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중앙일보 문학칼럼 열 일곱번째 글]
이 글은 텍사스 중앙일보에 발행된 제 문학칼럼 글입니다.
며칠 전 콜로라도 덴버 퍼포밍 아트 센터에서 ‘조위의 완벽한 웨딩’ 이라는 연극을 관람했다. 서울의 대학로 소극장에 온 것 같은 아늑한 분위기의 극장 은 가운데 무대를 둘러싸고 관객석이 둥글게 배열되어 있었다. 2008년 뉴욕을 배경으로 한 연극 ‘조이의 완벽한 웨딩(Zoey’s Perfect Wedding)’은 자신의 아름다운 결혼식을 꿈꾸는 신부 조이와 그녀의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 연극은 당시의 경기 불안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직장도 잃고 더욱 더 인생이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다.
자신의 완벽한 결혼식 날을 위해서 조이의 사촌 미시가 웨딩 플래너로 나오고, 결혼식 당일에는 그녀의 20대 가장 친했던 친구 레이첼과 그녀의 남편 찰리, 그리고 친구 새미도 나온다. 하지만 조이의 예상과 달리 그녀의 결혼식은 말그대로 난장판이 되고 만다. 이 연극을 보다 보니 ‘아, 그래. 나도 내 결혼식을 준비할 때, 정말 모든 것이 내 계획과 예상대로 되기를 바라면서 모든 것이 척척 순서에 들어맞고, 그야말로 해피 엔딩’을 학수고대하며 꿈꿨던 시간들이 떠 올랐다. 아마 이것은 모든 신부들의 꿈일 것이다. 완벽한 웨딩. 하지만 조이의 계획대로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면 이 연극은 너무나도 지루해서 90분이 다 되었을 때에는 객석에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 연극은 예상을 뒤엎는 인물들의 스토리로 인해 극적이면서도 유쾌하다. 또 어떤 삶의 진실을 담은 대사들을 곳곳에 숨겨 놓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 https://theknow.denverpost.com/
남편의 직업상 이동이 있는데, 올 2018년 여름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한국 배정을 꿈꾸었다. ‘그래! 한국에만 가면!’ 그 뒤에는 수많은 즐거운 일들을 할거라고 목록들을 착착착 만들어 놓았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그리운 친구들 얼굴도 보고, 그토록 맛있게 느껴지는 한식도 그것도 고급진 식당에서 먹어보고, 친정 식구들과도 더 가까워질 수 있겠지! 핑크빛 미래들이 몽실 몽실 떠 오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며칠 전 정말로 정말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미국의 한 지역으로 발령이 났다. 사실 남편이 더욱 화가 나고 실망을 드러냈기에, 나는 어른인 척 하며 ‘에이, 뭘 한국이야 또 가면 되는 것이고, 기회가 또 오겠지.’ 하며 남편을 다독였다. 속에서는 부글부글 아, 이것이 인생인가. 왜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단 말인가! 하며 아우성치는 내 안의 목소리를 잠재우는 데에 며칠이 걸렸다. 사실 우리가 험난한 지역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다만 H마트와 한식당이 거의 없는 미국의 중소 도시로 다시 이동한다는 사실에 이토록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보다 더 험난하고 쉽지 않은 인생의 사건들이 얼마나 많을 터인데 고작 이 일로 실망해서는 되겠는가. 하는 마음과 어떤 ‘포기’가 생겼다. 그래. 내가 왜 그렇게 한국을 그리워하고 고대했을까? 사실 한국에서의 일하는 것이 얼마나 만만치 않음을 내 스스로 알고 있지 않은가. 한국에서의 공기로 인해 내가 늘 아토피를 달고 살지 않았던가. 그렇게 내 스스로 밟은 미국땅인데 또 왜 이렇게 간사한 마음이 들어 다시 한국 노래를 불렀나. 어떨 때에는 아주 간절하게 딱, 나의 그 간절한 마음을 뚝 자를 수 있는 큰 가위가 필요하다. 그 가위는 포기다. 마음을 접고, 애인과 헤어지듯이 뒤돌아 보지 말고 굳건하게 내 앞에 놓인 현실을 마주하는 것. 그렇게 살다 보면 또 내가 예상치 못한, 계획하지 못했던 즐거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조이의 웨딩’에 나오는 조위의 친구는 남들이 보기엔 완벽해 보이는 삶을 산다. 그녀는 웨딩 플래너이며 직업적 성공을 이루고 있고, 남편과도 잘 지내며 아직 아이는 없다. 조위의 결혼 피로연이 시작 되었을 때 이 친구는 술을 잔뜩 마시고 남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속내를 드러낸다. 얼마나 결혼이라는 것이 힘든 지에 대해서 말이다. 실은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직장에서 바람을 피웠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하고 있는 중이며, 이 피로연에서 자신의 발언을 들은 남편은 피로연이 다 끝나갈 때 다시 돌아와 아내에게 이별을 고한다. 이 연극의 마지막 장면은 조위의 친구가 단단하지만 흔들리는 목소리로 “내 앞이 불안하고 힘들더라도 오늘이 무사하게 끝날 거라고 나 스스로 믿어야 한다.”는 고백을 한다. 그렇다. 인생이 내 예상과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다. 레이첼의 말대로 오늘이, 이 하루를 무사히 끝마칠 것이라는 강한 믿음으로 하루 하루를 사는 것이 중요하다.
발행일: 2018년 3월 2일
링크: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6042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