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RBG 감상글
#들어가며
이 영화가 왠지 꼭 보고 싶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 이건 ‘나홀로 여성 영화제’에 다녀온 기분’이었다. 대학시절 혼자 혹은 친구들과 이화여대 근처에서 하는 여성 영화제에 갔다. 혼자 보면 적적했지만 그것도 좋았다. 온전히 영화에만 몰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보고, 음식을 먹으며 수다를 떨면 영혼이 성장하는 기분이었다. 그때 그 친구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나.
여성 영화제에서 본 영화들은 쉽게 구할 수 없고, 그 내용들이 보고 나면 후회 대신 영감, 감상, 눈뜨임(eye opening)을 주었다. 미국 오클라호마와 콜로라도에 살면서 본 대부분의 영화들은 큰 극장에서 하는 할리우드 영화들이었기에, 다큐 영화나 예술 영화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영화 취향이 다른 남편이 출장을 갔을때, 이 ‘나 홀로’ 즐기는 쫀쫀한 시간들을 내가 좋아하는 영화 보기로 채웠다. 찾아간 극장은 작았고, 남편의 말처럼 내 취향은 ‘할머니’스러운 것인지, 대부분의 관객들이 장년, 노년층이었다. 나는 오히려 그것이 반갑다. 그만큼 내 취향과 선택은 성숙한 것이란 말이니까. 남편을 데리고 왔으면 분명히 또 말도 안되는 핀잔을 주었겠지만, 이제 이런 것에 개의치 않는 힘이 내게 있다.
#기억하자 그 이름,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Ruth Bader Ginsburg (RBG)
현재 미국의 연방 대법원 Supreme Court 대법관은 총 9명이며 그 중 한명이 이 영화의 주인공인 RBG Ruth Bader Ginsburg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이다. 짧게 그녀를 RBG라고 부른다. 영화는 그녀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보여주고, 그녀가 법조인으로서 해 낸 일들을 판례별로 풀어 놓는다. 미국에 살지만 미국의 법에 무지한 나로서는 이 영화가 내게 좋은 교과서가 된 기분이다.
유대인인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는 17세에 어머니를 잃는다. 그러나 평생 그녀의 삶의 지침이 된 어머니의 가르침 두 가지는 내게도 큰 울림을 남긴다. 첫번째는 Be a Lady 숙녀가 되거라.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어머님이 말씀하신 Lady라는 말에는 ‘상대방에게 소리지르거나 화를 내거나 욕하지 않고 점잖게 교양있게 조곤조곤 말하라.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른다고 일이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을 멀어지게 할 뿐이다.’ 라는 의미가 있었을 듯 싶다. 그녀의 캐릭터는 ‘수다를 떨지 않고, 조용하며, 조근조근 차분히 말을 하고, 큰 소리를 내지 않는, (그러나 단단한 힘을 지닌)’ 이다. 괄호 앞의 형용사들이 그녀의 Lady스러운 면이지 않을까. 그리고 내 눈은 거기에 멈춰있다. 나 역시 그러한 그녀의 면들을 참으로 꼭꼭 닮고 싶다. 버럭, 화를 내지 않고, 큰 소리로 말하지 않고, 차분함으로 매사를 다룰 수 있다면! 대법관 RBG의 어머니가 그녀에게 두 번째로 가르친 것은 독립적이어라 Be Independent였다고 한다. '왕자님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았어요'의 주인공이 되는 것도 좋지만 남편에게 전적으로 의지하지 말라는 가르침. 너 자신은 너가 먹여 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녀가 현재 84이고, 이 분의 어머님의 나이를 생각한다면 시대에 비해 상당히 앞선 사람이다.
Be a Lady
Be Independent = Be able to feed for yourself.
대법관 RBG의 인생에서 큰 영향을 미친 두 번째 사람은 그녀가 코넬 대학교에서 만난 남편 Martin Guinsgurg 마틴 긴스버그이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영리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첫번째 남자’라고 주인공은 회상했다. He was the first man who cared that I have a brain. 그녀의 첫 대학교인 코넬대 법대에는 남학생들이 수적으로 무척많고 여성이 희귀할 정도여서 20대의 RBG는 늘 새로운 남자와 데이트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남자들이 그녀의 인물, 외양에만 신경을 쓴 반면, 마틴은 그녀의 똑똑함을 매력적으로 봤다.
이 다큐 영화에는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 (아들, 딸, 오래된 친구들, 손녀, 그녀가 변호를 했던 사건의 피고인들 등)이 나와서 인터뷰도 많이 하는데 안타깝게도 남편분은 2010년에 작고하셨기에 영화에서 그의 인터뷰는 없다. 다만 그가 생전 했던 스피치들은 나온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대법원의 판사로 임명이 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헌신한 인물이다. 남성 배우자가 자신의 아내의 성공을 위해 전화를 돌리고, 네트워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주인공이 얼마나 운좋은 인물인지를 알게 해 준다. 마틴 역시 세금 관련한 변호사였다. 1993년 미국의 42번째 대통령인 클린턴이 재임시절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는 대법원 판사가 된다. 1933년생인 그녀가 딱 60세였을 때의 일이다. 법의 효력이 매우 크고, ‘법대로 사회가 이뤄지는 것’이 가능한 미국에서 법의 기능과 힘이 강력하기에 그만큼 최고 기관인 대법원의 판사 임명은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영화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도 나온다. “(클린턴) 대통령이 민주당이니 민주당의 정치적 성향에 어울리는 판사를 지명한다.”
#미국 양성 평등의 과거와 현재
영화에는 RBG의 손녀딸이 등장한다. 그녀는 하버드 법대 2017학번인데, 그녀의 반이 최초로 하버드 법대에서 50대 50으로 남학생과 여학생수가 동일한 해란다. 그에 비해 루스 긴스버그가 하버드 법대를 다니던 1957년에는 수백명의 남학생 중 대 여섯명 만이 여학생이었다고 한다. 그 시절에는 여성 법조인을 고용하지 않는 것도 당연시 되던 시절이었단다. (This law firm doesn’t hire women) 또한 1960년대 당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집안의 기둥을 남성으로만 한정 지었고, (Husband is the matter of a community) 여성 직원이 결혼을 할 경우 그녀를 해고하는 것이 합법이었으며, 아내가 은행에서 신용을 만들려면 남편이 코사인co-sign을 해 줘야 하는 것이 법이었다. 이러한 일들이 고작 약 50년 전에는 버젓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1960년대의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그녀는 1963년에 법대 교수가 되어 젠더와 법을 강의한다. 이 시기는 미국에 여권 신장 운동이 한참이던 때다. 내가 대학교때 열심히 읽었던 글로리아 스타이넘 여성 운동가도 이 영화에서 인터뷰를 한다. Women started to notice that it was not them who are crazy, but the system was.
#RBG가 맡았던 판례들
Frontiero v Richardson
셰론 프론티에로 (Sharron Frontiero)는 공군 장교였는데, 자신의 동료 남성들은 housing allowance 를 받는데 그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소송을 했다. 영화에서 그녀가 직접 나와 인터뷰를 했다.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가 1975년에 맡은 또 다른 사건은 Weinberger v. Wiesenfeld라고 불리는 데, 싱글 대디가 자녀를 키울 때 사회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소송을 건 남자는 아내가 아이를 낳고 사망하여 유일한 부모가 되었는데, 사회 보장 혜택을 남자 부모 (어머니가 아닌)라는 이유로 받지 못하는 것 또한 양성 평등에 어긋남을 보여주었다. 여성 남성이라고 사회적으로 분리해 놓은 젠더에 기반한 차별에 법적으로 맞선 사람이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RBG였다. 그 밖에도 그는 변호사 시절이건 연방법원 판사가 되어서도 양성 평등에 기반한 판단을 내린다. 1996년에는 버지니아 사관학교 Virginia Military Academy (VMA)에서 최초로 여학생이 입학하는 것을 허락하는 소송에서 승리하기도 한다.
#나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줄 아는 사람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가 판사로서 법을 급진적이고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반대편에서 보수성향을 가진 판사는 스칼리아 Scalia 인데, 두 사람은 사회적 정치적 견해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잘 지낸다고 한다.
#나오며: 80에 꽃을 피우는 인생
이 영화를 보면,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가 충실히 운동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녀는 두 번의 암을 이겨냈다. 특히 80대 현재의 그녀가 플랭크 운동을 하는 장면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영화 후반부에 그녀가 어떤 질문에 답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질문은 "혹시 오바마 대통령이 재임하는 시기동안 은퇴할 생각을 하신 적은 없나요? 그러면 오바마가 진보 성향의 젊은 판사를 고용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니 말이죠." 이 질문은 예의 없다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미국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법이고 그 법을 진보적으로 해석할 것인가 보수적으로 해석할 것인가에 따라 사회의 흐름과 판이 새롭게 짜여질 수 있음을 생각한다면 '미래'를 위해서 (나이든) 그녀가 자신의 직업을 누군가에게 양보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다. 나는 그녀의 대답이 존경스러웠다. 그녀의 대답은 아주 평범했다. '내가 일을 할 수 있는 동안 나는 판사로서 최선을 다 할것이다.' 그리고 이 말이 정답같다. 이 다큐 영화 후반부에는 오늘날 그녀가 얼마나 인기가 많은 사회적 인물인지를 보여준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그녀의 캐릭터를 문신으로 새기기도 하고, 컵, 티셔츠 등 다양하게 상품화하기도 한다.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우상이 되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고, 또한 이러한 인물과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이 감사하기도 하다.
*이미지 출처 - 이 사이트에가면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다.
https://www.oyez.org/justices/ruth_bader_ginsburg
*이미지 출처
https://www.imdb.com/title/tt76899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