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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수 Aug 24. 2020

'기러기 아빠'에게 보낸 '헬리콥터 맘'의 편지

 아내가 “당신한테 보내려 쓴 편지인데, 미처 못 보내고…”하며 편지를 건네주었다. 내가 한국에서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할 때 쓴 편지인데, 미처 못 보낸 것을 우연히 찾아 5년 만에 주었다. 그러고도 또 10여 년이 지난 편지다.


 "사랑하는 여보, 오늘이 9월 며칠인지… 수요일인데 17일인가? 17일에 축구 한-일전이 있었던 것 같은데... 결과가 궁금해서 아침에 인터넷 뉴스로 봤지. 신통한 것들.


 방금 미시즈 안한테 전화 와서 통화했어. 내가 있는 곳은 영달이 데리고 운전해서 학원 주차장에서 2시간 기다리는 중이야. 영달이가 이곳에 화, 수, 금, 토(10:00 am~12:00) 오는데 오는 날은 학교 끝나는 시간에 학교 앞으로 데리러 갔다가 집에서 밥 먹여 가지고 서둘러 학원으로 데려 오지. <~중략>

 아스팔트의 뜨거운 열기와 자동차 유리창의 열기가 화끈화끈해. 그렇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춥지. 지금 허리케인 이자벨호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로 상륙 중인데 금요일에 온타리오가 영향권으로 들어가나 봐. 정전, 비상식 등 대비하라고 보도하는데, 바람이 대단하게 불 것 같아. 한국도 태풍의 피해가 대단하다고 하던데 복구하는 데는 얼마나 걸릴지. <~중략>


 오늘 10월 2일 목요일. 며칠째 겨울처럼 춥고 난방도 서둘러서 내일부터 가동한대. 엊그제 스쿼시(Squash) 두 종류(초록색과 땅콩 껍질 같은 것) 2개를 사서 껍질 벗겨 죽을 쑤어 봤는데 껍질 까는데 힘을 많이 줬더니 오른쪽 어깨 부위 근처(왼쪽을 썼는데)에 담이 걸려서 어제부터 불편해.


 지난주 목요일 아침에는 교회 ESL에 가는데 구조대원(Paramedic)들이 1606호 문 앞에 있기에 Sandy는 자주 병원에 다니니까, 또 엠뷸런스가 왔나 보다 생각했는데, Heart Attack으로 돌아가셨대. 57세인데. 부검해보니 이틀 전쯤 된 것 같다는데 아르헨티나 Adel, Shiela, Ruth 모두와 친하게 지냈었는데… 그제 화요일, 장례식에 다녀왔어. <~중략>

 오늘은 10월 4일 토요일이야. 토요일은 수학 10~12시야. 영달이 데리고 와서 차에서 죽 좀 먹고 기다리는 중이야. 오늘 낮에 안 선생님이 “영(Yonge) 길에 싼 집이 나왔다”라고  집 보러 가기로 했어. 날씨가 왜 이리 추운지. 그새. 내년 4~5월까지 추울 텐데. 10월 21일이 영달이 생일이고,  26일이 현실이 생일이고…


당신이 이곳에 오면 핼러윈. 그러면 분위기는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그런데 작년에 느낀 건데, 이제는 크리스마스는 전반적인 명절이 아니다는 분위기로 바뀌는 것 같아.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는 많이 사용하지 않고 홀리데이로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가. 캐나다가 다인종, 다문화, 다종교를 인정해야 되기 때문인지 싶어. <~중략>


이 편지를 현실이 생일 카드랑 보내야  되겠어. 당신이 애쓴 만큼 비즈니스 결과가 좋아야 될 텐데… 건강하고 좋은 결과 가지고 토론토에서 만나길…


10월 31일 아침. Thankgiving day야."

 자녀의 주위를 맴돌며 챙겨주는 ‘헬리콥터 맘’이 떨어져 있는 ‘기러기 아빠’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잔잔한 사랑을 느낀다.  11월이면 결혼 25주년이 된다. 알콩달콩한 기억보다 우스꽝스럽고 씁쓸하기도 했던 일들이 많았던 결혼 생활이었다. 힘든 때도  잘 참아준 아내가 고맙다.  “여보, 사랑해요. 뭐 해줄까? 나이아가라에 가서 헬리콥터나 한번 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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