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한 친절은 베풀지 않아도 된다”라는 문장을
처음 들었을 때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와닿았다.
‘친절’이라는 단어 앞에 붙은 ‘과한’은
친절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만들었다.
과연 어디서부터 친절과 과한 친절을 나눌 수 있을까?
어느 날, 다이소에 갔다.
건전지 코너 앞에서 어르신 한분이
잘 열리지 않는 차키를 열며 허둥지둥하셨다.
다이소 알바경험으로 동전건전지를 고를 때
어려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는
혹시 도움이 필요할까 주변에 있었다.
어르신은 차키를 열어 건전지를 보았지만
작게 적힌 글씨가 보이지 않아 점원에게 부탁했다.
“건전지가 어떤 거 들어가요?”
“거기 적혀있어요”
“잘 안 보여서요. 좀 봐주세요”라며 부탁하시던
어르신에게 점원은 “저도 안 보여요”라고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괜찮으시면 제가 도와드릴까요? “ 하며
맞는 건전지를 찾았다.
어르신은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셨다.
“고마워요. 잘 안 보여 가지고 허허 고마워요!”
이 상황은 과연 친절일까 과한 친절일까?
’ 상대방이 불편함을 느끼면 과한 친절이겠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겪어봐야 아는 일이기에 예방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상황은?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가득 찼다.
충분히 모두 타고 갈 수 있는 상황에 어떤 사람이
계단으로 가겠다며 엘리베이터를 내렸다.
그 사람이 내리고 난 뒤
“저런 과한 친절은 베풀 필요가 없는데”라는 소리가 들린다.
내린 사람은 친절을 베풀 목적이 아닌
그저 꽉 찬 엘리베이터를 타기 싫어서
계단으로 갔을 수도 있다.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내린 사람을 보고
‘타고 가도 될 텐데’,
‘사람이 너무 많아 불편했나 보다’라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누군가가 입 밖으로 내뱉은
“과한 친절”이라는 단어에
과한 친절을 베푼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 상황에서 불편함을 느낀 사람이 있었을까?
정원초과로 문이 닫히지 않는 상황도 아니었고,
엘리베이터가 지체되지도 않았던 상황에
누구 하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럼 과한 친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 상황은?
“과자 먹을래?”, “아니, 괜찮아”
“어떤 거 먹을래?”,“ 배불러서 안 먹어도 돼”
“그래도 이거 먹어”
몇 번이나 거절했음에도 요구하는 친절은
명백히 과한 친절이다.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도 아닌데
도움을 주는 행동은 과한 친절일까? 그냥 친절일까?
그 경계는 늘 모호하다.
요즘은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어렵다.
그저 모르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묻는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길을 물어보는 것도,
키오스크와 같은 기계를 다루는 것도
타인에게 말 거는 것 자체가 큰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베푼 친절이
혹여나 과한 친절로 치부되는 것은 아닐까 하며
“내가 도와도 되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생각으로 돕지 못한 상황들을 수도 없이 곱씹으며
나의 엄마아빠라고 생각하고
상황에 맞게 도와드리려고 한다.
주문하는 방법이 어려워 들어가지 못한 식당도
키오스크 조작 방법도
어려운 메뉴에 이용하지 못한 드라이브스루도
엄마 아빠가 경험하지 못해 누리지 못했던 것들이니까
타인에게 무관심해진 요즘
누군가의 호의를 과한 친절, 오지랖으로 치부하지 않기를.
이 정도의 친절, 이런 오지랖은 있어야
세상 살만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