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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수 Aug 04. 2020

에드먼턴에서 해 보셨어요?

잊지 못할 너훈아와의 마지막 공연

“에드먼턴에서  보셨어요?”

 2012년 12월에 에드먼턴에 갔었다. 에드먼턴은 캐나다 앨버타주의 주도인데, 석유 산업이 주요 경제를 차지한다. 여기서 캐나다 동부지역과 미국으로 파이프를 통해 원유가 보내진다. 그러다 보니 가솔린과 석유 화학 공업이 발달한 곳인데, 우리 한인들은 주로 주유소나 편의점, 호텔, 모텔 등의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다. 교민들의 생활환경은 토론토나 밴쿠버보다 불편하지만, 비즈니스 규모가 큰 편이어서 직원들을 고용하면서 여가를 즐길 정도로 성공한 한인들이 많다. 또한 석유 산업의 붐으로 캐나다 내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일을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토론토에서 비행기로 4시간이 걸리는 곳이어서 토론토 교민이 가 볼 기회가 그리 쉽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에드먼턴은 캐나다 앨버타주의 주도인데, 석유 산업이 주요 경제를 차지한다.

 그곳 한인 단체에서 송년을 맞아 고국의 가수들을 초청하여 연말 파티를 했는데, 내가 프로모션을 했다.  한국에서 온 출연진은 이미테이션 가수 너훈아와 조은성이다.  그곳에서 고국 가수가 에드먼턴 교민들 만을 위해 공연을 오기는 처음이라 한다. 두 명으로는 공연이 단조로워 다른 출연자들이 필요했지만, 예산이 부족해 사회는 그곳 교민들 중에서 맡기로 하고 공연 스텝도 그곳의 도움을 받았다. 행사는 저녁 식사 후 간단한 세리머니가 끝나면 공연을 하는 순서로 정해졌다. 일반적으로는 공연 연출만 맡게 되지만, 행사가 매끈하게 진행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식사 때 보여 줄 영상과 음악까지 준비했었다. 


그런데 현지에 가 회의를 하다 보니  그곳에서 도와주는 분이 공연 전날, 밤을 새워 식사 때 틀 음악을 준비해 왔다고 한다. “어떤 음악을 준비했냐?”라고  했더니, 알려진 노래를 골고루 준비했단다.  저녁 식사 후 가수들의 공연이 있는데, 가수들의 노래를 튼다는 것도 그렇고 해서, “식사 때는 가벼운 경음악이나 드라마 배경 음악을 틀면 좋겠다”라고 했다. 다행히 그분이 이해를 해 준비한 곡 중에서 노래 가사가 없는 곡들을 골라 들려주었다.

에드먼턴 델타 컨벤션 홀

행사는 델타호텔 컨벤션 홀에서 있었는데, 약 600명의 관객이 왔다. 그곳 교민들이 유동 인구까지 포함해 약 8,000명 정도라 하니 적은 행사가 아니다. 두 가수들에게 리허설을 하며 노래만 하지 말고  살아온 이야기나 재미있는 토크를 해달라는 부탁을 하며 미리 준비해 간  대본도 전달했지만, 공연 시간이 촉박해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주요 내빈 소개가 끝나고  객석 서서히 어두워지며 공연이 시작됐다.  그런데 사회자가 리허설 때는 분명히 무대 뒤에서 멘트를 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무대 위로 나와 가수를 소개한다. 어두운 무대 위로 가수가 등장해야 신비감도 있고 관객을 집중시킬 수 있는데, 처음부터 꼬인다. 조은성이 무대로 걸어 나와서 첫 곡의 MR 반주를 흘려보냈다. 그런데 나오자마자 갑자기 반주를 꺼 달라고 한다. 이건 무슨 돌출 행동인가?  관객들에게 자기소개를 하면서 흥겹게 놀라는 멘트를 하였지만, 반응이 썰렁하다. 아직 분위기가 달아오기도 전인데, 아무래도 사태가 심상치 않아 연출석에서 무대 뒤로 가 직접 출연자들을 챙기기로 했다.  

에드먼턴에 온 이미테이션 가수 너훈아

조은성이 내려오고 너훈아가 올라가  한곡을 불러도 관객들의 반응은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보자’식으로 팔짱을 끼고 있다. 가수들도 긴장했는지, 부탁했던 멘트도 잊어버리고 노래만 부른다. 대개의 교민 공연은 반주가 나오면 관객들이 무대 앞으로 달려와 분위기가 오르는데, 뭔가 생각대로 잘 안된다.  세 번째 곡을 마치고 너훈아가 관객들을 향해 검은 눈썹을 추켜올리며 진짜 나훈아의 흉내를 낸다. “자, 오늘 지가 아랫도리 벗겠습니다. 마! 나훈아가 못 보여 드린 거 지가 보여 드리겠습니다. 어떻는교?” 무겁던 객석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이어서 조은성이 올라가 와이당을 친다. “버스에서 해보셨어요? 보리밭에서 해보신 분?” 객석이 웅성웅성하더니, “네, 저 해봤어요.” 뒤늦게 모두들 박장대소. 상품을 드리고 인터뷰를 한다. “밤에는 해 볼일이 없죠? 별이나 달만 보이죠.” “네…?”  “이해를 못하신 분들은 집에 가서 부인에게 물어보시고…”   

에드먼턴에 온  트로트 가수 조은성

                                                          


한바탕 웃으니, 관객들이 풀어져 두세 명씩 무대 앞으로 나와 흥겹게 춤을 추기 시작한다. 공연 사회를 처음 해 본다는 해병대 출신의 MC도 게임을 제법 잘 리드한다. 흥이 오르니, 바로 너훈아의 신나는 트로트 메들리다. 자리에 앉아 있던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 무대 앞을 메운다. 2시간 동안 이어진 공연이 끝날 때쯤, 기분이 달아 오른 관객들의 앙코르가 쏟아진다.  둘이 마지막 곡을 부르고 내려오니 행사를 초청한 협회 회장이 무대 뒤편으로 와 악수를 청한다. “수고하셨어요. 원래 우리들이 늦게 흥이 올라요. 놀라셨죠?”  “… 아, 네, 조금.”  

너훈아가 분위기가 좋아 보이는지, “밥이나 먹으러 가죠” 하며 너스레를 떤다. 그러고 보니 아침밥은 커녕 혈압약 먹는 것도 잊었다. “네, 혈압약 좀 먹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조은성의 “해 봤어요?”를  생각하며 혼자 빙그레 웃었다.  

언젠가 기회 있으면 나도 한번 써먹어야겠다. “에드먼턴에서 해보셨어요? 공연!” 


그 공연이 너훈아와의 마지막이 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2박 3일 동안에도 몸이 불편해 호텔 방에서 잠만 자던 너훈아는 1년 뒤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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