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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수 Aug 23. 2020

김수일 가족의 하우스콘서트


‘살롱 콘서트’는 유럽 상류 사회에서 삼삼오오 즐기던 사적인 음악회를 가리킨다. 고국에서는 특이하게도 ‘살롱’이란 말이 술 문화에 사용되면서 음성적인 의미로 통용되었지만, 사실 ‘살롱(Salon)’은 독점, 비개방, 상류, 고급 등의 뜻으로 해석되는 독특한(Exclusive)한 공간을 의미한다.

‘살롱 콘서트’는 유럽 상류 사회에서 삼삼오오 즐기던 사적인 음악회였다.

 하지만, 한국적 살롱 콘서트는 서양의 그것과는 다른 하우스 콘서트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음악 마니아들이 좀 더 가까이 뮤지션들과 호흡을 느끼기 위해 마련한 또는 좋은 음악을 함께 나누겠다는 연주자의 소박한 꿈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양반가에서는 '사랑방 음악회'가 있었는데, 집안의 경사가 있을 때 축하 행사를 집 뜰에 펼쳐 판소리꾼을 부르거나, 기생들을 불러 무희를 즐기곤 했는데, 하우스 콘서트의 역사가 그때부터라고 하는 이도 있다.  

 

조선시대 양반가에서는 '사랑방 음악회'가 있었다.

쉽게 말해 하우스콘서트는 집에서 하는 콘서트다. 그래서 연주 공간뿐만 아니라 객석도 비좁아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없어, 몇몇 초대받은 사람들 만이 공유한다.  십여 년 전 토론토 김수일의 집에서 열린 하우스콘서트는 참 신선한 기획이었다. 김수일은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1997년 토론토에 이민 와 컨비니언스를 운영하고 있는 평범한 아버지이다.  벌써 3회 째로 하우스콘서트를 하다 보니 공연을 보러 오는 팬들도  서로 알아볼 정도였다. 


그 콘서트에서 첫째 아들 현균이 베이스 기타를  둘째인 현석이가 키보드를  쳤다. 이들은 혼성그룹 ‘케이즈’의 멤버이기도 하다. 리드 기타를 맡은 아버지 김수일은 “내가 겨우 꼬셔서 음악회를 하게 됐어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며 “아이들과 함께 공연 연습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며 웃으며 말한다. 음악적으로 훌쩍 커버린 두 아이들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론 기죽은 듯하였다. 사실 다 큰 아이들과 함께 공연을 준비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아버지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악의 장르도 다르고 공연을 하는 이유도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연을 준비하며 아버지와  아이들은 하나가 되었고 엄마의 뒷바라지가 좋은 공연을 만들었다. 콘서트 레퍼토리는 주로 7080 세대의 대중가요와 팝송이었다. 그러다 보니 두 아들은 아버지 세대의 음악을 자연적으로 익히게 됐고, 함께 한 아버지는 공연 연습을 하며 자신의 역사(?)랄까, 감정을 공유하였다고 한다.

하우스 콘서트는 집에서 하는 콘서트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는 거역할 수 없는 큰 스승이다. 청년기를 보내고 어느덧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살다 보니,  우리들도 그  아버지가 되어 버렸다.  나이 삼십 대의 치열한 직장 생활 속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지만, 가족에게는 인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우리 세대의 모습이다.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하며 그들만의 세계에 익숙해져 갔고,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회사 가서 돈 버는 사람이다’라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된다.  “아이들과 같이 놀아 주고 싶은데…,  가족 속에서의 나의 자리는 어딘가?” , 이것이 김수일 또래 아버지들의 고민이었다. 이민을 오는 목적이야 모두들 다르겠지만, “아이들 교육 때문에 …”라는 이유는 빠지지 않는다. 그렇치만, 정작 이민을 와 살다 보면  ‘좋은 아버지’의 꿈은 멀리 사라져 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김수일은 가족 속에서 자리를 찾아 헤매는 다른 아버지들에게  큰 부러움을 주었다. 잃어버린 아버지 자리를 콘서트를 통해 슬그머니 찾아간 것이다. 그때 김수일 가족음악회는 공연도 좋았지만, 뒤풀이가  무척 아름다웠다. 때마침 지나간 먹구름 사이로 어둠이 스며들었고, 미리 준비한 암바 조명은 뒷마당을 또 다른 무대로 만들었다. 분위기에 흥이 난 한 가족이 사물놀이 연주를 자청한 것이다. 바비큐 갈비와 시원한 캔맥주에 허기를 달랜 관객들은  한국의 사물놀이를 들으며 “이곳이 캐나다 맞아?”하며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지는 관객들의 ‘노래방 재롱’은 아마추어들만이 보여 줄 수 있는 큰 웃음거리였다. “내리는 비 때문에 비좁은 지하실에서 공연을 하다 보니 준비한 것들을 제대로 보여 주질 못해 아쉬움이 컸다”며  “내년에 다시 하면 잘할 수 있을 텐데..”하며 아이들 눈치를 살피는 모습 속에서 김수일 가족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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