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숲 Mar 08. 2022

필명으로 한 달 살기

안녕하세요, 달대나무숲 입니다 : )

공원을 걷다 쌩뚱맞게 브런치 작가명을 바꿀 때가 되었구나 싶었다. (갑자기? 이제 와서?) 내 삶은 늘 이런 식이다. 순식간에 등장한 아이디어가 통성명할 새도 없이 뇌리에 파지직 박혀 떨어지질 않는다. 좋든 싫든 그것이 마이 라이프 아니던가. 어찌 되었건 그렇게, 필명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브런치를 2016년에 시작했으니 글을 쓴지도 햇수로 7년 차가 되어간다. (아니 벌써!) 돌이켜보면 브런치를 개설한 첫날부터 필명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이름이 떠오르지 않 어쩔 수 없이 본명 석자를 정직하게 입력하고 첫 글을 업로드해 버렸다. 그리고 곧 필명으로 바꿀 예정이었는데 인생이 언제 내 뜻대로 흘러가던가. 딱히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지를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황당하게도 2022년까지 떠밀려오고야 만 것이다.


게다가 본명으로 글을 쓰는 것이 내 방구석처럼 편해져서 정말로 잊어버린 줄 알았다. 필명에 대한 열망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오늘 산책길에 이 녀석이 다시 고개를 빼꼼하고 드는 것 아니던가! 마음이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냉정하게 떠난 줄 알았던 내 님이 뽀송한 모습으로 저만치에서 사뿐사뿐 걸어오는 꼴이라니. 난감한 마음과 버선발로 뛰쳐나가고 싶은 반가움이 동시에 밀려온다.


여튼, 필명에 대한 로망은 영영 등을 돌린 것이 아니었나 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한 번 시도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It's now or never!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역시 경험해보는 편이 좋다. 이미 지나가 버린 기회를 못내 아쉬워하며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다.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하는 아쉬움은 단칼에 베어 버려야 한다. 일단 그러려면 뭐든 저지르고 판국을 지켜보아야 한다.


'쿵짝이 맞는지 아닌지를 알고 싶다면 쿵을 두들기고 짝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 않나'라는 개똥철학으로 진정으로 하고 싶은게 있다면 도전해 보는 것이다.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보장할 수는 없지만 시작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물음표가 적힌 박스를 뜯어보지도 않고 평생을 궁금해하며 살고 싶 않다. 성격상 박스를 벅벅 뜯어 그 안에 있는 물건을 직접 보고 만져 보아야 한다.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던, '온점'으로 바꾸던 미련이 남지 않도록 주어진 박스를 열어젖히고 싶었다. 그런 이유로 우당탕탕 좌충우돌이 가득한 삶을 살았다. 보는 이에 따라 그다지 멋진 길이 아닐 수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아쉬움보다는 고마움이 크다.


새로운 길을 궁금해하고 용기 내어 첫 발을 내디딘 것에 대한 고마움. 아닌 것을 아니라고 거절한 것에 대한 고마움.


그나저나 이쯤에서 이 글을 읽는 독자는 궁금해할 것이다. 아니 브런치 작가명 하나 바꾸는데 뭐 이리 말이 많고 비장하고 거창한 건가요. 그런데 말입니다, 작은 변화가 오히려 쉽지 않을 때가 있지요. 그리고 작은 결정이 모여 삶의 거푸집을 만들고, 순간의 결정이 인생 전반의 향방을 결정하기도 하지 말입니다. 그러니 '영혼이 당신의 귓전에 무언가를 속삭인다면 그것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 작은 실마리가 엄청나게 큰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이므로. 그래서 오늘부터 저는 필명으로 새로운 시작을 해보려 합니다! (오늘 글이 유난히 더 정신없다고 느끼신다면 그것은 사실입니다. 지금 굉장히 들뜬상태이거든요 허허허)




낯선 타지에서 한 달 살기가 한때 유행이었다. 늦었지만 겸사겸사 랜선으로나마 그 시류를 따르고자 한다. 일명 '필명으로 한 달 살기'. 브런치 작가명을 한 번 바꾸면 30일 이후에나 바꿀 수 있다 하니 때마침 잘되었다. 한 달 후 다시 본명으로 돌아올지, 아니면 새로운 필명으로 변경할지 모든 것이 미지수.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으쓱, 흥이 난다. 모든 것을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려 한다.


첫 필명은 '달대나무숲'이 채택되었다. 엄마의 핸드폰에 저장된 나의 이름. 정확히 말하자면 '달대나무숲강아지풀'이지만 너무 길어서 앞부분만 사용하기로 한다. 필명으로의 한 달 동안 어떤 글을 쓰게 될까. 기존보다 더 날것의 글을 쓰게 되지 않을까. 이름이란 것은 나를 규정하면서도 영원히 나를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다. 애초에 석자에 한 사람을 담아내는 것이 가능할 리 없지.


이름을 벗어났을 때, 비로소 내면에 감추어두었던 진실한 마음의 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을까-하는 그런 막연한 기대가 든다. 그런 이유로 많은 작가들이 필명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래서 저도 한 번 해볼까 합니다. '지금이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이다.'라는 믿음으로.

  


반가워요 여러분!

오늘부터 저를 '달대나무숲'이라 불러주세요.
짧게 '달숲'이라 부르셔도 좋습니다.

한 달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 )





대문사진 * Unsplash (@J Lee)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는 출장, 오빠는 승진 (外 단편모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