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드, 이케아, 수바루 - 신혼 일기
오클라호마주 이니드
6년전 처음으로 결혼 이민으로 미국에 왔을 때, 내게 들린 것은 이민 가방이 아닌 일반 여행 가방이었다. 이십대 때는 멋모르고 유럽을 쏘다녔고, 심지어 우크라이나에서도 2년을 살아봤기에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까짓 미국 뭐 별거겠어?
그런데 남편은 나도 처음 들어 본 오클라호마 주 이니드로 오랜다. 훔. 뭐라고? 이니드? 구글 검색을 했더니 그닥 정보가 없다. Enid라......
우선 나는 오클라호마 주의 주도 오클라호마 시티로 갔다. 한국에서 오클라호마까지 직항은 없다. 휴스턴, 엘에이 같은 대도시에 먼저 도착한 뒤, 국내선으로 갈아탔다. 오클라호마 시티에서 꽃 한다발을 내게 안겨주었던 남편. 짧게 머리를 깍은 그는 미군이 되어 있었다. 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만해도 그는 군인이 아니었다. 그의 검고 굵은 머리숯은 어디로 갔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역시 삶의 큰 변화를 겪는 한 가운데 있었다. 서른이 넘어 공군이 된 그는 군대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지 않았을까.
달라스 이케아, 200만원짜리 수바루
오클라호마 시티 공항에서 남편을 처음 만나서 우리가 간 곳은 달라스 근처에 있는 이케아였다. 신혼살림을 장만하고자 그 곳으로 달렸다. 그 곳에서 샀던 침대는 몇달 전 새 침대로 교체를 하면서 수거해 갔다. 안녕, 내 오 년의 잠자리여. 그 매트리스 위에서 흘렸던 눈물, 행복감, 분노, 등의 온갖가지 감정들과도 이제는 굿바이다. '살림'의 기본을 그나마 갖추어 놓았다. 신혼 초 남편의 밥을 해 주고, 매일 저녁 밥상을 차려주고, 정리를 하면서 시간이 흘렀다.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되니 다음 눈에 들어온 것은 갑갑함이었다. 당시 우리는 작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는데, 다행인지 아파트 앞에 작은 몰이 있었다. 그 몰까지 걸어서 갈 수 있고, 몰mall에 헬스장과 식료품 가게, 중국 음식점, 커피샵이 있었다. 처음 한 달 동안은 매일 헬스장에 다녔던것 같다. 낮에 할 일이 없으니 나로선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그 곳에서 차로 7-8분 거리에 있는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내 '갑갑함'은 극에 달했다. 한국에서 운전면허증을 땄고, 그것을 국제 면허증으로 바꿨기에 운전은 할 법적 서류는 갖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운전이 익숙치 않았고, 더군다나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차가 없었다.
나는 뚜벅이가 되어 열심히 ATM현금 지급기까지 걸어가서 이천달러를 뽑았다. 이백만원. 이 돈이면 뭐라도 해 주겠지. 그리고 그날 저녁 남편에게 그 돈을 주면서 '차를 사 내!'라고 협박아닌 협박을 했다. 우리는 또 이니드에서 오클라호마 시티까지 차를 타고 달렸다. 이니드는 도시가 작기도 하거니와 마땅히 할 것이 없었기에 틈만 나면 오클라호마 시티까지 달렸다. 두시간 반 정도 걸렸다. 우리가 찾았던 곳은 허름한 중고차 판매상. 그 역시 나같은 이민자였는데, 꽤나 많은 차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차에는 문외한인 내게 믿을 곳은 오직 남편. (이 구리구리한 문장을 쓰면서도 어쩔수 없다. 이민은 그런것이다. 어쩔때는 내 두 다리로만 못 버티는 것 같은 기분) 남편은 일제 수바루Subaru차가 초보 운전자에게 좋을 것이라며 수바루를 골랐다. 십 오년도 더 된 차였지만 그 곳에 살면서 그 차는 내게 무척이나 튼튼하고 안전하고 믿음직한 두 다리가 되어 주었다. 미국 이민은 엘에이 한인타운과 같은 곳이 아니면 차 없이는 살 수가 없다.
면허증을 가졌고 차를 소유하게 되었고 이제는 실습을 하면서 운전을 실제로 몸에 익혀야 했다. 또 이것도 남편 말고는 부탁할 사람이 없다. 그런데 오, 마이, 갓. 운전을 남편에게 배웠다가 우리는 몇달 살지도 못하고 헤어질 뻔했다. 예민하고 민첩하고 날렵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것 같은 남편은 내 운전을 보더니 기겁을 하고, 놀라면서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것처럼 훈육을 하니 나로선 꾹꾹 참다가 그가 화를 내는 대목에서 같이 화르르 뒤집어져 버렸다. 나 또한 차에서 고래고래 고함도 지르고, 이럴거면 헤어져! 라고 침까지 튀기고 눈에 있는 힘이란 힘을 다 주면서 싸움이 불처럼 번졌다. 결혼 초기의 부부싸움은 다시 생각해 보면 좀 무섭다. 남편도 환경에 적응하느라 똥줄이 빠지고, 나 역시 미국땅에서 한번 잘 살아보겠다고 왔건만 이것은 사모님 노릇을 하러 놀러온 게 아니라, 결혼 이민자로서 개척정신을 갖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 둘 다 결혼이 처음이었고, 서로 다른 상대방과 어떻게 화합을 이루는지에 대한 정보, 지식, 지혜가 아무것도 없었다. 이니드. 자 이제 여기에선 남편의 월급으로 먹을 것이 해결되고, 운전이 가능해서 움직일 수 있다. 그렇다면 다음 스텝은? 헤이스팅즈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