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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마음을 보듬어 본다.

by 달숲

사람마다 주어진 그릇의 크기가 있다면,


인내를 담는 나의 그릇은 종지만 할 것이고

예민함을 위한 그릇은 거대할 것이다.


요즘엔 작은 일에도 잔뜩 예민해져서

까칠한 고슴도치가 된다.


예민함은 계절을 타지 않을 테니

날씨 탓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오늘처럼 짜증 가득한 감정이 차오르면 집 밖을 나설 뿐.


오늘은 어디로 향해볼까나-



인스타를 왜 하지 않아요?라는

질문을 종종 들을 때가 있다.


계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정말 어쩌다 한 번 들어갈 뿐


더 이상 업로드를 하지도,

주기적인 로그인을 하지도 않는다.


최고의 순간만을 담아내고 있는 공간을

소화해 낼 그릇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취약한 마음을 지켜내기 위해

SNS를 멀리한다.





이를 단정한 생활 습관이라 해야 하나

아니면 단순 회피형 인간이라 해야 하나-


불편할바에 차라리 도려내는 게 낫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관계에 있어서는 기회를 주는 편이지만

감정이 쌓이고 쌓여 한계에 다다르면

오랜 인연도 결국엔 정리한다.


이런 유형의 사람을 주의하라는 글을

인터넷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



나는 이상한 사람인 걸까?


사람이 좋으면서도 힘들다.

어쩌면 나 자신이 힘든 걸지도-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혼자 있고 싶다.



그런 날에는 침묵을 지켜야 하는 것이 규칙인

조그마한 카페를 찾는다.


함께 있으면서도 모두가 혼자인 공간.


실타래처럼 얽혀버린 마음을

고요함으로 풀어내는 공간.




귀를 쫑긋 세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싶지만


마음이 소란스러운 날에는

생각이 자꾸만 샛길로 빠진다.


잡생각 뒤에 숨어서

간신히 한 마디씩 거둘 뿐이다.


푸릇푸릇 반짝이는 생각으로

가득한 사람이고 싶지만



주로 흐리멍덩한 몽상이나

실체를 알 수 없는 걱정에

휩싸여있을 때가 더 많다.



두려운 생각은 일파만파로 퍼져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괜히 걱정이 되고 심란해진다.



런 생각이 지속되다 보면

믿음이 되고, 믿음은 행동으로 나타난다.


행인의 발자국이 길이 되고, 그 길이 낯선 이를 이끄는 지표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거다.



그러니 부정적인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는

환기를 시켜주어야 한다.



에 젖은 강아지가

푸르르르 물기를 털어내듯


몸을 움직여

무거운 생각을 훌훌 털어내야 한다.


목적지 없이 무작정 걷는 것도 좋다.


끊임없이

모험을 떠나고,

길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죽는 날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이겠지.



가능성을 피워내다 때가 오면

수명이 다해 죽는 것.



죽음에 관해 생각은 한다마는,


매일매일 처리해야 할 크고 작은 일이 있기에

깊은 사유는 늘 저만치씩 멀어져 있다.



결국 하게 되는 말이라고는

날도 좋은데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

언제 시간 나면 한 번 보자와 같은 것들이어서

삶이 조금씩 공허해진다.




그럼에도 모두의 삶은 죽음으로 수렴하지 않던가.


회피할 수 없는 존재의 파멸이 앞에 놓여있기에

허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일 테다.


태어날 때 아기가 앙하고 우는 건 어쩌면 그런 이유에서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찌 됐건 기왕지사 태어났으니

살아갈 수밖에 없을 터이고


살기 위해(또는 죽기 위해) 마지막 날까지 끼니를 챙겨야 할 거다. 자꾸만 울화통이 터지고 두려운 건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죽을 텐데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잘못한 것도 딱히 없는데 왜 죽어야 하나. 뭐 이런류의 생각들.


그래서 무얼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딱히 이렇다 할 해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낯 인간이 뭘 어쩌겠는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어여삐 자라는 텃밭 식물처럼 있는 그냥 있는 그대로 존재하면 된다.


혼란하다면 혼란한 채로, 평온하다면 평온한 채로. 있는 그대로의 감정으로 살아가면 된다.



그런 까닭에 오늘도 한껏 까칠해진 나의 고슴도치 마음을 들여다보고 보듬어 준다.


이 까칠한 마음이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기를. 불편하다고 도려내거나 회피하지 않기를. 그리고 예민한 마음이 다시 찾아온대도 언제고 조용히 마주 앉아 함께 머물러 줄 수 있기를.


그리하여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나의 길을 잘 만들어 나가기를.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하루를 살아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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