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백,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판타스틱 우먼, 이웃집 찰스
오늘은 12월 25일. 아마 내가 미국에 살면서 가장 보내기 힘든 날이 아닐까.
밖은 죽은듯이 조용했다.
개 산책을 위해서 세 번 밖으로 나갔다. 아침, 점심, 저녁.
동네를 걷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고, 열려 있는 상가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심지어 햇살도 나오지 않았다.
우울의 구름에 갇히기 딱 좋은 미국의 크리스마스.
나를 구원한 것은 세 편의 영화와 한 개의 방송.
#미스백
이 영화에 대한 짧은 기사를 읽었더랬다. 이 영화가 상영되기를 원하는 팬들의 열성이 대단하다는 글이었다.
도대체 무슨 영화이길래...... 막상 보고나니 나또한 그 한 사람이 되고 싶을 정도로 잘 만든 영화이며, 많은 사람들이 봐야 할 영화라고 생각이 든다. 아동학대. 슬픈 사실은 이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점. 학대의 피해 경험을 가진 주인공은 한 동네에 사는 여자 아이의 학대 사실을 알고 목숨을 걸고 그녀를 구한다. 주인공은 아이를 구하고, 아이는 주인공에게 '나도 당신을 보호해 줄게요'라고 말해준다. 뭔가 대사가 많지도 않은데 마음이 짠하고 보는 내내 눈물도 많이 났다. 배우들이 어찌나 다들 연기를 너무도 잘했다.
#콜미 바이 유어 네임 Call me by your name
나를 당신의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제목만으로도 시적이고 낭만과 로맨스가 담겨있다. 얼마나 사랑하는 사이, 간지러운 사이라면 내가 너가 되고 네가 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이 영화를 보고 '첫사랑' 이라는 단어가 떠 올랐다. 83년 이탈리아 북부가 배경이다. 화면에 담긴 이탈리아의 햇살, 대리석 계단, 낡았으나 고풍스럽고, 여유로운 집, 많은 것들이 부럽게 느껴졌다. 주인공들이 가진 여름, 여유.... 보는 것만으로도 잠시 휴식이 되는 영화다. 또한 주인공의 들끓는 마음, 사랑, 열병 이런 것들이 매우 잘 전달된다. 특히나 배우들이 매력적이다. 또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주인공의 아버지가 주인공에게 해 주는 말들이었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경험, 그것들을 내버리기엔 인생이, 시간이 너무 아깝다......
#판타스틱 우먼
산티아고를 배경으로 한 영화. 우연히 어느 유명한 영화 시상식에서 이 영화가 언급이 되었는지, 주인공 배우가 상을 탔는지 기억은 확실히 나지 않지만, 작품성있는 영화라는 생각에 보았다. 후회가 없다. 트랜스젠더. 나는 그저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된 것 뿐인데, 왜 내가 속한 이 사회라는 것이 나를 이토록 괴롭히는 걸까. 주인공의 너무나도 사적인 관계와 경험이 사회의 심판대에 올라야 하고, 죽은 애인의 아들과 친구들은 주인공에게 횡포를 부린다. 그 모든 악, 장애, 분노를 넘어가는 것은 주인공의 천상에서 나오는 목소리와 춤. 그리고 그녀의 강렬한 눈빛. 특히나 그녀가 차 위에 올라가 사람들을 위협하는 장면이 재미있으면서도 속이 시원했다.
#이웃집 찰스
미국에 사는 한인인 내게 이웃집 찰스는 일종의 거울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인으로서 백인 중심의 미국에서 내가 느낄 수 밖에 없는 이방인으로서의 느낌, 경험들이 이 방송에 나오는 '한국에 사는' 그들을 보며 조금은 동일시가 된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차별을 받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 이 아이들은 단단한 마음으로 조안나의 말대로 '멘탈을 잡'아간다. 한국어 책을 열심히 읽고 따라쓰기를 했다는 그녀의 말 앞에서 내 영어에 대한 게으름이 부끄러움으로 나타났다. 나도 그랬다. '아, 왜 이 미국에서 나는 늘 이렇게 외롭지? 친구가 없지? 왜이렇게 영어가 안 느나?' 그런데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브런치도 열심히 해야겠지만, 영어 읽기 쓰기에도 더욱 노력을 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