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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순 Jul 13. 2018

삶의 균형: 일과 휴식 사이

[텍사스 중앙일보 문학칼럼 열 여덟번째 글]

이 글은 텍사스 중앙일보에 발행된 제 문학칼럼 글입니다. 


생민의 ‘영수증’이라는 팟캐스트를 듣다 보면 한 사람의 인생과 가치관이 한 달치 영수증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 보인다. 이 방송은 사람들이 자신이 한 달 동안 쓴 영수증을 모아 보내고, 김생민씨가 이 영수증을 분석하면서 이 사람에게 더 나은 경제 생활을 위한 조언을 해 주는 개그 방송이다. 팟캐스트를 듣다 보면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사는지를 조금씩 엿볼 수 있다. 소비란 무엇일까? 돈은 무엇일까? 그리고 더 나아가 일이란 무엇일까? 

2013년에 미국에 왔고, 장학금을 타는 기회를 계기로 다시 학부 공부를 시작했고, 틈틈이 알바를 했다. 서점 캐시어, 커피숍 아르바이트, 시험 감독, 한국어 교육 등을 했지만 늘 ‘돈을 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지 않았다. 이들을 모아 모자란 학비를 충당했고, 미국에서 산다는 것 또한 서울 살이 만만치 않게 돈이 많이 들었다. 차 값, 기름값만 해도 얼마인가… 또한 이 강력하고 매력적인 자본주의는 아웃렛 몰에 가면 무엇이든지 너무도 사고 싶게 만든다. 구매욕은 강한데, 가격표를 보노라면 아, 저기에 세금까지,… 불쑥 솟는 구매욕을 꾹 눌러 담고 지나치는 것만이 답이었다. 

그렇게 오 년 동안 학업 및 아르바이트 인생이 끝이 났다. 일월부터 대체 교사로서 풀타임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돈을 번다는 그 자체만으로 뭔가 그동안 쌓였던 서러움들이 봄눈 녹듯 사르르 사라졌다. 돈이라는 것이 참 그랬다. 있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없으면 그 자리에 얼음처럼 차가운 무엇인가가 내 마음을 가득 채운다. 그러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속내가 온통 차가운 사람이 되었다. 그 오 년의 세월을 지나 이제 어엿한 어른으로 임노동자가 되었다. 그런데 나는 그 전에도 분명히 어엿한 어른이었고, 미국 달러가 내 손에 쥐어 지지 않았을 뿐 아내로서, 학생으로서, 내 꼬리표에 걸맞는 모든 노동을 다 하고 있었다. 그 노동은 분명히 노동인데 숫자로 가격이 매겨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도 그 숫자가 뭐라고, 통장에 월급이 찍히니 얼음장 같은 속내가 어느새 사르르 녹아 버리고, 웃음꽃이 피어나고, 그렇게 움츠러져 있던 내 안의 나, 자신감이 조금씩 단단해 져 감을 느꼈다. 사실 이 어이없는 숫자에 내 자신이 이렇게 다른 기분을 느낀다는 것이 참 서글프기도 했다. 그 서글픔은 학교 동창과의 카톡에서 터져 버렸다. 친구는 7년의 직장 생활을 접고 출산을 했고, 나는 2년의 직장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왔다. 우리 둘 다 돈 버는 것이 지긋지긋했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다고 투덜투덜거리면서도 새벽 6시면 눈을 떠서 지하철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 5년이 흘러 카톡을 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돈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이었음을 고백했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는 말이 소비에 대한 가치관일까? 앞에서 언급한 영수증 팟캐스트를 듣다 보면, 쓰리 잡을 뛰고 노모를 모시면서 정작 자신을 위해서 쓰는 돈은 오천 원도 되지 않는 한 사람의 인생이 눈에 그려지기도 하고, 수천 만원의 빚을 지고 있으면서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이만 원이 넘는 운동 양말을 사는 인생도 있다. 이 방송의 요지는 하나다. 개미와 배짱이 이야기에 나오는 개미가 되어 열심히 일하고 모아 내 집 장만 이루자는 것. 그러나 결국 소비를 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며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는 사람도 나 자신이다. 두 달 째 대체 교사 일을 하면서 지나치게 일에 집착하는 내 자신이 보였고 그 집착에서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하는 내 모습도 보였다. 사실 대체 교사의 큰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주5일로 일을 해도 되고 주 4일로 일을 해도 된다는 것인데, 나는 일이 나오는 족족 시스템에 등록을 해놨다. 너무도 빡빡하고 빡세게 꾸역꾸역 스케쥴을 잡아 넣었다. “뭣이 중한” 줄 모르고 조금씩 워크 홀릭 혹은 머니 홀릭의 길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일 주일의 봄방학을 선물로 맞았다. 


아, 이번 주는 돈을 벌지 못한다 라는 생각은 온데간데 없다. 그동안 내 환경이 되어 버린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 무조건 내 말에 말대꾸를 하는 아이들로 가득 찼던 환경에서 벗어나 휴식을 맞이하면서 이제야 일과 휴식의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살면서 그때 그때 “뭣이 중한지”를 아는 것은 쉽지 않다. 일과 휴식의 균형, 돈 버는 것과 돈 쓰는 것 사이의 균형을 생각하며 그 모든 중심에는 돈이 아닌 내가 있음을 인지하자.


발행일: 2018년 4월 6일 

링크: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610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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