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이 무거운 날 먹는 돈까스

경양식 돈까스

by 달소반

식문화를 공부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맛집을 추천해 달라는 말을 듣고는 한다.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음식이 있고, 음식점마다 맛있는 메뉴가 있는가 하면 좀 덜한 메뉴가 있기 마련인데 무턱대고 맛집을 추천해 달라고 하니 난감했던 적이 종종 있다. 입맛이라는 것이 사실 주관적이기 때문에 나 또한 내 입맛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보다는 나보다 음식에 대해 더 잘 아는 요리 선생님이 추천해 줬던 곳이나 여러 매체에서 어느 정도 검증을 받은 곳(그렇다고 온전히 믿을 수는 없지만)을 말해주고는 한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다시 가고 싶은 맛집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몇 시간이고 줄줄 말할 수 있다. 수능 날, 자신 있었던 수리영역에서 뒤통수를 맞고 엉엉 울면서 먹었던 갈빗집, 천 원 단위를 억 원으로 바뀌서 "아가 몇 억 원어치 줄까?" 하시며 컵 가득 가느다란 밀가루 떡볶이를 담아줬던 학교 앞 분식집, 어학연수 시절 매일 저렴한 중국식 덮밥만 먹다가 한 달에 한 번 마치 휴가처럼 오믈렛과 갓 짜낸 오렌지주스로 작은 호사를 누렸던 스페인 레스토랑.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유년시절 최고의 맛집이었던 <마로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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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로니에>.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어릴 적에 경양식집은 당대를 주름잡는 외식 코스였다. 그 시절의 동네 경양식집이 대부분 그렇듯 어두운 조명에 조악한 인테리어, 구색 맞추려고 틀어놓은 클래식 음악까지. 어린 나는 그곳에 가면 괜히 발걸음도 조심스러워지고 책가방도 살포시 놓으려 했었다. 포크와 나이프로 돈까스를 한 입 크기로 썰어먹는 나를 보며 스스로 꽤 우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는 운동회 날 운동장에 앉아서 김밥을 먹는 것보다 그곳에 가서 돈까스를 먹는 것이 훨씬 더 멋지다고 생각해 엄마를 졸랐던 기억도 난다.


나를 <마로니에>에 가장 많이 데려가 준 사람은 할아버지였다. 학교와 집의 중간 지점에 할아버지 친구분이 하시던 철물점이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가끔 그곳에 나와 친구분들과 장기를 두셨다. 그 앞을 지나갈 때면 오늘은 할아버지가 나오셨나 하고 가게 안을 슬쩍 쳐다보고는 했다. 할아버지는 장기에 몰두하고 계셔서 뒷모습만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어쩌다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치면 할아버지는 "밥 먹었냐"라고 물어보시고 먹었다는 내 대답과는 상관없이 <마로니에>로 가서 돈까스를 사주셨다. 돈까스를 먹으면서 할아버지는 가방이 무겁지 않냐고 걱정하시며 집에 가는 길에는 항상 책가방을 들어주셨다. <마로니에>가 먼저 없어졌는지 내가 초등학교를 먼저 졸업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꽤 오랫동안 할아버지와 돈까스를 먹으러 갔고, 돈까스가 먹고 싶은 날이면 일부러 어깨를 한층 더 구부리고 철물점 앞으로 지나가며 할아버지 눈에 띄려고 꾀를 부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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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이 지난 지금, 책가방이 무겁냐고 염려해 주는 할아버지는 내 곁에 없고, 내 어깨의 무거운 짐은 스스로 다시 고쳐 메고, 다른 어깨에는 어린 내 아이의 책가방도 함께 메어져 있는 나이가 되었다. 더 이상 <마로니에>도 할아버지도 없지만 무거운 가방이 앞으로 내 인생에서 몇 번 아니 몇 십 번은 더 내 어깨를 짓누를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다리를 절면서도 손녀딸의 가방을 들어주던 할아버지의 모습과 <마로니에>에서 함께 먹었던 돈까스를 떠올리면 조금 가벼워질 수 있을 것 같다. 무거운 가방이 돈까스 하나로 해결되었던 열 살은 아니지만, 마흔을 코 앞에 둔 나에게 돈까스는 어깨의 짐을 잠시 내려놓게 해 주는 든든한 음식으로 기억된다.



경양식 돈까스


돼지고기 120g, 밀가루 1/4컵, 빵가루 1/2컵, 달걀 1개, 다진 양파·다진 생강·정종·소금·후추 약간씩

소스 : 버터 1큰술, 다진 양파 2큰술, 밀가루 1큰술, 닭육수 1/2컵, 우스터소스 2큰술, 케첩·설탕 1/2 큰술씩


부드럽게 두드린 돼지고기에 다진 양파, 다진 생강, 정종을 섞어 앞뒤로 잘 바른 후 재워둔다. 30분 정도 지나면 소금과 후추를 적당히 뿌려 간을 한 후 밀가루를 앞뒤로 잘 묻혀서 털어준 후 달걀물을 입혀준다. 그 위에 빵가루를 꾹꾹 눌러서 모든 면에 골고루 묻도록 한 후 온도가 오른 기름에 튀겨 낸다.

소스는 버터를 두른 팬에 양파가 투명하게 될 때까지 다진 양파를 볶아준 후 밀가루를 넣어 풀어준 뒤 닭육수를 넣고 끓여준다. 끓는 소스에 우스터소스와 케첩, 설탕을 넣고 잘 섞은 후 살짝 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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