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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순 Nov 11. 2020

이민 칠년차, 2020년 정리 1

잘한 것 하나 못한 것 하나 

잘한 것 한 가지 

못한 것 한 가지 


올해 들어 내가 잘 한 것, 그래서 내년에도 또 하고 싶은 것은 이민 칠 년 차에 내 적성에 더 맞는 직업을 찾았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길이 심적으로 그렇게 험난할 줄은 차마 알지 못했지만, 나는 한 편으로 운이 좋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 열심히 노력하기도 했다. 이민을 가서 정착을 할 마음이 있다면, 정말로 생존형으로 마음이 바뀌어야 한다. 이 나라에서 이 나라의 돈으로 먹고 살려면, 말그대로 이 나라에서 요구하는 직업군을 가질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현재 누가 보면 이상하게 여길 정도로 남편과 떨어져서 살고 있다. 이유는 하나다. 내가 이 직업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올 해 이 일터에서 일하게 되었고, 남편은 남편의 일을 버릴 수 없기에 우리는 일단 이렇게 살게 되었다.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다. 다만 나는 올 해 내가 잘한 것은 내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올 해 못한 것 한가지는 바로 글쓰기다. 참으로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까. 글쓰기를 좋아하고 꼭 작가라는 이름표를 달고 싶으면서도, 브런치에 쓰는 자유 글쓰기 마저 업데이트를 잘 못한다. 이토록 쓰기를 힘들어 하면서, 스스로에게 자책을 하고, 마음이 살짝 괴롭다가, 계속해서 글쓰기를 외면하는 나를 올 해 자주 보았다. 코로나 블루 속에서 유투브를 한정없이 켜놓고 있기도 했다. 유투브가 나 스스로를 폐인으로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에 한 발 빠져나와 팟캐스트를 듣기도 했다. 며칠 전 팟캐스트에서 어느 시인의 이름이 흘러 나왔다. 사실 나는 그 시인의 시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대학원 시절 그 분을 한 까페에서 만나 인터뷰할 소중한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그 분과 한 두시간 남짓 인터뷰를 하면서 너무도 그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팟캐스트를 듣는데 그 분의 목소리도 아니고, 그 분의 성함 세 글자가 나왔는데 밥을 먹다 목이 메일 뻔했다. 목이 메이는 나를 보면서 생각을 했다. 무엇이 나를 울컥하게 했나. 아마도 그 시절에 대한 내 모습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대학원생이었던 나는 노력은 1도 하지 않으면서, 마치 장차 미래에 큰 작가가 될 것 같은 착각을 버리지 못했다. 박사도 아닌 석사생의 위치는 그러했던 것 같다. 치기 어린 학부생은 아니지만, 또 아직 미래가 확정되지 않았기에 여전히 내용 없는 꿈을 꿀 수 있었던 시기. 작가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지, 혹은 작가가 아니더라도 뭔가를 하려면, 그것이 거창하고 큰 무엇이 아니더라도, 입에 풀칠하는 것조차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에 대해 처절한 깨달음이 없었던 시기였다. 마흔이 가까운 내가 밥을 먹다 한 시인의 이름을 듣고, 목이 메일 뻔한 이유는 이십대의 나에 대한 향수이자 동시에 반성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차 안에서 글을 쓰고 있다. 나는 나를 안다. 집에서는 쉬는 것 외에는 제대로 된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는 분명 이 미국땅에도 커피숍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그래서 나는 별다방에 가서 음악을 들으며 뭔가를 끄적였다. 그 순간에는 비록 그것이 일기라 할지라도 뭔가 생산적이고 내가 내 자신이 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코로나가 터졌고, 육 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집콕 생활이 계속되고 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다. 커피숍이 없으면 차안이다. 중요한 건 그걸 하고자 하는 마음이니까.  


코로나 영향권 아래, 미국에서의 집콕 생활 되돌아보기 

            나는 한번 그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미국에서 이민자로 사는 것은 절반 정도는 자가 격리스럽다’ 한국에서 살 때처럼 주말에 만날 친구 목록이 쫘악 있지 않다. 그렇다고 불교에 가까운 내가 종교까지 바꿔가며 한국 교회에 매 주말 나갈 부지런함도 없다. 그리고 잘 알 지도 못하는 한인들이 내게 질문을 해 올 것이다. ‘아니 왜 애를 안 낳아?’ 심지어 지금은 미국에서 거의 유일한 가족이었던 남편도 없다. 그런데도 나는 잘 살고 있냐고 묻는다면 내 답은 그럭저럭 그렇다 이다. 맞다. 나는 사실 꽤나 잘 살고 있다. 우선 춥지 않은 캘리포니아 주로 이사를 왔기에, 이 곳의 어마 무시한 물가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이나 통장 잔액을 보기도 하고, 또 신용카드 내역을 보고 또 보는 사태가 발생하긴 하지만, 일단 따듯한 것은 커다란 장점이다. 날씨가 사람의 기분을 많이 좌지우지하지 않던가. 그래서 재택 근무를 하는 동안, 저녁 시간에 최대한 걸으려고 노력한다. 한 시간 걷기. 그것마저 하지 않으면 에너지가 남아서 참으로 괴롭다.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는 대신, 자연을 택했다. 아, 이 긴긴 주말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나만의 취미를 만들어야 한다. 나도 ‘미국에 사는 멋 드러진 한인들’처럼 골프를 쳐 볼까? 골프의 ‘골’자도 모르는데, 이 스포츠가 나한테 맞는지 안 맞는지도 모르는데, 골프채부터 덜컥 구매하는 건 아니다 싶다. 그래서 그냥 나의 취미는 단순하게도 걷기와 간단한 등산이 되었다. 그래도 몸을 움직이는 것처럼 중요한 게 없다. 

            한국에서는 코로나 검사도 빠르고, 뭔가 의료계에 대한 믿음이 있다. (그래도 수술실에 영업사원을 끌어들이는 한 고발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는 마취에 대해 불신과 무서움이 생겼다.) 그런데 미국에서 코로나가 걸리면 얼마나 심리적으로 막막한 기분이 들까? 그래서 나는 사람을 만나도 한 명을 만난다. 갈 곳은 장보는 곳(그나마 한 군데가 아니라 얼마나 다행인가), 혼자 걷는 곳, 등산하는 곳 정도다. 참으로 단순하지 않은가. 그래도 걷다 보면 커피숍에 들어가 작은 케잌을 사서 집에 가져 오기도 한다. 

            아, 여기까지 쓰고 보니, 그래도 나는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지낸다 싶다. 그래도 나는 처절하게 혼자가 아니다. 온라인으로 남편과 가족을 만나기도 하고, 또 이 곳 일터에서 만난, 직장인 동료/친구같은 사람도 몇 몇있다. 하루 하루를 내가 조금씩 정해놓은 규칙을 지켜가는 것으로 채워가면 된다. 일 주일에 최소 두 번 최대 다섯번 걷기. 해가 좋으면 낮에 일하는 쉬는 시간에 오 분이라도 태양볕을 쪼이기. 정~ 심심하면 차에 쌓이는 먼지를 닦으러 세차하러 가기. 그리고 요가도 해 보기. 오늘의 결론. 이 정도면 스스로를 칭찬해 주자. 이민 7년차, 잘 살고 있다.  


사진: 저녁 무렵. 2020 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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