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숲 Aug 16. 2021

흩어진 생각들을 모아 만든 조각보 이야기


불경기

푸짐했던 김밥이 볼품없이 홀쭉해지고 그것을 서빙하는 아주머니의 표정이 한없이 어두워지는 것.



기부

'나의 기부금이 과연 제대로 쓰이는 걸까'에 대해 회의감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세상이 조금은 나아지리라 믿으며 지속하는 행위.


물론 그 믿음을 악용하는 자들의 방만한 행태로 기부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것이 슬프지만 사실이다. 


한두해 전이었던가, 한 기부단체에서 후원자들의 기부금으로 요트 파티를 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 기부단체는 아이러니하게도 무척이나 이성적인 오빠 기부를 결정한 곳이었다. 하필이면. 오빠는 그 사건 이후로 기부를 하지 않는 듯하다. 사기꾼들의 장난질로 사람들의 마음에 감성이 들어설 자리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무관심과 냉소가 세력을 확장해간다.



겨울 겨울 그리고 또 겨울

계절은 돌고 돌아 봄을 맞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계속해서 혹독한 겨울만 지속되는 것은 아닌지-


한없이 오르는 물가를 마주하며 다가오는 내일이 두려운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만 하는가. 이 생각하면 그저 아찔할 뿐이다. 양극화되는 세상이 두렵다. 일방적으로 부자를 탓하는 것이 아닌(그들 또한 상당한 노력을 했을 것이다) 계급의 이동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고착화된 사회의 시스템이 두려운 것이다. 이는 나 자신을 상위 카테고리가 아닌 반대쪽 언저리에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오는 두려움일 것이다. 지금이야 부모님의 보호 아래 세상 물정 모르는 병아리 새끼처럼 살고 있지만 사회에 나가 과연 내가 두 발로 서있을 수 있을 것인가.


예전에 맹수가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갓 어른이 된 치타 한 마리는 고독하지만 고고하게 자신 앞에 놓인 삶의 본질을 받아들였다. 내리 굶었지만, 다음날 해가 뜨면 망설임 없이 다시 날카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정비하고 예리하게 초원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한치의 불안도, 불평도 없었다. 그런 치타를 묵묵히 바라보며 거실에 바다표범처럼 누워있는 나는 생각에 잠겼다.


아! 나약한 나란 존재여.   



그럼에도 꽃은 피어난다

차가움만큼 따뜻함이 존재하기이 땅은 얼지 않는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에서 카스테라처럼 포근한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각자의 고민과 상처가 있지만 타인의 슬픔과 기쁨에 공감할 줄 아는 사람들. 세상은 냉혹하다지만 사실 적극적으로 찾아보면 좋은 사람들이 꽤 많다. 다만 이렇다 저렇다 단언하는 내가 있을 뿐이다.


어쩌면 미디어부정적인 것들을 앞다투어 다루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고, 자연스레 부정성이 기본값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것 인간의 오랜 본성 때문일 것이다. 다가오는 위험 대비하려는 우리의 습성.



좋은 하루 보내라는 말에

짜증을 내는 사람도 있다


매사에 짜증을 부리는 사람과 하루를 함께하는 것은 버거운 일이다. 예전 직장생활을 할 때,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말에 짜증을 내는 직장상사를 만난 적이 있다.

 

"아니, 좋지 않은 사람한테 좋은 하루 보내라면 뭐 어쩌라는 거예요?"


나의 두 눈은 커지고 입은 자연스레 다물어졌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벙쪄있는 상태라면 곤란하다. 그랬다가는 이런 반응이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사람이 말하는데 왜 말을 안 하고 빤히 쳐다봐요?"


계속해서 지옥을 찾아낸 다음 괴로워하고 불행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생각해보면 딱한 일이다. 부정성이란 모두에게 찾아올 수 있는 마음의 염증 중 하나인데, 이를 치유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온 몸과 마음으로 빠르게 퍼져나간다. 그리고 골수까지 퍼지는 순간 그 사람의 캐릭터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아 거대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부정성을 완치하기 힘들어진다. 부정성이 마음의 습관처럼 자리잡지는 않았는지 늘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다.


사실 부정적인 사건보다 그 사건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기에 분노가 생겨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다시금 판단하지 않는 삶의 중요성의 곱씹는 지금. 모순적이게도 당신이 읽고 있는 이 글에는 나의 판단이 덕지덕지 묻어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쉴 새 없이 감정의 오르내림을 경험한다.


하루에 두 번 자리를 잡은 후 눈을 감는 이유는, 명상이 삶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을 맑게 청소해주기 때문이다. 세상이 더럽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내 마음의 창이 더러워 세상을 왜곡해서 볼 때가 더 많다.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닦아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어떤 부정성이 일어날 때 집착하거나 갈망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 것. 그것이 오늘 지금 이 순간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다.

 



대문사진 * Pixabay (@FotoshopTofs)

매거진의 이전글 땡땡이치고 싶은 하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