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창의성
기다림처럼 지루하고 힘든 것이 또 있을까.
앞으로 5일 뒤면 새 일터에 가게 된다. 막상 닥치면 다 하게 되어 있다. 그래도 뭔가 나의 몸과 마음은 기다리는 자의 자세이다. 남편은 주말을 이용해 4시간 운전해야 하는 대도시에 다녀오자고 제안했지만, 왠지 나로서는 큰일을 앞두고 어딜 다녀오는 것이 선뜻 내키지 않는다. 사실 이 구직을 하기 위해 이 년 넘게 가지 못했던 한국행도 지금으로서는 기약이 없다. 세상살이는 하나를 얻으려먼 다른 하나를 내어줘야 한다는 가수 은희님의 말이 참말이다. 나는 이 직장을 잡기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했다. 한국에 놀러가기. 친구들 만나서 수다떨기. 식구들 만나서 혈육의 정을 느끼기. 근교 대도시로 놀러가기. 이 모든 것을 당분간 포기할 만큼 구직이 절절하다. 그래서 나의 기다림의 시간동안 시간은 더 느리게 간다.
세상의 전부, 돈? 이민 생활의 전부, 일?
그렇다면 참으로 달콤한 것들을 많이 포기하고 내가 얻으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아성취? 이 일을 통해 얼마나 내 자아가 충만하다고 느낄지는 미지수다. 작으나마 안정적인 월급 그리고 그에 따른 생활, 바로 이것이다. 세상의 전부가 돈은 아니다. 그러나 이 무미건조한 이민생활임에도 그 근간이 나의 안정성, 독립성이 되어야 한다. 또한 나의 이민 생활은 심심함과 외로움이 생활의 근저에 이불처럼 깔려있다. 이 무거운 이불을 치우는데 일만한 게 없다. 출퇴근하고 일일 8시간씩 일했던 지난 한달은 그렇게도 빨리 라면 면발처럼 후루룩 흘러가 버렸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 일상에서 내가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 글쓰기다. 글쓰기를 통해 나를 발견하고 조금이라도 창의력을 키울수 있다면, 그것이 내 나름의 성공한 인생이리라.
새벽 4시 반에 글쓰는 여자 - 먹고, 사랑하고, 기도하라의 저자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팟캐스트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영화 '먹고 사랑하고 기도하라'의 원작자는 창의력이라는 주제로 팟캐스트를 하고 있다. 한 에피소드를 들었는데, 상당히 오래 남는다. 이 에피소드에 나온 여자는 아이 셋을 둔 엄마인 글렌 도일 멜튼이다. 그녀는 한때 알콜 중독자였지만 지금은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녀가 그토록 일찍 일어나는 이유는 그 시간에는 남편과 아이들이 깨지 않아 온전히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나는 압도되었다. 아이도 없고, 보통 깨는 시간이 7시가 넘는 나의 편안함이 고맙고 부끄러우면서, 동시에 그녀의 놀라운 힘, 자신만의 시간을 향한 노력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또한 그녀는 이런 말도 했다. "나는 자기만의 방은 없지만 자기만의 시간이 있어요. 그때가 바로 새벽 네시 반입니다." 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그랬단다. "여성들이 자기만의 방을 갖고있다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이 분의 또다른 발언 중 '와!' 했던 이야기는 그녀는 매일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쓰고, 제출submit 버튼을 누르고, 그에 대해서는 최대한 뒤돌아보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내 글의 베이비시터가 아니에요. 사람들에게 내 글에 대해서 어쩌고 저쩌고 변명하고, 피드백하고 그런걸 하지 않아요." 자신의 글에 대한 사람들의 댓글에 답을 다는 것이 베이비시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녀의 단호한 그 자세가 참 좋다.
꼭 들어보세요.
Magic Lessons with Elizabeth Gilbert Ep. 209 "Show Up Before You're Ready" featuring Glennon Doyle Melton (SEP 23, 2016)
http://podbay.fm/show/1138081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