니다. 결국 존재 불안의 해답은 ‘타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 있는 것입니다. 니체는 그것을 삶의 예술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예술은 지금 이 순간, 우리 안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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