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순 Oct 09. 2018

테드 엑스 관람 후기

                           

#테드TED 

    내가 테드TED라는 브랜드를 처음으로 알게 된 곳은 서울 직장 상사로부터였다. 그 분은 제품 홍보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제품 홍보를 테드 토크TED TALK를 통해 하면 효과가 엄청날걸!" 이라고 하셨다. 테드 라는 이름을 그때 처음으로 접했고, 그 후로 듬성 듬성 인터넷을 통해 테드 강연을 듣곤 했다. 한국에도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가 있다. 문제는 테드에 대한 나의 욕망이 시작되었다는 것. 아, 나도 저렇게 남들 앞에서서 '뭔가'를 발표하고 싶고, 내 존재감을 인정받고 싶다. 사실 그 들끓는 욕망이 너무 컷던 탓인지 콜로라도 주 덴버시에 있을 때 테드 강연이 있는것을 알고 있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선뜻 가지 못했다. 너무 맛있는 아이스크림이라서 아끼고 아끼다 보니 어느새 녹아버린 그런 느낌. '나도 연사자로 저런 멋진 무대에 서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가는 만큼 비례하는 것은 자괴감. 언감생심. 에효. 나 같은 사람이? 하는 마음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새로 이사온 이 동네에 테드 강연이 있다는 남편의 말을 듣고 이런 저런 생각할 겨를 없이 후다닥 표를 샀다. 


#그런데 왜 테드? 퍼블릭 스피킹과 영어 열등감의 상관관계 

    이 질문이 핵심이다. 왜 나를 포함해서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남들 앞에 나서서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고 하고 싶어할까? '아, 당신의 이야기가 흥미롭군요. 정말 재미있고 유익해요!' 라는 인정을 받고 싶어서다. 이게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네이티브가 아닌 영어 구사자로의 열등감, 패배감, 좌절감은 수시로 겪는다. 맥도날드 드라이브 스루에 가서도 마이크 너머로 상대방이 내 엑센트가 들어간 영어를 못알아 듣는다 싶으면 그냥 울고만 싶어지는게 이민 생활의 일부다. 그럼에도 나는 그러한 자격지심을 영어 스피치 클럽에 가서 사람들 앞에 서서 스피치 하는 것으로 그 스트레스를 푼다. 좀 아이러니하게 들릴 수 있다.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사람으로서 엑센트 없는 영어로 자유자재 수다를 떠는 데에 한계가 있다. 그런데 스피치는 미리 연습만 자꾸 해 주면 '일대다'의 형식이기에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관객들이 귀를 쫑긋이 세우고 내 말을 들어줄 때처럼 내 존재감을 인정받는 때도 없다. 미국에 온 후로 영어에 대한 열등감이 생기지만, 퍼블릭 스피치 클럽에 가서 연습을 함으로써 그 열등감을 조금씩 삭삭 삽질하듯 없애는 중이다. 

    퍼블릭 스피킹은 남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좀더 인생의 재미를 알아가고 삶의 자신감을 회복하고자 하는데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한인들이 많은 지역에서 한국어로 이런 모임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테드엑스, 막상 공연장에 가 보니 

    열 댓명의 연사자들을 모셔놓고, 이 들에게 약 18분 정도 시간을 주고 한 사람씩 나와서 발표를 하는 형식이다. 대부분의 연사자들이 파워포인트를 써 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공연장은 오래된 듯한 고풍스러움이 물씬 나는 극장이었다. 돔형 천장에 아늑한 불빛, 그리고 값비싸 보이는 음향 및 비디오 시설. 무대는 크지 않았고, 그 무대 안에서도 작은 빨간색 사각형 카펫 안에서 주로 연사자들이 움직였다. 와우, 나도 언젠가 이런 화려한 조명 아래, 수백명의 관객을 모셔놓고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상상 자체만으로도 웃음이 나는 건 좋은 일이다. 그 일이 일어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상상이 힘이 되는 것 자체도 참 좋은일 아닌가. 

    무대 자체가 멋지다. 이제 강연을 들을 차례. 나도 처음이라 아무것도 몰랐지만, 경험을 해 보니 테드엑스가 뭔지 알겠더라. 우선 테드와 테드엑스는 서로 분리되어 있다. 테드라는 브랜드가 처음 만들어졌고, 전세계적 인기를 얻으니 각 지역별로, '너희들이 알아서 지역 테드를 꾸려서 만들어 보렴' 해서 탄생한 독립된 브랜드가 테드엑스. 워싱턴주에서 이뤄진 테드엑스 행사의 주제는 Beyond Ourlseves였다. 또한 화장실 줄을 서는 동안 앞 뒤 사람을 통해 얻은 지식은 '한번 테드엑스 강연자로 선정이 되면,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막 떠느는 것이 아니라, 테드 엑스 주최측과 엄청나게 많은 연락을 주고 받으며, 원고를 다듬고 정리하고 하는 과정을 많이 거친다'고 한다. 테드 엑스 강연자로 선택되는것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일 터. 은발에 가까운 단발 금발을 한 그 분의 안경테에는 COACH라는 브랜드명이 떡하니 박혀 있었다. 브로셔를 다시 보니 오매나, 아들이 의사분이시다. 이렇듯 조금은 기죽게 만드는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들이 강연자로 등장하기도 한다. 희망사항은 모든이들이 그렇다는 건 아니라는 것. 희망을 처음부터 꺾을 필요는 없지. 


#테드엑스 연사자들의 강의를 들어보니 

    수명의 연사자들이 나왔다. 영어로는 Speaker 말하는 사람. 한국어로는 연사자가 강연자라는 단어보다 더 맞을 수 있다. 이들은 정보 전달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스토리 텔링도 한다. 모든 연사자들은 각자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하는데, 각자의 스피치 내용들이 종국에는 '우리 자신 너머'라는 주제와 연결성을 갖는다. 어떤 연사자의 이야기는 살짝 가식적으로 느껴지거나, 내용이 빈약하다는 인상도 들었다. 동시에, "흠, 저 정도라면 나도 할 수있겠는걸?" 이라는 의외의 자신감을 주기도 했다. 그 중에서 긍정적으로 인상에 남는 두 연사자를 기록해 본다. 


안나 호 Anna Ho - 네. 맞습니다. 그녀는 한국계 미국인인것 같더군요. 뭐 쌍수들고 관객석에서 '아, 여기 있어요! 나도 한국인이에요옷!'이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로 뭔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그녀의 스피치 역시 참 멋지고 차분했다.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전체 스토리를 알 필요가 있고, 맥락 context를 이해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주제 자체보다 이를 표현하는 형식이 상당히 멋졌다. 데이터, 아이티, Design Architecture 를 소재로 이야기 했다. 연사자의 차분한 목소리가 기억에 남고, 무엇보다도 참 어쩜 그렇게 자신의 스피치와 딱 떨어지는 그래픽 디자인 프레젠테이션을 했는지, 그 기술이 부러웠다. 


캐리 데이비스 Carrie Davis - 이 연사자의 파워풀한 에너지를 나 역시도 본받고 싶다. 한쪽 팔이 없이 태어난 그녀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다른 무엇보다 그녀의 꼿꼿한 허리, 털털한 웃음, 당당함이 가장 본받고 싶은 점이었다. 


#결론: 아~별거 아니네!

    인생은 살아보면 별 것 아닌것 같은데, 그 경험 자체에 대한 욕심이 생긴 후 그 경험을 해 보지 않으면 열병이라도 걸릴것 처럼 온 몸까지 쑤시다. (그 경험을 해 보고 싶어서 말이다.) 그래서 제일 좋은 건 피하지 않고 해 보는 거다. 테드 라는 그 이름에 눌린 탓인지, 뭔가 엄청나고 대단한 것 같았는데, 막상 관객으로 경험했지만 그 결론은 어떤 '안도감'이다. 이거? 뭐 그렇게 어엄청 난건 아닌것 같은데?! 퍼블릭 스피킹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은 없애는 기회가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다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