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주로의 이동을 앞두고
#사는 것은 여행하는 것
며칠 전 가수 서수남 님의 인생을 다룬 휴먼다큐 프로그램을 보았다. “인생이라는 팔도 강산 굽이 굽이를 제대로 여행했다”고 비유적으로 말하는 가수를 보며, 현재 집없이 한 달 정도를 버텨야 하는 내 상황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남편과 나는 이제 콜로라도에서의 이 년을 뒤로하고 타주로 이동한다. 이사에 앞서 살던 집과도 헤어졌다. 영원한 집은 없다. 인생을 여행이라 생각한다면 지금의 상황 역시 스트레스가 아닌 잠깐의 지나감이다.
#5년동안 5번 이사
미국에 살면서 이번이 다섯 번째 이사이다. 5년동안의 기록이다. 한 도시에서 두 번의 이사를 하고, 오클라호마 주에서 콜로라도 주로 주의 경계를 넘는 이사를 했다. 그리고 덴버에서도 아파트에서 일년을 살다 작은 집으로 이사를 왔고 그 짐들이 지금은 모두 이삿짐 센터 창고에 들어가 있다. 이민 역시 대대적인 이사인데 미국 대륙 내에서의 이사 쯤이야...... 다만 이 여러번의 이동을 경험하며 느끼는 것은 모든 물건들이 한 점의 그림자도 남기지 않고 싹 빠져나갔을 때의 후련함이었다. 그 전에는 찬장이고 옷장이고 고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었던 이 물건 이라는 놈이 이사 때가 되면 밖으로 튀어나와 사람 맘을 그렇게도 심란하게 한다. 그 물건들을 보고 있으면 없던 우울증에 걸릴것만 같다.
#물건없이 살아보기 - 어떻게?
고백컨데 나는 상당히 치우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인간이었고 결혼 전에는 이를 지각하지 못했다.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데에는 수많은 ‘물밑에서의 움직임’ (호숫가에서 아름답게 여유를 즐기는 새들의 물밑 다리 움직임과 같은 것) 이 필요한데 내게는 치우기가 그것이다. 게다가 배우자의 성향이 청소 대왕이다. 나의 이러한 조금 게으르고, 나만의 질서가 있지만 타인의 눈에는 그저 정리되지 않고 지저분한 상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물건을 정리하지 못할 바에 최대한 물건을 사지 않음으로 인해 물건의 갯수를 줄이는 것....
#집대신 에어 비엔비
오늘까지 육일동안 에어 비엔비를 처음으로 경험했다. 주인이 집에 빈 방이 있어서 손님들에게 하룻밤에 얼마씩을 받는 식이다. 한국의 민박집이 현대의 기술을 만나 air bnb 로 탄생한것 같다.
첫날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처음본 호스트분과 짧게 대화를 하고 그녀가 안내해 준 방과 화장실을 썼다. 화장실은 손님용이어서 우리만 썼다. 에어 비엔비를 경험하며 좋았던 것은 이 기회가 아니라면 절대로 구경하지 못했을 타인의 집과 삶을 살짝 엿볼수 있었다. 집 만큼 사적인 공간이 또 있을까. 예컨대 나는 주인이 미국의 전대통령 버락 오바마에게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으며 그녀가 꾸며놓은 게스트 룸은 온통 푸른색 계열이고, 화장실은 하와이를 연상케하는 소품들로 장식이 되어 있었다. 또한 에어 비엔비를 하다보니 당연히 ‘손님의식’이 생겨 여행자의 마음과 자세, 물건과 이별하기에 더욱 가까워졌다. ‘며칠 머물다 갈’ 사람이기에 장보는 것보다 그날 먹을 것만 사고 ‘남기거나 쌓아둘 것들’이 없다. 물건이 아닌 경험을 구매하라. 이 말처럼 어려운 말은 없지만 꼭 내 삶의 방향을 이렇게 설정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