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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매거진 #23] 담아내기보다 덜어내기

#자발적백수라이프

by 달숲

코로나 바이러스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양질의 포스팅을 할 것이라 기대했었는데 또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조금 더 길게 자게 되었고, 나무늘보처럼 무슨 일이든 느긋하게 하는 바람에 효율성이 떨어진다. 여유인지 게으름인지 모를 그 중간 어느 즈음에 모든 행동이 고정된 것 같다.


일상이 단출하다 보니 색다른 경험을 할 기회가 없다. 새로움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어딘가 아쉬움이 남는 일상이다. 그래도 지금의 시간이 곧 있을 활기찬 생활의 좋은 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오늘의 포스팅은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나 그간 해온 짤막한 생각들을 키워드 위주로 풀어나가볼까 한다.


독서

집에 있다 보니 중간중간 책 읽을 시간이 많아졌다. 코로나로 인해 근처 도서관이 모두 휴관을 하는 바람에 책을 빌리기 어렵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읽고싶었던 책 중 몇권을 추려내어 인터넷으로 구입했다.


한때는 독서하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스스로 지성인이라고 느꼈었다. 부끄럽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되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왜 이렇게 어리석은 거지?'라며 스스로의 멍청함을 깨닫는 것 같다. 책 속의 지혜로운 인물을 보고 나의 어리석음을 한 번 깨닫고, 중요한 교훈을 책을 덮자마자 까먹는 나를 보고 두 번 깨닫는다.


의도와 상관없이 읽은것을 자꾸 까먹으므로, 좋은 책이 있다면 시간을 두고 꼭 다시 읽어봐야 한다. 체화되지 않은 지식은 손 밖을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허망하게 사라져 버린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어쩌면 우직하게 스스로의 바보 같음을 깨닫고 다시 도전하는 것,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수 백 권을 읽는 것보다 한 권을 읽더라도 진정한 가르침을 깨우치는 것이 낫다고 하던데. 독서 습관이 잡식인 주인장은 허겁지겁 후루룩 뚝딱 책을 읽는 습관을 갖고 있어서 영 그 오랜 습관을 고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오늘도 읽는다. 활자들이 끊임없이 재잘재잘 거리며 들려주는 한계 없는 세계를 구경하는 즐거움이 크다.


간식

살이 잘 찌는 체질이어서(특히 복부) 의도적으로 간식을 잘 안 먹었는데 최근 묵은 갈망의 고삐가 풀려버린 건지 엄청나게 먹어대고 있다. 빵이고 과자고 마구마구 먹어치우는 바람에 속이 더부룩하고 뒤돌아서서 후회를 한다.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왜 실수를 반복하는 걸까? 짧은 행복함 뒤에 느껴지는 긴 자책감이 굳은살처럼 박히기 전에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겠다.


일단은 공복감을 느낄 때 과자 대신 방울토마토나 과일을 먹는 걸로 시작해봐겠다(역시 간식을 안 먹겠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빵이나 과자 같은 밀가루, 당류가 높은 음식은 최대한 피해야겠다. 코로나 기간동안 살찐 분이 계시다면 함께 해요. 오늘부터 시작!


스트레칭

군살은 쪘지만 또 이게 웬일인지 스트레칭을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하고 있다. 나에게 딱 맞는 유튜브 영상을 발견하여 지난주에는 무려 4번이나 스트레칭을 하였다. 온몸이 뻣뻣하고 엄살이 심해서 스트레칭이나 요가를 정말 싫어하는 1인인데 요즘 이상하게 근육을 늘리는 고통이 살짝 시원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아주 미세하지만 조금씩 유연 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착각인지 뭔지 모를 것에 나름 동기부여도 된 상태다.


잠자기 직전에 전신을 쭉쭉- 늘려준 후에 취침하면 잠이 잘 온다. 예전에는 자기 전에 늘 잡생각이 많아서 한참을 뒤척이다 자곤 했었는데 스트레칭을 하고 자니 잠에 드는 시간이 짧아진 것 같다. 꿈도 예전보다 덜 꾸는 것 같기도 하고. 세상이 참 좋아져서 유튜브로 많은 것을 삶 속에 녹여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wwAdze4HDA&t=1008s

몸이 뻐근하시다면 한 번 시도해보시기를. 선생님 목소리가 차분하고 어려운 동작이 거의 없어서 초보자도 큰 무리 없이 따라 할 수 있다.


덜어내기

요즘의 관심사는 '덜어내기'이다.


작년 7월, 담마 위빳사나 10일 명상을 다녀온 이후로 아침/저녁 1시간씩, 하루 2시간 명상을 한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도중 어쩌다 명상 이야기가 나오면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뉜다. 평소에 본인도 관심 있었다며 눈을 반짝이며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는 유형과, 노잼인 명상을 왜 하냐며 시니컬하게 대꾸하는 유형. 스스로도 명상을 시작할 줄 몰랐고 꾸준히 할 수 있을지는 더더욱 몰랐기에 두 유형 모두 이해가 간다.


그런데 사실 명상이 그리 거창 한 것이 아닌데, 왠지 명상이란 단어를 들으면 연상되는 대표적인 이미지나 편견이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명상은 이 곳에 '존재'하는 '나'를 인식하고 결론적으로는 '나'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더 큰 개념으로 '존재'를 '확장'시키는 행위라 생각한다.


명상은 존재가 생각에 질질 끌려가지 않도록,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객관적으로 깨우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그러나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사실 명상을 하다가 깨우친 몇 가지 사실들이 있는데


1) 첫째, 명상을 하는 대부분의 시간은 잡생각으로 허비한다는 것. 사실 명상뿐만이 아니라 하루의 80% 이상을 잡생각으로 소비하는 것 같다. 명상은 그 사실을 깨우치도록 도와준다. 행위 없이 고요히 앉아있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잡생각을 하는 자신을 대면한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것에도 반응하지 말 것, 자괴감을 갖지 말 것. 그저 바라본다.


2) 둘째, 생각이란 것은 불안함을 연료 삼아 끊임없이 움직이는 속성이 있다. 속절없이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원인모를 우울함과 불안감에 휩싸인다.


3) 셋째, 잡스런 생각들은 너무나도 쉽게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일, 이미 발생한 과거의 기억에 마음이 동요된다. 그럴 때는 꼭 잡고 있는 생각을 놓아주어야 한다. 두 손을 활짝 펴서 미련 없이 놓아버려야 한다.


4) 아주 가끔은 생각없이 고요해지는 순간이 있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충만해진다. 감사함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허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충만함은 사라지고 다시 불쾌한 감정 또는 잡스런 생각이 떠오른다. 그것 또한 그저 사심 없이 바라본다.


어느 날은 진리에 한 걸음 다가간 듯싶다가도 어느 날은 꾸벅꾸벅 졸기만 하다 끝날 때도 있다. 매일 밥을 먹으며 신체를 돌보듯 명상을 하며 영혼을 돌보려 한다. 명상을 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산뜻해짐을 느낀다.


아직도 소유하고 있는 것, 미련을 갖고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 많다. 하나하나 시간을 들여 덜어내고 싶다.


마음속에 꽉 차 있던 잡스런 것들을 정리하니 비로소 창이 보이고 문이 보인다. 창을 열어 공기를 환기시키고, 문을 열어 많은 이들이 방문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 욕심을 버리고 남아있는 삶 동안 나누며, 비우며 살고 싶다.


탈선한 기차

어릴 적부터 나는 불안함이 많은 아이 었다. 늘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살았다. 다른 사람이 옳다고 말하는 것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라 믿고 사회에 나가 큰 성공을 하면 그것이 행복이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사회에서 제시하는 기준에 맞지도 않는 나 자신을 욱여넣느라 분주했다.


그래도 하늘이 무심하지는 않았는지 남들 다 가는 대학을 무탈하게 졸업하여 회사에 취직했다. 나름 목표하였던 회사에 취직하여 취업 직후에는 뿌듯함과 성취감에 모든 것을 다 이룬 것만 같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괜찮다고 생각할 만한 기준에 부합하는 무엇이었다. 타인이 인정해줄 만한 무언가였다.


그것은 나의 영혼이 이끄는 방향이 아니었다. 단지 누군가가 깔아놓은 기찻길이었다. 나는 그 길 위에 올라타 한 치의 의심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왔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크게 상관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매일매일 빠르게 달려가고는 있는데 되려 목적지에서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타인의 잣대를 기준으로 살수록, 주변인들의 기대를 위해 살아갈수록 '진정한 나'로부터는 멀어졌다.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행복한 척하는 것만큼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은 없으리라.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어울리지 않는 대사를 내뱉는 인형극 같은 인생을 계속 살아야 하는 건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첫 직장에서 2년을 채우지 못하고, 결국 퇴사를 했다.

신나게 달리던 기찻길에서 돌연 탈선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직장을 계약직으로 다닌 후, 세 번째 직장으로 바다 위 부표가 떠다니듯 옮겨 다녔고 마지막 직장도 퇴사를 하였다. 신기한 것은 첫 퇴사만큼 다음 퇴사 결정은 괴롭지 않았고, 그리고 퇴사를 할 때마다 상상할 수 없었던 즐거운 인생의 경험들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하루하루 자연스러운 '나'를 찾아 나갔다는 것 아닐까.


더 이상 타인이 좋아할 만할 누군가로 살지 않기로 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기로 결심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지지리 궁상 찌질이로 보일지언정, 그게 내 멋이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신기한 건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살기 시작하니 일이 되려 잘 풀리기 시작했다.


하고 싶었던 것이 좋은 기회가 되어 새로운 것을 도전하기도 하고,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주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지옥 혹은 전쟁터 같았던 아침의 얼굴이 다르게 다가왔다.


어쩌면 타인의 시선을 통해 채우려 했던 조각들은

이미 내 안에 완전하게 존재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탈선한 기차가 되어버린 나는 느리지만, 두 발로 뚜벅뚜벅 힘차게 걸어가는 중이다.

오래 걸리지만 길가의 들꽃을 볼 수도 있고, 아름다운 하늘과 바람을 만끽할 수도 있다.


정신없이 분주하게 달려가던 기차의 삶과는 아주 많이 다른 인생이 되었다.

불안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불안함을 느끼는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변한 것처럼, 모든 사람의 내면에 변할 수 있는 힘이 이미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나와 같은 고민을 지금 하고 있는 누군가가 용기가 필요할 때,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응원과 힘이 필요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런저런 근황을 써내려 나가다가 갑자기 비장한 글이 되어버렸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다행히 밤이 늦었으니 이를 핑계 삼아 얼렁뚱땅 마무리지어야겠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자유롭기를.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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