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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숲 Sep 30. 2021

가을에 듣는 캐럴

겨울이 아닌 계절에 캐럴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더운 여름날, 겨울을 떠올리며 캐럴을 듣곤 했는데 올여름은 엄청난 폭염에 캐럴을 들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 덜컥 가을을 맞아버렸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 건지 아님 시원해진 바람 때문인지, 불현듯 캐럴이 듣고 싶어졌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캐럴 매들리를 찾아본다. 오늘은 악기로만 이루어진 캐럴 곡을 선택했다. 고요했던 방 안에 이국을 연상케 하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사람을 들뜨게 하는 멜로디가 귓속으로 들어와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내 만족의 미소가 어여쁜 초승달처럼 얼굴에 떠오르고, 나는 겨울왕국에 나오는 올라프가 된 듯 행복해진다. 머리 위로 하트가 퐁- 퐁- 솟아오른다. 음악은 감정을 전환시키는 강한 힘이 있다.


마음속 풍요의 바람이 불지 않을 때엔 일상을 살아나가기벅차다. 길을 걷다 혹은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 '브런치에 업데이트를 해야 하는데-'란 생각을 틈틈이 했지만 밀린 숙제를 처리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캐럴을 듣고 나서였다. 갑자기 방안에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문득 글자를 화면에 쏟아내고 싶단 충동이 들었다.


예전에는 우울하거나 힘겨울 때 그렇게 글이 잘 써졌는데. 요즘은 또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글이 쓰고 싶단 생각이 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어리석은 습관일 수도 있지만 직업 작가가 아닌 굳이 억지로 한 방울씩 쥐어짜 낼 필요가 있을까. 한 때,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 적이 있다. 브런치에 있는 많은 작가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인생의 팔할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듯 그 꿈도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글을 쓸 때 큰 부담 없이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쓰고 싶을 때에만 글을 쓸 수 있는 특권 덕분이다. 직업 작가가 갖는 고뇌, 판매수를 염두에 둬야 하는 무게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중력 없는 우주를 날아다니는 우주비행사가 된 느낌이다.


어쩌면 이런 가벼운 태도가 작가로 가는 길 막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취미로 쓰는 글 또한 멋지지 않은가. 그 길에서 예상치도 못한 작가의 기회를 발견할 수도 있을 테고. 어찌 됐건 전전긍긍 애태우지는 않게 되었다.


그러나 죽기 전 최소한 한 개의 단편 소설을 쓸 것임을 알고 있다. 이는 다짐이라기보다는 꼭 그런 일이 생길 거라는 강한 예감에서부터 오는 확언이다. 시기가 무르익으면, 팝콘처럼 터지는 봄꽃처럼 어쩌면 나의 영감도 팡팡 터져 나오지 않을까, 하는 뻔뻔한 생각을 갖고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이벤트가 미래에 있을거란 생각으로 하루를 살아나가는 동력을 얻어낼 수 있다.



며칠 전 친구와 통화를 하 코로나가 수그러들면 꼭 함께 태국을 여행하잔 이야기를 했다. 즉흥적으로 한 말이었지만 그 말을 하는 순간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가끔은 내가 생각을 주도하는 것이 아닌, 무심코 뱉는 말이나 생각이 나의 손을 덥석 잡고 어디론가 나를 이끄는 듯하다. 친구화 통화한 그날도 그렇다. 여행 이야기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어떤 결심이 덜컥 세상에 탄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련의 행동으로 이어진 결심은 결실을 보기 마련이다.    


나의 글은 늘 이런 편이다. 제목은 가을에 듣는 캐럴이었는데, 캐럴 이야기는 부실하고 이런저런 실타래 생각을 주절주절 풀어놓다. 제목에 이끌려 온 독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이게 내가 쓰는 글의 스타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를 부정하는 삶은 어쩐지 피곤하다.


나쁜 점을 고집하는 것도 별로지만 자신을 규정하는 특색을 거부하고 다수의 특성을 따르는 삶 또한 피곤하다. 둘 다 조금씩의 오류를 갖고 있다면 그냥 답게 살고 싶다.


겨울아닌데 왜 캐럴을 듣냐고 묻는 사람들의 질문에 차분하게 미소 지으며, '그냥- 좋아서요.'라고 대답하면 그만이다. 타인의 의견에 발끈할 필요 없이 그저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면 된다. 그런 의미로 오늘은 때마침 여유로운 날이니 청명한 날씨와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려 한다. 가을은 짧으니 오랫동안 걷고 명랑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야지. 오전에 글도 하나 썼으니 기분은 더욱 산뜻할 것이다.



대문사진 * Unsplash (@William To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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