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삼겹살 전문점이 논란의 중심에 선 적이 있다. 강남 한복판에서 버젓이 장사하고 있는 이 프랜차이즈는 단체 회식팀에게 실제 주문 금액의 두배를 결제했다고 한다.
계산 실수였다라고 넘어가기엔 금액차이가 너무나도 컸기에 싸한 기운을 감지한 직원이 주문내역 출력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러자 식당 직원은 방금 나간 테이블은 160만원 어치를 먹고 나갔다며 오히려 적반하장 식으로 맞받아 쳤다고 한다. 내가 읽은 기사에 의하면 그러하다. 진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미디어라는 매체의 특성상 살이 붙여지거나 떼어졌을 수 있다. 그러나 직원의 요청으로 출력된 영수증에는 빠져나갈 수 없는 사실이 정직하게 찍혀있었다. 건네받은 종이 쪼가리에는 주문하지도 않은 내역들이 촘촘하게 박혀있었다.
아니 어떻게 시켜먹은 것보다 두 배나 많은 금액이 찍힐 수 있는가? 손님의 입장으로서는 다분히 의도적인 소행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얼마 안 가 본사 측에서 내놓은 입장이 다소 황당하다. 복잡한 포스 시스템을 직원이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 이번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그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려고 한 것 같은데 여론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자 아차 싶었는지 프랜차이즈 대표가 공식적으로 고개 숙여 사과를 했다. 절대 고의가 아니라는 말을 덧붙이며. 여운을 남긴 한마디 때문인지 자신도 중복 결제를 당한 적이 있다며 경험담을 토로하는 익명의 제보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제삼자로서는 알 수 없는 사건의 전말일수록 진실을 알고 싶은 막연한 호기심이 뒤따른다. 물론 진실을 얻기 위해서는 양심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하고,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주장에 대한 진위 여부를 헤아릴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결국 진실이란 닿기 어려운 저 너머에 있으므로 도중에 은근슬쩍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진실을 파악하는 것이 이렇게나 어렵기 때문에 누군가는 쉬이 거짓말을 하며 세치 혀를 놀린다.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그런 이유로 세상에는 수작 부리는 인간들이 들끓는 것이다. 사람들은 속이기 위해 또는 속지 않기 위해 서로를 속고 속인다. 물론 이 세상에 숭고한 마음의 현자가 없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비밀의 정원처럼 어딘가에 살포시 숨겨져 있으므로 성스러운 그들의 존재를 나로서는 자꾸만 깜빡하게 되는 것이다. 매일 대면해야 하는 것은 오히려 진실과 거짓이 엉켜있는 복잡한 하루이며 그 속에는 늘 한탕을 노리는 자들이 들끓고 있다. 법치주의 국가에도 촘촘하지 않은 시공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시정잡배들이 군림하는 무법지대는 은밀하게 자신의 위엄을 뽐낸다. 멀끔한 양복차림의 한때는 지성인이었던 작자들도 사람들을 속이겠다며 부끄러움 없이 더러운 세상에 뛰어들고 있다. 이렇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검은 마음에 걸리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리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덫이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는 법. 풀을 뜯어먹는 순하고 여린 동물은 부지불식간에 훅-하고 수렁에 빠져버린다.
낯짝이 두껍다란 이야기를 하니 머릿속에 한 인물이 떠오른다. 내가 다닌 한 회사의 CEO는 '4시 30분에 집에 간다!'란 그럴듯한 조기 퇴근 제도를 만들며 야근 수당을 은근슬쩍 없애버렸다. 이것이 나로서는 거대한 수작으로 받아들여졌다. 대외적으로는 저녁이 있는 회사로 홍보할 수 있고 내부적으로는 야근 수당이라는 비용 항목을 덜어낼 수 있으니 정말 아름다운 개수작이지 않은가!
회사에게는 보배였을지 모르겠다만 쌓여있는 일을 처리하는 직원으로서는 몹시 곤란한 일이었다. 특히 매일의 마감일과 씨름하는 직무를 가진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른 퇴근이라. 그런 것이 가능할 리 없었다. 그러므로 4시 30분에 가볍게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는 다른 부서 직원들을 보며 무력감을 쌓아갈 뿐 그 외에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그렇게 꾸역꾸역 사명감인지 아니면 패배감 일지 모를 감정으로 쳇바퀴를 돌리고 있을 때 결국 사달이 났다. 그날도 야근하기에 앞서 식사가 가능한 회사 미팅룸에서 간단하게 팀 동료들과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물론 회사 밖에서 밥을 먹으면 기분이 전환되고 맛도 좋지만 시간을 너무 잡아먹으므로 주로 간단하게 분식을 먹곤 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남아있는 일을 가늠하고 있을 때 가벼운 옷차림의 CEO가 빼꼼하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한다는 한 마디가,
"어? 나 빼고 맛있는 거 먹네?!"
"....?"
거짓 웃음을 날릴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아 시선을 외면해버렸다. 사실 가벼운 마음으로 넘어갈 수도 있는 말이었다. 별 뜻 없이 내뱉은 생각 없는 한 마디였을 것이다. 그러나 크고 작은 분노가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사람은 결심을 하게 된다. 그의 가벼운 한마디가 임계점을 넘겼고 순간 잃어버린 나의 인간성을 되찾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의 부품이 되어 고분고분 태엽을 돌릴 마음이 증발하였다.
줄곧 스스로에게 말해왔다. 다 이렇게 산다고. 회사가 거기서 거기지 얼마나 다르겠냐고. 이러한 나의 독백은 최소한의 배려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일하는 만큼의 수당을 주지 않으면서 노동자를 부려먹으려 하는 자본가에게 나는 더 이상 소중한 시간과 미래의 가능성을 저당 잡히고 싶지 않았다. 자본주의가 점점 산으로 가는 것은 어쩌면 성숙하지 않은 더러운 마음의 자본가들이 수작질을 부리며 활개를 치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러나 세상의 모든 자본가가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것에는 장점과 더불어 단점이 있다. 그러나 단점이 월등하게 장점을 압도할 때 잠시 멈춰 서야 한다. 그다음, 무엇이 나에게 이로운 지를 차분히 살펴보고 지금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 아닌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것이 삶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생을 온전히 책임지는 길이라 생각한다. 물론 말만큼 쉽지는 않다. 여하튼 별거 아닌 사장의 한 마디에 남아있는 정신줄이 톡 끊어지며 회사를 나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뭐 그 덕분에 흘러 흘러 지금까지 올 수 있게 되었다마는 돌이켜 생각해도 그다지 유쾌한 기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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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 잔 끝을 파리 한 마리가 부지런히 날아다닌다. 모닝커피를 마실 줄 아는 녀석인지 잠시 커피잔에 앉아 있는다. 그러다 가볍게 날아올라 다시 테이블 끝을 돌아다닌다. 커피는 이미 다 마신 터여서 마음이 여유롭다.
세상은 늘 그랬듯 소란스럽다. 그곳에서 우리는 사랑을 하고 울고 웃고, 때로는 만나고 헤어진다. 끊임없이 부정성이 존재했지만 그것을 상쇄하는 온화한 에너지 또한 우리와 함께 존재해왔다. 그것들은 소리 없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파고들었다가 따뜻한 여운을 남기고 다시 어딘가로 흘러간다. 개수작이 창궐할 때마다 조용히 세상을 움직였던 묵직한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아직은, 아직까지는. 이 세상이 최악으로만 치닫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고 싶다. 이것이 단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맥없이 흩어지는 문장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먹구름 너머에 있는
푸른 하늘처럼,
어두운 세상에는
반드시 진실한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고,
온 힘을 다해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