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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수 Aug 06. 2020

춤쟁이 송범

토론토에서 지상 소풍을 마친 한국 무용의 대부 

사진 위/1985년에 송범의 안무로 국립무용단이 만든 <도미부인>


‘문화공작대’ 출신 송범

    “대구로 피난, 이, 저, 서울에서 육군본부 정훈국, 여기에, 소속 단체를 이제 만들어 줬어요. 그래 저, 거기 소속이 되면서 이제 대구로 피난을 내려간 거예요. 여기에 인저 신협이란 연극 단체가 있었어요. 여기 이해랑 씨, 김동원 씨, 장민호 씨, 최무룡 씨 뭐, 차일호 씨 뭐 지금 유명한 사람, 아닌 사람 다 있었죠. 그 이 극단 허고, 우리 무용단허고, 음악가들 그렇게 인저 대구에 피난 가서 예술단을 조직 헌 거예요. 근데 그 예술단이 ‘공작대’란 이름을 받았어요. 문화공작대 (2003년 4월 2일/송범의 인터뷰 중에서)”


그러니까 문화공작대는 일제 해방 후 남과 북에서 각각 만들었는데, 남한은 1951년에 국군의 사기와 시민들의 위안을 목적으로 만든 예술단이고, 북한은 남에서 월북한 예술단을 중심으로 문화공작대를 만들어 정치적 좌익 문화 활동을 적극 펼친다.

1950~60년대에는 송범에 의해 신무용이 정립되어 새로운 한국춤의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2007년 6월 15일, 토론토에서 세상을 떠난 송범은 원로 무용가로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중앙대 교수, 국립 무용단장 등을 지내며 한국 무용에 큰 획을 그었고, 예술인으로는 최고의 영예인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는 원로 예술인의 생애 및 체험을 채록하는 구술 사업을 하고 있는데, 근현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송범의 구술 중 <6.25 전쟁 때의 이야기>이다.


 “이때 이 저 장추화 씨가 날 보고 그러데요. 송 군은 여기 있으면 안 되고, 일단 우리 더러 일절 들어오지 말고 어디 숨어 있으라고 말이지. 그니까 인민군이 다 없어진 다음에 나타나라 허고. 내가 부탁인데, 송 군은 이걸 잘 생각을 해서 절대로 무대 올라서지 말고 남북이 통일이 된 다음에 올라서라. 그렇지 않으면 나 같은 이런 (침묵...) 아주 끔찍한 환경을 부닺, 부닺치게 된다. 이렇게 말씀을 허셨죠. 그러고 이북으로, 이북으로 넘어가고. 나는 우리 누이집 가서 숨어 있어요.” 


장추화는 당시 무용계의 스타였던 최승희의 수제자로 1948년 북으로 간 스승을 대신하여 남한에서  최승희 무용을 가르쳤고, 후일 북으로 가 최승희와 함께 무용계를 이끌었다.


송범의 구술처럼, 6.25 전쟁의 혼란 속에서 문화예술인들도 남과 북의 ‘문화공작대’로 갈린다. 당시 북으로 간 무용계 인사들은 최승희, 한동인, 정지수, 장추화, 함귀봉, 조용자 등으로 한국 무용계를 이끈 거목들이 많았다. 전쟁 후 송범은 이들의 없는 자리를 대신하며 현대 무용과 발레, 남방 무용, 한국 전통 무용 등의 다양한 춤을 추고 안무를 개발했다. 1962년 국립무용단 창단 멤버를 시작으로 세계 50여 개국을 다니며 한국 전통 무용을 세계에 알렸고, 특히 1973년부터 20년간 국립무용단을 이끌면서 한국춤과 전통 음악, 연극 등 을 접목한 대형 무용극을 체계화했다. 

제자들을 지도하고 있는 한국무용가 송범 


송범은 충청북도 청주 출신으로 17세 때 최승희의 춤을 보고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1945년 양정중학교(5년제) 졸업 후 조택원, 박용호에게 워킹 발레 중심의 이시이 바쿠 기본을 배웠고, 장추화무용연구소에서 조교가 되었다. 장추화에게 모던댄스, 한국무용, 인도춤 등을 배웠고, 이때 모던댄스는 독일의 마리 뷔는구먼(1886∼1973)의 기본 동작들이었다. 또한 한국 최초의 직업 발레단을 창단한 한동인에게 발레를 배웠다.  일제 해방 후, 초기 원로 무용가 대부분이 북한으로 가는데, 그들의 뒤를 계승한 이가 송범이다. 


1990년 국립극장 40주년을 맞이해 국립무용단이 올린 송범의 마지막 안무 작품인 <그 하늘 그 북소리>

  그가 있기 전까지 한국 무용은 승무면 승무, 살풀이면 살풀이하는 식으로 각 각 별개의 작품일 뿐이었다. 그저 토막으로 돌아다녀 무속이나 명절 때  풍속 행사의 부속물 정도로나 취급받아야 했던 춤을  하나의 작품으로 꿰어 내는 안무를 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의 ‘지상에서 천상으로’는 바로 그의 작품으로 전통 무용과 현대 기술력이 합쳐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대형 전통 무용극이다. 


    남은 여생을 자식들과 함께 보내고 싶어 2004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민 온 송범은 애석하게도 81년간의 지상 소풍을 마치고 천상으로 갔다. 고국의 유월은 푸른 보리밭이 생각난다. 저만치 트인 청청한 하늘, 물여울처럼 부는 바람, 기름진 햇빛들이 어울려 푸른 보리를 익힌다. 잔물결, 큰 물결의 출렁이는 강물결 같은 보리밭, 송범 묘지 앞에 펼쳐진 남한강 자락의 모습도 이럴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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