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앞 떡볶이
언제부터 떡볶이를 좋아했을까. 유난히 집밥을 좋아했던 나지만 이상하게 떡볶이는 사 먹는 게 좋았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500원씩 모아 허름한 까치네 분식에서 먹던 떡볶이는 내 기억 속 최초의 친구들과 외식이었다. 고등학교 후문 근처에 있던 분식 트럭에서 팔던 가느다란 밀 떡볶이는 수험생활의 비타민이었고, 유도분만을 하루 앞두고 마지막 만찬처럼 느껴졌던 떡볶이는 유달리 매웠다.
그렇게 좋아하는 떡볶이지만 혼자 분식집에 가서 먹었던 날은 다 커서, 학교도 다 졸업하고, 서른도 넘어, 엄마가 되고 나서였다. 지금이야 혼밥쯤은 고기도 구워 먹을 수 있는 혼밥만렙 아줌마가 됐지만 10년 전 그때는 혼자 식당에 가서 밥을 먹어본 적도, 그럴 생각도 못했었다. 아이를 낳고 누구나 그렇겠지만 180도 다른 생활이 펼쳐진다. 비교적 순한 아기였지만 24시간 초보 엄마의 레이더는 늘 곤두서 있었다. 책에서 배운 낮잠타임에도 아이는 도통 잠들지 않았고, 그럴 때면 유모차를 끌고 하염없이 동네를 걷고는 했다. 그렇게 아이가 잠들면 다시 유모차를 돌려 집으로 가던 어느 날 작은 분식집이 눈에 띄었다.
혼자가 아닌 나는 가장 먼저 유모차가 분식집을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입구 턱이 낮은 지 확인하고, 유리문 안쪽으로 유모차를 세워놓을 만한 공간이 있는지도 봤다. 부피가 있는 유모차가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할까 손님이 많은 지도 살폈다. 다행히 오후의 어중간한 시간이라 테이블은 많이 비어 있었다. 아기가 깨서 울지는 않을까 걱정도 잠시, 용기 있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별거 아닌 일에 무슨 용기씩이나 하며 호들갑을 떨었나 싶지만, 하루 종일 아기와 집에 있으면서 아기에게 모든 것을 맞추던 서른 살의 나는 ‘나’에서 ‘엄마’로 한 순간에 변한 내가 어색했고, 그동안은 전혀 문제없이 쉽게 하던 일들도 괜히 낯설어졌다.
그렇게 들어간 분식집에서 떡볶이, 튀김, 순대까지 혼자 먹지도 못할 양을 시키고, 열심히 먹었다. 아마 다 먹지는 못했을 거다. 그런데 그 찰나의 시간이 어찌나 행복하던지. 학창 시절 학교만큼 열심히 출석 도장을 찍던 떡볶이집도 생각나고, 퇴근길 회사 동료들과 작은 앞치마를 하나씩 메고 보글보글 끓어먹으며 하루의 피곤함을 달랬던 즉석 떡볶이 골목도 생각나고, 떡볶이 맛집을 정복한다며 서울 곳곳을 찾아다녔던 이십 대의 부지런함도 생각났다. 비록 떡볶이를 앞에 두고 수다 떨 사람은 없었지만 유모차 안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아기가 함께 하니 그걸로 됐다. 언젠가 내 아이와 떡볶이 한 그릇을 사이에 두고 후후 불며 맛있게 나눠 먹는 상상도 했다.
모든 게 처음이 어렵지 혼밥도 하다 보니 별 거 아니었다. 육아를 하고 나이가 들다 보니 가끔 어떤 대화 없이 혼자 여유롭고 우아하게 밥 먹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가끔 아니고 종종, 어쩌면 그보다 더. 그 후로 나는 버라이어티한 혼밥의 역사를 써 나갔지만 떡볶이를 최애 음식으로 꼽는 것은 여전하다. 유모차 타던 아이는 이제 문제집을 들고 학원에 간다. 아이를 학원에 내려주고 나는 십 대 아이들이 가득한 학원가 분식집에 자리를 잡는다. 빨갛고 윤기 나는 분식집의 떡볶이는 이제 내 입맛에 너무 달고 짜다고 느껴지지만 그 맛에 먹는 게 학교 앞 떡볶이니까. 졸업을 하고, 나이를 먹고, 엄마가 되고, 몇 번의 이사를 해도 언제나 그곳에는 나의 떡볶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