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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없이 벚꽃엔딩

#캘리에세이

by 달숲

올해 봄은 왠지 사기당한 기분이다.


파릇파릇 봄 에너지로 풍요로워야 할 3월이 공갈빵처럼 텅 비었다. 벚꽃 없이 벚꽃엔딩이라니.


꿈이었으면 좋겠다 싶을 일상이 계속되고 있다.


작년 이맘때는 숙명여대 TESOL 과정을 들었다. 과제와 모의 수업 준비에 마음이 쫓겨 꽃놀이도 즐기지 못하고 봄을 보냈다. 뭐가 그리 급하다고 봄을 냉대했는지. 테솔은 잘 마무리했지만 영 아쉬움이 남는 1분기였다.


그래서 올해 봄은 제대로 즐기자고 굳음 다짐을 했었더랬다. 엄마와 함께하는 산책길, 다 져버린 벚꽃을 바라보며 '내년에는 예쁘게 꽃 폈을 때 꼭 같이 걷자'라고 말씀하셨던 게 계속 마음 한편에 남아있었다. 그래서 올해는 꽃이 피면 엄마와 여유롭게 꽃길을 걷고 싶었는데. 코로나라는 복병이 숨어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


봄은 짧다. 그래서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봄을 도둑맞아버렸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봄의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벚꽃 사진을 찾아 캘리그라피를 끄적여보았다.


오래간만에 붓펜을 잡은 게 또 코로나바이러스 덕(?)이라니 이 또한 인생의 아이러니일세.


일상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불편한 부분이 너무 많아서 일상이 답답하게만 느껴졌는데 불편함이 늘어난 만큼 상황에 맞춰 시스템이 유연하게 움직여서 혜택을 받는 부분도 생겼다. 덕분에 초반의 패닉 쇼킹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다.


방콕 하며 무료로 예술의 전당 연주회를 들으며 사람들과 채팅창으로 소통할 수 있고 세계 명문대의 철학 강의를 스트리밍으로 들을 수도 있다. 많은 기업체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명상센터에서는 오프라인 명상 코스를 취소하는 대신 온라인으로 단체 명상을 진행한다.


최대 단절 속에서 강한 결속력을 느끼게 하는 이 아이러니를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인류가 온 힘을 다해 위험을 함께 헤쳐나가고 있다.


어찌 생각하면 봄을 도둑맞은 게 아니라 다른 종류의 삶을 살 수 있는 티켓을 받은 것 같다.

새로운 삶을 경험하며, 시시하게 생각했던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자유의 소중함은 박탈을 통해 느끼고, 사랑하는 이의 소중함은 부재를 통해 느끼니

이걸 어리석다고 해야 할지 이 세상이 돌아가는 진리라고 해야 할지 갸우뚱스럽다.


전례 없는 팬데믹에 염치없는 사기꾼들이 삶을 더 팍팍하게 만들기도하지만 훈훈한 일화들도 함께 어우러져서 뉴스를 채워나간다.


새로운 무료 서비스와 모든 훈훈한 뉴스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


아마 예전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


그러나 이것 한 가지는 확실하다.


올해의 봄을 그냥 보내버린 만큼

내년에 맞는 봄은 그 어느 봄보다 아름다울 것이다.


글/캘리그라피 * 어메
사진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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