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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숲 Aug 15. 2022

쓰다 보면 늘 이런 식이다.

지난주는 몰아치는 비로 혼란스럽더니 오늘은 바람이 심상찮다. 선풍기를 틀지 않아도 방 안으로 세찬 바람이 들어온다. 심상치 않음이 어디 한국뿐일까. 전 세계적으로 심란한 움직임이 포착된다. 유은 500년 만에 찾아온 가뭄으로 난리라 하고, 뉴스 자료화면에서는 미국의 산불이 맹렬하게 숲과 집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자연재해에 인재까지 더해지니 우리의 미래는 혼란을 향해 돌진하는 듯하다. 다가올 미래가 기대되는가? 글쎄올시다. 희망을 노래하기에는 두려운 일이 팝업창처럼 무작위로 펼쳐지는 요즈음이다.


그렇다고 넋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장 나의 하루에 오버랩되지 않는 골칫거리는 차치하고 오늘의 밥벌이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소외적인 구조 속에 우리는 놓여있다. 뉴스 헤드라인을 읽으며 '이런... 저런..' 안타까운 마음으로 탄식을 내뱉지만 목적지에 다다랐다는 버스 안내음에 사방팔방 펼쳐진 마음을 후다닥 접어두고 일상으로 뛰어드는 것이 우리네 삶 아니던가. 행동하지 않는 선의는 마음속에 품고 있는 악함과 얼마나 다른 것일까.


최근 몇 달 동안 창조적인 작업에 몰두하고 싶었지만(글을 쓰는 것과 같은) 하루의 끝에는 에너지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아 노트북을 끄느라 바빴다. 소진된 상태에서는 영 글이 써지질 않는다고 애써 합리화하며 이불속으로 고된 몸을 구겨 넣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흘려보내며 미지근한 시간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채워나갔다. 지지부진한 일이 줄줄이 사탕처럼 계속해서 이어졌다. 한 개가 끝나면 또 다른 한 개가 기다렸다는 듯이 손목을 낚아챘다. 머릿속은 게워내고 싶은 불안으로 가득했다. 여름이라서 그런지 의욕도 체력도 바닥이었다. 그 와중에 매미는 온 힘을 다해 목청껏 울었다. 그러다 문득 할 일을 끝마쳤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미련 없이 땅으로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저렇게 불꽃처럼 살다 죽는 인생은 어떤 느낌. 중력의 힘에 굴복한 매미의 몸에는 티끌 같은 곤충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생이 지나간 흔적을 멀뚱이 바라보며 불확실의 영역에 머물러있는 나의 남은 삶을 곱씹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글을 쓰지 않았지만 사실은 뺀질거리면서 미뤄왔을 뿐이다. 게으른 인간에게는 늘 그럴듯한 핑곗거리가 필요하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시간을 내어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야 할 부분. 책을 읽는 행위를 통해 무조건적인 뿌듯함을 느끼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배운 것을 꼭꼭 씹어 생활 속에 녹여내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독서 덕분에 생각할 거리가 많아졌다. 누군가의 사유를 천천한 속도로 뒤따라는 것은 꽤나 만족스러운 일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글감이 떠오를 때면 머릿속에 배열된 단어를 빠르게 적어 내려가고 싶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방으로 들어와 노트북을 켜면 구멍 난 풍선처럼 의욕이 푸슈슉 하며 사라져 버렸다. 방금 마음먹은 일인데도 이모양이라니. 기분 따라 내키는 대로 사는 성격은 참으로 피곤하다. 변덕이 사시사철 들끓으니 글 하나 발행하기가 이리도 어렵지. 그럼에도 그러려니 했다. 평소처럼 공원을 걷고 하늘을 보며 멍 때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바라보며 불안을 잠재웠다.


그러고 보면 이번 달은 엄마와 산책을 자주 했다. 엄마는 내가 집을 비울 때마다 이야기할 거리를 잔뜩 쌓아놓고 있는 듯하다. 엄청난 이야기를 쏟아내는 엄마를 보면 신기한 마음이 들어 엄마의 표정을 자세히 관찰하게 된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웃음이 실실 나온달까. 엊그제는 동네 작은 서점에 가서 엄마가 좋아하는 만화책을 잔뜩 샀다. 그리고 어제는 근처 그림책 서점에서 동화책을 샀다. 지난번 대형 서점에서 허탕 쳤던 동화책이 있어서 어찌나 반갑던지! 동화와 만화를 좋아하는 맑은 영혼의 엄마. 어쩌면 너무나 맑아서 얼룩진 세상을 사는 것이 그렇게 겁나고 두려운 것 아닐까. 강박증이 심해질 때마다 땀을 폭포수처럼 흘리는 그녀이지만 이제는 엄마의 불안에 우리 가족 모두가 익숙해졌다. 우리 모두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중이다. 그리고 보다 건강한 관계로 거듭나기 위해 내가 감당하기 힘든 것은 적절히 거절하기도 한다. 나를 보살피며 엄마를 살뜰히 챙기는 방법을 도모하는 중이다. 우리는 손을 잡고 느적느적 공원을 걷는다. 영양가 없지만 웃음이 픽하고 나오는 잘데기 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을 한다. 가족이라는 포근한 흙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을 때, 자연의 품에 안긴 듯 마음이 안정된다.


그나저나 글을 쓸 때만 해도 이런 글을 쓰려는 생각은 아니었는데. 쓰다 보면 늘 이런 식이다. 그래도 어찌 되었건 길이 트인다는 것은 좋지 아니한가. 이번 글이 마중물이 되어 조금 더 부지런히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란다.


한여름의 지겨움 한 풀 꺾인 듯하다. 이런 생각을 하면 방심하지 말란 식으로 무더위가 다시 찾아오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더위의 정점을 지나쳐 가을 냄새가 언뜻 코 끝을 스칠 것이다. 그때까지 쓰고 지우고, 다시 쓰며 하루를 보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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