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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순 Aug 17. 2021

미라클 모닝은 커녕

이민자의 주말 한 조각

#새벽 여섯시 반 

    지금은 월요일 새벽 여섯시 반이다. 이 시각에 브런치를 열어서 뭔가를 써 보겠다고, 식탁 앞에 앉은 내 자신을 칭찬해 줘야겠다.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기 위해 일어난 것은 아니다. 다만 오늘은 월요일이고, 나도 모르게 내 몸은 살짝 긴장해 있다. 이런 긴장은 스트레스가 아니다. 뭔가 좀 더 '하고잽이' (자발적으로 하려고 하는 자)의 마음에서 우러난 어떤 마음이다. 에너지와 시간이 있으니, 그래도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뭔가라도 생산해 내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역시, 내 인생의 힘은 시간, 에너지, 그리고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 이 세가지가 어우러져야 겨우 글쓰기 하나가 가능하다. 하우! 그런데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에너지는 얼마나 커야 하는걸까! 


#이민자의 주말 

    내 주말이 어떠했는가에 대해 말하기 위해, 꼭 이렇게 '이민자의' 라는 형용사를 붙이는게 맞을까? 

일 년이 넘는 재택 근무가 끝이 난지 어언 이 개월이 넘은 것 같다. 다만 그 이 개월의 시간은 내가 소화를 제대로 하기도 전에 마치 국수가락이 목구멍으로 후루룩, 날라가듯이 그렇게 지나가 버린 느낌이다. 일을 한다는 것. 어떤 조직에 들어가서 그 조직의 일원이 되어 함께 하루에 8시간을 시공간을 공유한다는 건 그런 느낌일지도 모른다. 다 같이 한 버스를 타고, 어딘지 모를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 그 버스의 목적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버스안에 있다는 것, 그 버스 안에서 버틴다는 것, 그 버스 안에서 옆사람, 앞사람, 뒷사람과 나의 서열을 비교하면서 아무도 시키지 않은 경쟁 구도에서 이기거나 지는 것, 혹은 그 경쟁과 무관하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꿋꿋이 이 버스에서 내 자리를 지키겠다는 것, 그것이 일이다. 이 일자리의 기회, 그것이 미국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그래서 나의 주중은 뭔가 그 버스 안에서의 덜컹거림, 사람들간의 말소리와 수군거림, 혹은 내 머릿속에서 혼자 만들어낸 신경전, 이따위들로 에너지를 쓰고 또 쓴다. 물론 늘 마음의 중심에는 그런 소리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일의 성과, 업무의 질이다. 주변 사람들의 말과 소문은 뿌리가 없이 그냥 휙휙휙 지나가는 말뿐이다.' 그렇게해서 나는 월,화,수,목, 금 오일을 꼬박 버스 안에서 보낸다. 사실 오히려 주말이 좀 더 알 수 없게 괴롭다. 

    주말에는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가? 꼭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그래도' 만나서, 하하호호 거리면서, 사회 생활을 하는게 맞는가? 나는 무교인에 가까운데, 여긴 종교가 많은 것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는 나라이니, 나도 이 나라의 문화에 맞게 한인 교회를 찾아 나서야 하나? 혹은 미국 교회는 어때? 모르겠다. 결론은 '그래서 나는 사실 주말 이틀 내내 직접 누군가를 만나지 않았다.' 대신 내 마음이 닿는 사람과 통화를 하고 챗을 했다. 그들은 태평양 너머에 있다. 한국에. 이들과의 대화, 소통은 위안이 되고, 웃음이 되어 주더라. 그래서 좀 휴식이 되더라. 

    여전히 남편과 나는 멀리 멀리 떨어져 있다. 둘다 일을 포기하지 못했고, 우리에게는 아이가 없고, 아이는 커녕 자가 소유의 집도 없다. 뭔가 참 없어 보이는데, 그래도 산더미 같은 일은 있고, 무료한 주말이 있다. 그래도 또 나는 그 주말의 강을 잘 건넜다. 딱 두 번 외출을 했는데, 이상적으로는 '운동'을 위한 외출이었어야 하건만, 현실은 '배를 채우기 위한' 외출이었다. 한국 음식점에 전화로 주문을 했고, 또 두 곳에서 장을 봤다. 사실 토요일에는 '나는 혼자서도 잘 살아요!'를 속으로 외치며 고기를 구워먹었다. 그런데 그 결과는 '꾸역 꾸역' 먹은 꼴이 되었다. 미련하게도, 음식을 먹고 비스듬히지만, 누워있는 바람에, 몇 시간 후 목이 캑캑거렸다. 열은 안 났지만, 몸이 조금이라도 아프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혹시 그 코**? 백신 주사를 두 방이나 맞았지만, 그 놈의 돌파변이인지 돌연변이인지가 하도 무섭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일단은 감기약을 먹고 누웠다. 그리고 몇시간 후, 다시 목이 쾍쾍 막혔다. 아. 이러다 독거사하는 것인가? 이래서 사람은 혼자 못사는 것인가? 별별 생각을 다 하다가, 아무래도 이건 급체지 싶어 손을 땄다. 스웨덴에서 이 년, 우크라이나에서 이 년, 미국에서 팔 년, 도합 십이년의 해외 생활에서 내 '서바이벌 키트' 생존형 도구에 손꼽히는 나의 바늘들! 그 바늘 하나를 꼽아 들고, 왼손으로 가슴을 위에서 아래로 쭉쭉 쓸어 주고, 오른팔도 쭉쭉 쓸어준 다음, 흰 실로 비장하리만치 단단하게 오른손 엄지 끝을 단단하게 묵어서, 엄지가 마치 화가 난 아이의 얼굴처럼 시뻘개지면, 그때 톡! 하고 바늘로 엄지 손톱 밑을 찔러 준다. 아주 살짝 따끔한 느낌이 들어야 제대로 된 것이다. 엄지에서 시뻘건 눈물방울 (맞다, 내 글의 핵심은 과장이다.)만한 핏방울이 퐁, 튀어나왔다. 오히려 그 핏방울이 반가운건 무슨 심리인가. 너를 보니, 이제 내 속이 펑! 뚫리겠구나 하는 안심이다. 그리고 미국이 내게 준 두 번째 '선물'이라고 또 과장해서 표현할만큼 효과력이 좋은 분홍색 소화액, 펩토 비스모를 마셨다. 소화제도 먹었다. 그러고 났더니, 내 주말의 비극 드라마는 끝이 났다. 다음날 나는 다시 무서운 소화력을 발휘했다. 

    결론은 이러하다. 해외에서의 나홀로 생활은 지겨울 정도로 끝없이 자기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 그런데 그것이 너무 너무 너무 어렵다는 것. 그런데 그러지 않으면, 나처럼 고기먹고 체해서 골로 갈 정도로의 고통에 시달리다, 주말을 보내고 마는 어이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는 거다. 

그나마 나의 주말 혹은 주중의 자투리 시간을 풍요롭게 해 주는 것들이 있었으니, 한국에서 건너온 책, 혹은 전자책들이다. 요즘 즐기는 나의 '최애글'들은 #똥두, #김은령 작가의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 그리고 #권여선 소설집이다. 이 최애글에 대한 리뷰는 다음 편에......

저 나무는 참 신기하게도 생겼다. 거미줄 같기도 하고, 이끼같기도한 푸르스름한 '그 무엇'이 머리카락처럼 바람에 흩날린다. 그래, 이런 풍경을 보면서 삶을 즐기자. 2021년 팔월


#여기에 담긴 글과 이미지는 제가 (조소현) 겨우 짜내서 만든 것들이므로 함부로 사용하는 것을 금합니다. 쓰실 때에는 출처를 꼭 밝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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