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숲 Jul 16. 2021

땡땡이치고 싶은 하루

단짠단짠 일상 에세이


아침 풍경



올해 초, 아빠는 오랜 해외 생활을 정리하고 베트남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본사로 출근하게 되셨다. 코로나 때문이었다. 떨어져 살던 우리 가족이 한 지붕 아래 살게 되었으니 코로나 덕분이라 해야 할까. 하늘길이 막힌 탓에 한국에서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건강 검진 계속해서 미뤄다. 자연스레 아빠를 대신하여 병원을 방문하고 약을 받아 국제우편으로 보내는 날이 잦아졌다. 우체국에서 아빠의 주소지를 꾹꾹 눌러쓸 때마다 불안과 걱정이 마음속 타투처럼 새겨지는 기분이었다. 전화로 안부를 물을 때마다 아빠는 잠이 통 오질 않는다고 했다. 그런 아빠가 돌아왔다.


그리고 매주 목요일 우리는 함께 출근한다. 수업이 있는 방향과 아빠의 회사 위치가 비슷하여 일주일에 한 번씩 출근 데이트를 즐긴다.



오늘 아침, 문득 올려다본 하늘이 참 예뻤다.

돌연 바다에 가고 싶단 생각이 들만큼.



"아빠 우리 땡땡이치고 바다로 냅다 달려버릴까?


철없는 딸의 말에 아빠는 하하하 소리 내어 웃고,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진짜 그럴까?"

"에이- 그럼 안되지. 돈을 벌어야 살 수 있죠."



해맑던 딸이 훌쩍 자라 앞으로 살아갈 날을 궁리하기 시작한다. 낭만은 멀어졌지만 현실감을 갖고 삶을 일구어내는 것도 꽤 건강하다란 생각이 든다.




마음을 가다듬고 오늘의 출근길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차 안을 가득 채웠던 아빠의 웃음소리와 나의 재잘거림 짚어 본다. 나의 시야에 아빠가 담기는 것이 좋다.


나이가 든 건지 근래 들어 예전에는 잘하지 않던 생각을 하곤 한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게 될 미래를 생각하곤 하는데 상상만으로도 너무 슬퍼서 이내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죄스러워 생각을 훠이훠이 쫓아내기도 한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이런 마음과는 별개로 엄마가 잔소리를 하면 부리나케 성난 표정을 짓곤 한다는 것이다.


나의 모서리를 둥글게 가다듬어 부모님에게 부드러운 자식이 되고 싶다. 동그랬던 기억을 안고 아갈 수 있기를 소망하며 하루하루 마음을 갈고닦는다. 모난 마음은 분명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입힐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지난날을 반성을 할 때 비로소 행동거지를 조심할 수 있게 된다.


코로나가 끝나면 부모님과 이곳저곳을 다니고 싶다. 요즘은 시간이 가는 게 더욱 아깝게 느껴진다. 마음이 조급 해지는 만큼 일상 속에서 차분히 부모님을 사랑하는 자식이 될 수 있기를.





오후 풍경



과외를 두 탕 뛰고 나니 오후 4시였다. 배가 고파 근처 식당을 두리번거리는데 머리 위로 빗방울이 톡톡 떨어진다. 지난주는 내내 우산을 갖고 다녀도 비 한 방울 오지 않더니, 우산 갖고 오지 않은 오늘 갑자기 왠 비람. 가방 속에 넣어둔 바람막이를 꺼내 대충 머리를 감싼 후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돌이켜보면 회사 다닐 때 허투루 돈을 잘 썼다. 비가 조금이라도 내리면 지체 없이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곤 했었지. 그리고 쉽게 잃어버렸다. 퇴사 후에는 작은 물건을 하나 사는 것도 고민을 하게 된다. 일단 저녁 수업이 한 개 더 남았으니 전철을 타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로 한다.


양재역으로 이동하여 무엇을 먹을까 식당을 훑어보는데 식당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코로나 확진자가 많아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는 곳은 부담스럽다. 그때 근처에 있는 한적한 카페 한 곳이 떠올랐다. 야채가 실하게 들어있어 먹고 나서도 기분이 좋은 그곳. 빠르게 걸음을 옮겨 도착하니 역시나 카페는 한하다. 샌드위치와 아이스커피를 주문하고 그제야 한숨 돌린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삶에 감사함을 느낀다. 인생에 시련이 들이닥쳐도 스스로를 다독이고 힘을 내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지금 하고 있 스스로와 타인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매일매일 공부하고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는 생활이 나의 성향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회사에 일했을 때와 다른 에너지를 갖고 살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그나저나 아까 전엔 하늘이 끝내주게 멋졌는데 이렇게 비가 갑자기 오다니. 삶이란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불안한 상황은 이렇게 계속 나타날 테니 말이다. 내 멋에 취해 얼씨구나하고 춤추며 살아가는 게 투덜거리며 짜증을 발산하는 것보다 훨씬 좋을 것이다.




핸드폰 메모장에 글 쓸 거리들을 모아두었는데 조각보만 쌓여가고 글로 엮어내질 못하고 있다. 할 얘기는 많은데 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 글이 숙성되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묵혀두고 있다.


핸드폰 스케줄러에는 오늘 해야 할 일들이 빼곡히 쌓여있다. 저녁을 향해가는 이 마당에 할 일이 이리도 많이 남아있다니. 여차하면 내일로 넘겨버릴 것이다. 아마도 더운 날씨를 핑계 삼아.


다시 부모님 얼굴이 아른거린다. 요즘엔 부모님이 많이 늙으셨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엄마를 걱정한다. 맛난 음식을 참 좋아하시는데 당뇨와 고혈압으로 입맛만 다시는 아빠를 염려한다. 할아버지 생각이 언제 가장 많이 나냐고 묻는 나의 질문에 아빠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떠오른다고 하셨다. 그 대답을 한 아빠는 정작 건강상의 이유로 많은 음식을 포기해야 한다.


부모님이 떠난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 엄마 아빠를 회상하며 살아나갈까. 잘 모르겠지만, 그 세상은 영원히 한 개의 색상이 빠져버린 불완전한 곳이 될 것이라는 점. 그것 하나는 확실하다.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을 놓게 되었을 때 비로소 고통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하던데. 부모와 자식의 연을 끊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부모님을 사랑하는 만큼, 두 분이 없는 세상에서 나는 딱 그 정도의 속도로 추락할 것이다.


날개가 있는 것은 추락한다고 말했던가. 부모님의 날개로 삶을 살아왔던 나는 위태로움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 보장된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불안전한 존재일 뿐이다.


신이 있다면 그는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가. 모든 것은 순환하는 듯 보이지만 한 번 지나간 것은 영원히 되돌아오지 않는다.


단 한 번뿐인 시간의 흐름에 우리는 평등 한 번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니 존재는 얼마나 소중한가. 사람들은 희소성에 환장하며 명품을 구입하고 뽐내지만, 과연 진정으로 희소한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이는 얼마나 되는가. 글 쓰는 것을 사랑하는 이유는 글이란 순간을 바탕으로 피어나는 꽃이기 때문이다. 지금에 몰입하는 사람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아침 이슬처럼 맑고 빛이 난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나에게 묻는다.


이것은 존재하기에

필연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슬픔인 건지


아니면 갈망과 혐오로부터

내가 재생산하는 슬픔인 것인지를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지금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자신의 사고체계에 맞게 해석한다면 아마 그것정답일 것이다.


나의 주절거림이 누군가의 순간에 닿는다는 것 오른 생각을 펼쳐낼 수 있는 부끄러움 없는 마음에 감사하다. 이런 하루하루가 쌓여 한 권의 책으 완성될 것임을 생각할 때 한 순간도 허투루 보낼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풍경



집에 도착하여 씻고 나니 9시 30분.


땀을 흘려 짭짤하고 노동하여 달콤한 단짠한 하루.

두 발 두 다리 쭉 뻗고 꿀잠야지.


땡땡이치고 싶었던 하루를 성실히 잘 보낸

우리 모두를 위해 건배!


질척거리는 열대야도

우리의 숙면을 막지 못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하철 2호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