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현수 Jun 22. 2020

강은철, "우린 삼포루 갑니다"

해외 교포에게는 마음의 고향 같은 '삼포'

우린 삼포루 갑니다.”

  산과 들에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추운 겨울날, 떠돌이 막노동자 영달(백일섭)과 교도소에서 출옥한 지 얼마 안돼, 공사장을 전전하는 정 씨(김진규)가 눈길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된다. 어이 육 실 하게는 춥네바람만  불면  낫겠는데.” 추위를 피해 둘이 주막에 들렀을 때 마침, 백화(문숙)라는 술집 작부가 도망쳤다고 주모가 말한다. “백화, 그 년을 붙잡아 주면 만원을 주겠수다!”는 청탁을 받는다.  호기심도 있고 해서 두 남자가 “그럽시다!” 약속하고 부지런히 눈길을 걸어가다가 문제의 여인인 백화(문숙)를 만난다. 그러나 "여자란 게 거시기라는 밑천만 있으면 되지 뭔 놈의 돈이 필요하냐?" 산전수전 다 겪은 거친 입담의 백화를 두 남자는 감당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녀의 미모와 고운 마음씨, 배짱에 마음이 변한 두 남자는 그녀와 어울려 정처 없이 길을 떠난다. 

1975년에 개봉 된 <삼포 가는 길>은 이만익 감독이 연출하고     김진규,백일섭, 문숙이 출연했다.

셋은 각기 다른 유행가를 삼중창으로 구성지게 부르기도 하면서 막연히 눈길을 걸어가지만, 뾰족하게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던 중, 티격태격하며 싸우던 작부(문숙)와 떠돌이 막노동자(백일섭)가 배가 맞아, 어느 빈집에서 정사를 나눈다. 그러나 그들은 어차피 헤어져야 할 사이. 시골역 대합실에서 서로 눈물을 찔끔거리며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서러워 말을 못 하는 영달(백일섭)을 대신해, 정 씨(김진규)가 말한다. “우린 삼포루 갑니다. 거긴 내 고향이오.” 백화가 보퉁이를 들고 일어서 개찰구로  가다가 다시 돌아온다. “내 이름은 백화가 아니에요. 본명은 요… 이점례예요.” 백화(문숙)가 개찰구로 뛰어 나가고 잠시 후 기차가 떠난다. 


 1975년에 개봉된, 영화 <삼포 가는 길>의 줄거리다. 이 영화는 황석영의 소설을 이만익 감독이 영화화한 것인데, 그의 마지막 유작이기도 하다. 여배우 이혜영의 아버지 인 그는 이 영화를 편집하는 중에 문숙의 품에서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감독과 여배우는 내연의 관계였었다. 그 뒤, 문숙은 이 영화로 대종상 신인상을 타지만, 슬픔과 고통으로 도망치듯 미국으로 떠 난다. 그녀가 갓 스물을 넘긴 때였다.

강은철은 <삼포로 가는 길>로 단숨에 인기 차트에 오른다.

  그 무렵, 디스크자키 이종환이 하는 쉘브르에는 이장희,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등 많은 통기타 가수들이 노래를 불렀다. 그중에서도 사이먼 & 가펑클의 노래를 원곡처럼 완벽하게 부르는 이가 있었는데, 출연자 중 가장 나이가 어렸던 강은철이다.  그는 데뷔 시절부터 창법이 매우 서정적이고 감미로워서 당시 유행하던 외국의 서정적인 포크락을 잘 소화했다. 선배들과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가족의 반대로 본격적인 활동을 미루다가 1987년에 첫 음반, <삼포로 가는 길>을 내놓는데 단숨에 인기 차트에 오른다. 


 당시에 그의 노래를 귓가에 가까이 두고 들어 보면 저 멀리 먼 나라의 친구가 하얀 눈사람의 형상을 하고 곁에 와 있는 듯한 환상에 빠지곤 했다.  그는 텔레비전 같은 대중 매체보다는 공연 중심의 활동을 주로 해서,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보다는 은근한 군불 같은 인기를 꾸준히 받고 있는 가수이다. 그래서 강은철의 노래는 세월 속 깊이만큼, 희미해져 가는 옛 추억을 기억나게 한다.

https://youtu.be/m7ivaOYJJbw

 <삼포로 가는 길>은 많은 사람들의 애창곡으로 불려질 만큼 가사와 곡이 세대 간의 정서를 어우르고 있다.  특히 새로운 삶을 찾아 이민 온 우리들에게 ‘삼포’는 마음의 고향 같은 느낌까지 든다. 어느새 ‘삼포’는 황석영의 소설, 이만익의 영화, TV문학관의 드라마, 강은철의 노래로 우리 시대를 기억하는 모티브가 되어 버린 듯하다.

그 ‘삼포’를 부른 강은철은 토론토에 공연 차  두번이나 왔었다.  벌써 ‘삼포’에 와 있는 우리 한테 때 늦은 '삼포' 소식을 들려 주는 듯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익종의 '사랑 타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