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중간중간 시간이 애매하게 뜰 때에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그런데 확진자가 급증하는 바람에 요즘은 그마저도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어쩔 수 없이 분위기나음료의 맛보다는 사람이 없는 곳 위주로 장소를 택하게 된다.
그날 발걸음이 향한 곳은 조그마한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아르바이트 생은 3명인데 손님은 나 하나뿐이었던 가게. 가게 내부는 지나치게 밝았고 빠른 비트의 음악이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인위적인 흥겨움 덕에 가게 안의 한산함이 다소 흐릿하게 느껴졌다. 한겨울로 역행하는듯한 날씨에 사람들은 다시 두터운 옷을 꺼내 입었고, 텅 빈 아이스크림 가게에는 드문드문 포장 손님만 들락거릴 뿐이었다. 이런 곳이라면 부담 없이 앉아있을 수 있겠다 싶어 메뉴를 주문하고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았다. 깊-은 안도의 한숨이 끝없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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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후는 다양한 감정이 오가는 시간대이다. 한 주를 무사히 보냈다는 뿌듯함을 느끼려는 순간 잠. 깐. 만. 하고 등장한 내면의 깐깐함이 불시에 일상을점검하는, 그런 양면성이 교차하는 시간대랄까. 흘러온 시간을 역으러 거슬러가며 꼼꼼히 지나온 한 주를 복기해본다. 잘한 것도 있었고, 더 잘할 수 있었던 것도 있었다. 과거란 항상 일정한 비중의 아쉬움을 머금고 있다. 완벽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 되는데그게 쉽지만은 않다.
여느 때처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머릿속 짱돌을 굴리고 있는데, 차가운 유리문을 밀며 한 모녀가 가게로 들어선다. 데구루루. 경쾌하게 구르는 작은 구슬처럼, 귀여운 꼬마 아가씨가 씩씩하게 가게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구슬인 줄 알았던 반짝이는 소녀는 탱탱볼이 되어 하늘을 향해 통통 뛰어오른다. 온몸을 감싸는 빠른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꼬마 아가씨. 가게에 있는 유일한 손님과 눈이 마주쳐도 아이의 두둠칫 몸짓은 끊기질 않는다. 아, 빛이 난다. 엄청난 생명력에 넋을 잃고야 만다. 아이는 갑자기 춤을 멈추더니 와다다 아이스크림 쇼케이스로 달려간다. 그리고 짧게 행복한 괴성을 내지른다. 갑작스레 나타난 양갈래 소녀의 등장으로 느슨했던 오후가 싱그러워진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지만 아직은 서투른 말솜씨에 의욕만큼 말이 나오지 않는 아이. 아이의 하얗고 투명한 목소리가 달콤해서 자꾸 귀를 기울이게 된다. 횡설수설하는 소녀의 옆에는 어르는 말투의 다정한 엄마가 나란히 앉아있다. 마호가니가 떠오르는 차분하고 푸근한 엄마의 목소리. 그리고 한쪽 코가 막혔는지 씩씩- 쉬익- 힘겨운 숨을 내쉬면서도 파이팅 넘치게 아이스크림 먹고 이야기를 쏟아내는 꼬마 숙녀. 옆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모녀의 대화를 듣는데 왜 내가 행복해지는 걸까.
아, 사랑이구나.
이런 게 사랑이고 행복이구나.
테이블 앞에 놓인 큰 유리창에 사랑스러운 모녀와 그 옆에 앉아있는 나의 모습이 언뜻 반사되어 비친다. 재잘재잘 쉴 새 없이 말을 늘어놓다 까르르 웃는 명랑함에 그저 그랬던 하루가 꽤나 괜찮은 하루로 부드럽게 모습을 바꾸어 나간다.
고마워요 오렌지 파워 꼬마 아가씨,
만나서 반가웠어요.
2. 이웃집 할아버지와 싱그러운 침묵을 나눠요
살랑이는 봄바람에 노오란 산수유가 마침내 꽃망울을 터뜨렸다. 아파트 복도에 나와 산수유를 바라보고 있는데 때마침 옆집 할아버지가 밖으로 나오신다. 연식이 오래된 아파트 주민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중 하나는, 긴 복도의 파노라마 뷰를 바라보며 이웃과 담백한 친분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대화를 나누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평소에는 잘 지내시냐는 정도의 대화를 나누지만 오늘은 특별 게스트가 있지 않은가. 갑작스러운 산수유의 방문에 우리는 잠시 말을 잃는다. 짧은 침묵을 깬 것은 이웃집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꽃의 이름이 무어냐 물어보셨고, 나는 웃으며 산수유라 말씀드렸다. 그리고 '와, 이제 정말 봄이 왔나 봐요'라고 너스레를 떨어본다. 이내 할아버지의 정겨운 웃음소리가 잔잔한 파도처럼 나의 쪽으로 밀려온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산수유로 시선을 옮겨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봄날의 침묵을 즐겼다.
꽃샘추위가 오기 전 느낀
잠시간의 봄내음이었다.
+ [부록]
3. 의식의 흐름대로 이야기해보아요
금요일 퇴근길, 희망을 안고 올라탄 전철은 만원이었다. 싫다는 감정을 표출할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피곤한 하루였다. 그래서일까. 귀갓길 통닭 두 마리를 샀다. 치킨보다는 통닭이라는 어감이 좋다. 하루를 성실히 보낸 자에게 주어지는 포상의 어감이 있기 때문이다. 두 손은 묵직했지만 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얼른 가족과 통닭을 나눠먹으며 푸근한 시간을 보내고픈 마음뿐이었다.
가족이 사라진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걸까? 종종 나를 찾아오는 단골 질문 중 하나이다. 항상 대답을 찾으려 노력하지만 글쎄. 그날이 오기 전까지 절대 알 수 없는 것 아닐까. 늘 그렇듯 나의 문답은 얼렁 뚱땅이다. 그러나 한 가지만큼은확실하다.지금과는 굉장히 다른 삶을 살 것이라는 것. 그것만큼은 확실히 알겠다. 나는 다른 눈빛, 몸짓,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 될 것이며, 말 사이의 간격과 목소리의 높낮이가 달라질 수도 있겠다.
통닭을 두 손 가득 들고 귀가하는 길. 어쩐지 집에 돌아가는 길을 재촉하고 싶어졌다. 소중함이란 (그것이 간접적이든) 상실의 체험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인가 보다. 이별을 잠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이 보고 싶어졌다. 이래 놓고 다음날 되면 또 기본값으로 돌아가버릴 나란 인간이지만. 그래도 부지런히 사랑해야지,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4. 그리고 이별을 하기도 했어요
오빠는 예정대로 독립을 했고, 아빠는 베트남에서 돌아오셨다. 휑한 오빠 방을 바라보며 울컥했는지 엄마는 눈물을 찔끔 흘리기도 했다. 정말 내 품에서 떠난 것 같다며 돌연 훌쩍이는 엄마의 모습에 어쩔 줄을 몰라 우왕좌왕하는 건 나의 몫. 아참, 꽤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던 아랫집 개와 주인 내외는 이사를 갔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후련해하는 것도 역시나 나의 몫. 유쾌! 상쾌! 통쾌!
아랫집 개가 짖는걸 미련하게 참고만 있는 건 아닌가. 혹시 나 엄청난 호구인가 등등의 질문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되묻곤 했는데 (최근 며칠은 개가 엄청날 정도로 짖어서 정말 참지 못하고 소심하게 포스트잇을 문짝에 붙이고 올 뻔했지만 뼛속까지 소시민인 나는 역시나 인내할 수 있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잘 참았다.
그나저나 나는 언제쯤 독립을 하려나. 오늘도 풀지 못할 질문을 끌어안고 엎치락뒤치락거려본다. 그렇게 평화로운 듯 걱정스러운 하루가 뭉근하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