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너훈아와의 마지막 공연
그곳 한인 단체에서 송년을 맞아 고국의 가수들을 초청하여 연말 파티를 했는데, 내가 프로모션을 했다. 한국에서 온 출연진은 이미테이션 가수 너훈아와 조은성이다. 그곳에서 고국 가수가 에드먼턴 교민들 만을 위해 공연을 오기는 처음이라 한다. 두 명으로는 공연이 단조로워 다른 출연자들이 필요했지만, 예산이 부족해 사회는 그곳 교민들 중에서 맡기로 하고 공연 스텝도 그곳의 도움을 받았다. 행사는 저녁 식사 후 간단한 세리머니가 끝나면 공연을 하는 순서로 정해졌다. 일반적으로는 공연 연출만 맡게 되지만, 행사가 매끈하게 진행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식사 때 보여 줄 영상과 음악까지 준비했었다.
그런데 현지에 가 회의를 하다 보니 그곳에서 도와주는 분이 공연 전날, 밤을 새워 식사 때 틀 음악을 준비해 왔다고 한다. “어떤 음악을 준비했냐?”라고 했더니, 알려진 노래를 골고루 준비했단다. 저녁 식사 후 가수들의 공연이 있는데, 가수들의 노래를 튼다는 것도 그렇고 해서, “식사 때는 가벼운 경음악이나 드라마 배경 음악을 틀면 좋겠다”라고 했다. 다행히 그분이 이해를 해 준비한 곡 중에서 노래 가사가 없는 곡들을 골라 들려주었다.
행사는 델타호텔 컨벤션 홀에서 있었는데, 약 600명의 관객이 왔다. 그곳 교민들이 유동 인구까지 포함해 약 8,000명 정도라 하니 적은 행사가 아니다. 두 가수들에게 리허설을 하며 노래만 하지 말고 살아온 이야기나 재미있는 토크를 해달라는 부탁을 하며 미리 준비해 간 대본도 전달했지만, 공연 시간이 촉박해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주요 내빈 소개가 끝나고 객석 서서히 어두워지며 공연이 시작됐다. 그런데 사회자가 리허설 때는 분명히 무대 뒤에서 멘트를 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무대 위로 나와 가수를 소개한다. 어두운 무대 위로 가수가 등장해야 신비감도 있고 관객을 집중시킬 수 있는데, 처음부터 꼬인다. 조은성이 무대로 걸어 나와서 첫 곡의 MR 반주를 흘려보냈다. 그런데 나오자마자 갑자기 반주를 꺼 달라고 한다. 이건 무슨 돌출 행동인가? 관객들에게 자기소개를 하면서 흥겹게 놀라는 멘트를 하였지만, 반응이 썰렁하다. 아직 분위기가 달아오기도 전인데, 아무래도 사태가 심상치 않아 연출석에서 무대 뒤로 가 직접 출연자들을 챙기기로 했다.
한바탕 웃으니, 관객들이 풀어져 두세 명씩 무대 앞으로 나와 흥겹게 춤을 추기 시작한다. 공연 사회를 처음 해 본다는 해병대 출신의 MC도 게임을 제법 잘 리드한다. 흥이 오르니, 바로 너훈아의 신나는 트로트 메들리다. 자리에 앉아 있던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 무대 앞을 메운다. 2시간 동안 이어진 공연이 끝날 때쯤, 기분이 달아 오른 관객들의 앙코르가 쏟아진다. 둘이 마지막 곡을 부르고 내려오니 행사를 초청한 협회 회장이 무대 뒤편으로 와 악수를 청한다. “수고하셨어요. 원래 우리들이 늦게 흥이 올라요. 놀라셨죠?” “… 아, 네, 조금.”
너훈아가 분위기가 좋아 보이는지, “밥이나 먹으러 가죠” 하며 너스레를 떤다. 그러고 보니 아침밥은 커녕 혈압약 먹는 것도 잊었다. “네, 혈압약 좀 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