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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숲 Jun 25. 2020

고장 난 블루투스 키보드

한때는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너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다


물건을 많이 사들이는 편이 아니다. 꾸미는걸 귀찮아하기도 하고 딱히 유행을 따르지도 않아 자의반타의반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살게 되었다. 옷 같은 경우는 계절에 따라 ABAB 돌려 입는 유니폼이 있을 정도로 간소한 삶을 지향한다.


그런데 몇 년 전 뜬금없이 무선 키보드가 갖고 싶어 졌다. 카페 옆자리 낯선이 무선 키보드 내심 멋져 보였던 걸까. 살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엔 질렀다. 저가의 제품이긴 했지만 디자인이 깔끔하고 타닥타닥 타이핑하는 느낌이 좋아 신나게 갖고 다녔다. 접이식이어서 휴대성도 참 좋았더랬지.


한동안 늘 함께하는 필수템이었는데


모든 물건이 그렇듯  만남 짜릿함은 이내 라진다.


'애지중지 모드'에서 '시큰둥 모드'로 진입하는 순간 내리막길은 시작된다. 흥미가 떨어진 물건 종착지는 사물의 유배지인 서랍 . 블루투스 키보드도 결국 어두운 서랍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기억 속에서 빠르게 잊혀졌다.


그러 어느 날 블루투스 키보드가 급하게 필요 꺼내보니 어딘지 모르게 예전과 같지 않다.


손길을 너무 주지 않은 탓일까?
그만 고장이 나버렸다.


구체적으로는 '비읍(ㅂ)'이 써지질 않는다. 덕분에 'ㅂ'이 있는 문장은 계속해서 핸드폰 화면을 터치하며 타이핑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렸다 이 녀석.


© Ken Ozuna, Unsplash


전부도 아니고 절반도 아닌, 단지 '비읍' 하나 안 써질 뿐인데 이렇게  불편할 수가. 지금 내 손은 핸드폰 화면과 무선 키보드를 종횡무진하며 매우 비효율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면서도 계속 비읍이 나오지 않길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계속해서 '비읍'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손이 쉴 겨를이 없다. 나의 손이 아마 제 무덤을 파고 있는 듯하다.


이로써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흠결이 생긴 정든 키보드를 버리고 새로운 무선 키보드를 살 것인가 아니면 그간의 추억이 있으니 계속 이 아이를 안고 갈 것인가.


기능을 하나 상실했다 해서 버리기엔 왠지 꺼림칙하다.


누군가 내 몸 하나 작동하지 않는다고 휙 내다 린다 생각하면 오싹하다. 일단 당분간은 다시 서랍 속에 고이 넣어두어야겠다(결국 다시 서랍행). 새로운 무선 키보드를 다시 구입할지는 고민을 더 해봐야겠다. 딱히 당장 필요한 건 아니니까.


새 물건을 들여놓는 것에
더욱 신중해졌다.


새 물건이 들어오면 기존의 공간을 잡아먹고,
편안함을 주었던 빈 공간이 사라진다.


지금 갖고 있는 것들 중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은 정리를 좀 해야겠다. 사실 그러려면 이 골칫덩어리 블루투스 키보드부터 처리해야 하는데 왜 고장 난 키보드한테 측은지심이 드는 걸까. 지나친 감정이입. 이게 바로 주책이란 감정인가.


어찌 되었건 올 하반기는 쓰지 않는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해야겠다. 지금 내 방만해도 웅크린 채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들이 득실거려 영 마음이 불편스럽다. 앞으로 더더욱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쓸데없 돈을 쓰지 말아야지. 그래 놓고 어느 날 교보문고에 러 쓰지도 않을 노트를 한가득 가져오겠지(문구류 앞에선 한없이 약해지는걸까). 상상만 해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필요 없는 것을 자꾸 들여놓지 말자. 도 마음도 소유로부터 가벼워지고 싶다.


어딘지 모르 얼렁뚱땅 스러운 다짐으로 

마무리를 하게 되는 목요일.


모두 평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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