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교포에게는 마음의 고향 같은 '삼포'
산과 들에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추운 겨울날, 떠돌이 막노동자 영달(백일섭)과 교도소에서 출옥한 지 얼마 안돼, 공사장을 전전하는 정 씨(김진규)가 눈길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된다. “어이 육 실 하게는 춥네. 바람만 안 불면 좀 낫겠는데.” 추위를 피해 둘이 주막에 들렀을 때 마침, 백화(문숙)라는 술집 작부가 도망쳤다고 주모가 말한다. “백화, 그 년을 붙잡아 주면 만원을 주겠수다!”는 청탁을 받는다. 호기심도 있고 해서 두 남자가 “그럽시다!” 약속하고 부지런히 눈길을 걸어가다가 문제의 여인인 백화(문숙)를 만난다. 그러나 "여자란 게 거시기라는 밑천만 있으면 되지 뭔 놈의 돈이 필요하냐?" 산전수전 다 겪은 거친 입담의 백화를 두 남자는 감당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녀의 미모와 고운 마음씨, 배짱에 마음이 변한 두 남자는 그녀와 어울려 정처 없이 길을 떠난다.
셋은 각기 다른 유행가를 삼중창으로 구성지게 부르기도 하면서 막연히 눈길을 걸어가지만, 뾰족하게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던 중, 티격태격하며 싸우던 작부(문숙)와 떠돌이 막노동자(백일섭)가 배가 맞아, 어느 빈집에서 정사를 나눈다. 그러나 그들은 어차피 헤어져야 할 사이. 시골역 대합실에서 서로 눈물을 찔끔거리며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서러워 말을 못 하는 영달(백일섭)을 대신해, 정 씨(김진규)가 말한다. “우린 삼포루 갑니다. 거긴 내 고향이오.” 백화가 보퉁이를 들고 일어서 개찰구로 가다가 다시 돌아온다. “내 이름은 백화가 아니에요. 본명은 요… 이점례예요.” 백화(문숙)가 개찰구로 뛰어 나가고 잠시 후 기차가 떠난다.
1975년에 개봉된, 영화 <삼포 가는 길>의 줄거리다. 이 영화는 황석영의 소설을 이만익 감독이 영화화한 것인데, 그의 마지막 유작이기도 하다. 여배우 이혜영의 아버지 인 그는 이 영화를 편집하는 중에 문숙의 품에서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감독과 여배우는 내연의 관계였었다. 그 뒤, 문숙은 이 영화로 대종상 신인상을 타지만, 슬픔과 고통으로 도망치듯 미국으로 떠 난다. 그녀가 갓 스물을 넘긴 때였다.
<삼포로 가는 길>은 많은 사람들의 애창곡으로 불려질 만큼 가사와 곡이 세대 간의 정서를 어우르고 있다. 특히 새로운 삶을 찾아 이민 온 우리들에게 ‘삼포’는 마음의 고향 같은 느낌까지 든다. 어느새 ‘삼포’는 황석영의 소설, 이만익의 영화, TV문학관의 드라마, 강은철의 노래로 우리 시대를 기억하는 모티브가 되어 버린 듯하다.
그 ‘삼포’를 부른 강은철은 토론토에 공연 차 두번이나 왔었다. 벌써 ‘삼포’에 와 있는 우리 한테 때 늦은 '삼포' 소식을 들려 주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