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아름답다는 건 환경이 열악하다는 뜻이다.
토론토에 온 지 4년쯤 지나, ‘내가 이 곳에 가게 하러 왔나? 삭막하고 지루한 삶을 한번 바꿔 볼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이런저런 궁리를 했다. 그때 생각한 것이 관광농원이다. 한 시간만 나가면 아름다운 풍경과 기가 막힌 자연환경이 있는데, 이것을 잘 활용하면 자그마한 테마파크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허브를 키우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겠다. 5월에도 눈이 오는데 허브 재배는 온실이 아니면 할 수 없고, 따라서 수익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토론토 김치 랜드>다.
사업을 구체화시키며 ‘김치’라는 아이템에 점차 확신을 가지면서 우선 김치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사업 기획서를 만들었다. 1. 사업명 2. 사업 내용 3. 세부 사업 계획 4. 추진 일정 5. 초기 사업 투자 금액 6.2차 투자 소용 금액 7. 투자 구성 8. 수익 분석 9. 연도별 사업 분석 10. 소구 대상 및 전개 11. 홍보 등이다.
여기까지는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고 문제는 투자금이다. 그래서 일단 대지는 내가 먼저 사고 투자자를 유치하려 했다. “이 땅에 김치 랜드가 들어섭니다” 해야 투자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투자자는 대주주 3명, 소액 투자자 10명 정도다. 대주주는 자본만 투자하고 근무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고, 소액 투자자들은 어차피 테마파크를 운영하려면 인력이 필요하니까 열 명 정도 같이 일도 하고 조금씩 투자해 소속감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07년에 기획서가 완성됐기에 아내에게 “집 팔고, 가게 팔아 땅 사자…” 했더니, 기획서에 맞춤법이 몇 군데 틀렸다고 지적하며, “쓸데없는데 신경 쓰지 말고, 제발 가게 청소나 제대로 하라”는 핀잔을 들었다. 나의 꿈은 중력을 이기지 못한 비눗방울처럼 깨져 버렸고 기획서는 책장 속 한 구석에 쳐 박히게 된다.
사실 말은 안 했지만, <김치 랜드> 테마파크 기획서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자문을 의뢰한 선배로부터 부정적인 답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남이섬을 지금의 궤도에 올려 논 선배다. “이 사업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별 고민 없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전 재산을 날리는 것은 물론 다시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껏 들떠 있는 나에게 찬물을 끼얹는 것이었지만, 냉혹한 현실을 하나하나 집요하게 들이대며 걱정을 했다.
이야기를 돌려, 내가 벤치마킹한 <상수 허브랜드>다. 중국 관광객들까지 몰리는 특수까지 겹쳐 연간 100만 명을 유치하던 그곳은 2009년 미국 리먼브라더스 금융위기와 전국에서 발생한 신종 플루인 구제역의 영향으로 관광객이 갑자기 떨어지며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로 인해 구조 조정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급료와 퇴직금이 지체돼 악덕 기업으로 몰리며 주거래 은행으로부터 ‘회생 불능’이라는 경고를 받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50억 원을 신규 사업에 투자하기로 한 모 기업이 약속을 파기하며 경영은 더욱 어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