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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숲 Aug 20. 2022

기묘한 하루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일상 이야기


1.

좁은 길



여성도 지나가려 하고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오토바이도 기어코 지나가려 한다. 그러다 결국 어디가 살짝 쓸렸나 보다. 여성의 신경질 적인 '아이씨!'가 사방으로 울려 퍼진다. 뾰족한 작살의 끝처럼 날카로운 소리가 고막을 찔러온다. 얼마 안 가 끼익 하고 오토바이가 멈춘다. 그 위에 올라탄 남녀는 묵직하게 그곳에 멈춰 있을 뿐 아무런 말이 없다. 멀뚱멀뚱 네 개의 눈 깜박거린다. 계속되는 여성의 아이씨 소리. 그렇게 몇 번의 짜증스러운 울부짖음이 세상에 탄생되고, 여성은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씩씩거리며 길을 나선다.


잘못은 있고 사과는 없는 아침 출근길.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다 이내 걸음을 옮긴다.


@ Unsplash | Mira Kemppainen



2.

떡볶이 가판대



안녕하세요- 경쾌하게 떡볶이집 사장님에게 인사를 건네며 주문을 한다. 그때, 미리와 먹고 있던 중년의 남성이 갑자기 '아씨'를 읊조리더니 떡볶이 그릇을 뒤쪽에 있는 수풀 쪽으로 냅다 던진다. 아니 '날린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순식간에 떡볶이 그릇이 날아간다. 그는 연이어 튀김 그릇을 길가에 던진다. 김말이와 오징어 튀김이 나뒹군다. 주변에 있던 비둘기들은 이게 왠 횡재냐하며 기쁜 마음으로 접근해온다. 구구 구구.


개연성 없는 상황 전개에 떡볶이 주인아주머니와 나는 서로의 눈을 마주칠 뿐 한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다. 그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자리를 뜬다. 그리고 행인 속에 완전히 녹아들어 태연하게 길을 걷는다.


역시나 사과하는 이는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입맛이 뚝 떨어져 버린 점심 풍경.




3.

불편한 카페



예전부터 와보고 싶은 카페였다. 오렌지청을 넣은 에스프레소를 파는 카페. 화사한 매장 사진과 신박한 음료가 쉴 틈 없이 인스타 피드에 올라왔다. 아쉽게도 기회가 닿지 않아 늘 마음에만 품고 있었는데 오늘 오후 수업이 갑자기 캔슬되었다. 때마침 위치도 근처였다. 이날이지 싶어 걸음을 재촉했다. 그때 오른쪽 팔뚝에 톡 하고 물방울이 하나 떨어졌다. 토도독. 이내 여기저기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빠른 걸음으로 도착한 카페는 생각보다 작았다. 게다가 기대했던 음료는 그저 그런 맛이었다. 이렇다 할 특색이 딱히 없었다. 함께 내어준 초콜릿이 예상외로 맛있었달까. 인스타 홍보란 게 그런 거지 뭐. 알면서도 또 속았다. 그래도 기왕 왔으니 조금 앉아있다 갈까 싶었다. 대충 자리를 잡고 할 일을 하려 하는데 두 남녀의 목소리가 집중하려는 의식을 비집고 들어왔다. 티격태격하는 낯선 목소리에 잠시 시선을 옮기니 카페 점장과 알바생이 기싸움을 하는 중이었다.


1시가 되었으니 점심을 먹으러 가라는 점장과

1시에 밥을 먹으러 가면 점심 손님들이 많아서 시간 내에 밥을 먹기가 힘들다는 알바


팽팽한 두 명의 대화가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한다.

20대로 보이는 여자 알바생은,


"그러면 점장님이 지금 다녀오세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찾아온 싸한 정적.


그들의 대화에 몰래 참여하고 있는 나는 침을 꼴깍 삼킨다. 핸드폰 화면을 보는 척하고 있지만 온 신경은 살얼음 판을 걷는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되어 있다. 점장은 결국 알바를 조용히 불러들여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무어라 말한다. 굳은 표정의 여자 알바는 얼마 안 가 매장을 나선다. 아마도 밥을 먹으러 가는 듯했다. 점장은 그녀에게 뭐라 말했을까? 그녀가 나간 다음 급속히 싸늘해진 매장 분위기에 난감해진 건 혼자 덜렁 남겨진 남자 알바생이다. 자고로 중간에 끼여있는 사람이 가장 불편한 법이다. 남자 알바와 점장은 말없이 음료를 만들고 찻잔을 정리했다. 지금쯤 여자 알바생은 무슨 생각을 하며 밥을 먹고 있을까. 꾸중을 한 점장의 마음은 또 어떠할까. 가끔은 만화책 속 말풍선처럼 사람들의 속내가 투명하게 보였으면 좋겠다. 깊은 곳까지 구석구석 알아내고 싶은 충동이 올라온다. 당연히 아무도 속마음을 말해주지 않기에 언제나 모든 것은 나의 단순 추측일 뿐이다.


집에 갈까 말까를 망설이는 사이 20분 정도가 지났다. 그때 베레모를 쓴 여성 알바가 쌩하고 매장 안으로 들어온다. 점장은 벽 쪽을 마주한 좌석에 앉아 노트북을 하고 있다. 이들의 갈등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해진다. 서로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달라고 조용히 시위할 뿐이다.


손 내미는 이는 없고

등 돌리는 사람만 있는 오후 풍경


이게 뭐람. 여유를 만끽하려는 마음이 짜게 식었다. 자리를 뜨기로 결정한다. 가방을 싸는 동안 어울리지 않는 하우스 풍의 음악이 방정맞게 울려댄다. 이곳을 다시는 찾지 않으리라.


기묘한 날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는 감독이 은밀하게 큐 사인이라도 보내는 건지 가는 곳마다 달그락거리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하루. 안전함을 느끼는 공간으로 대피하고 싶다. 우중충한 하늘이 비구름을 마저 쏟아내기 전에 얼른 돌아가야지. 집을 향해 발걸음을 총총 옮긴다. 내딛는 걸음마다 미세한 불안으로 가슴이 콩콩거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쓰다 보면 늘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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