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 아주 오래전부터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앞으로 순간순간 떠오르는 영감의 조각들을 <소설가의 서랍>에 적어 내려가려 합니다.
각각의 글은 서로 연결되지 않으며, 모두 허구의 인물입니다.
은정아, 오늘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다가 느꼈어. 밥풀이 덕지덕지 묻은 숟가락과 씨름하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이게 뭐지? 내가 바라던 삶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어릴 적부터 나는 그럴듯한 중산층의 삶을 사는 게 꿈이었지만 넌 아니었지. 넌 준비만 되면 어디로든 훌쩍 떠나고 싶어 했어. 마치 한국이 너를 가둬 놓은 새장인 것 마냥.
너무 달랐기 때문일까?
만나자마자 우린 급속도로 친해졌지. 비밀이 없는 사이였어.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이야기를 은정이 너에게 털어놓을 때면 손에 땀이 맺히면서도 몹시 통쾌한 기분이 들었지. 비밀이란 게 그렇잖아. 혼자 짊어지기에는 너무 무거워서 결국엔 어딘가에 풀어놓지 않으면 안 되겠는 그런 거.
난 말이야. 아주 오래전부터 밥벌이에 대한 고민일랑 다 던져버리고 편안하게 사는 삶을 꿈꿔왔던 것 같아. 그런 나의 꿈이 어딘지 모르게 하찮아 보이고 한심해 보이기까지 해서 너 외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지. 오히려 감추고만 싶었던 것 같아. 그래서 삶을 개척하는 여장부의 이미지로 살아왔지. 결국 남들이 보기에 부러워할만한 대기업에 들어가서 승승장구 승진을 할 때도 있었는데. 물론 그런 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어. 타인의 욕망이었지. 뭐 그런 거 아니겠어? 삶이란 게 본래 거짓이 가득한 거잖아.
평범한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있는 모난 부분을 도려내고 싶어 하는 법이고 뜻처럼 되지 않는다면 그걸 감추기 위해 별에 별 짓을 다 하지. 가끔은 정반대의 행동을 하기도 해. 나는 한량의 이미지를 벗어나고 싶어서 일개미의 모습을 택한 거지. 난 정말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말야.
있잖아, 나는 마트나 백화점에서 갑질을 하며 소리 지르는 사람들을 보면 어쩐지 서글퍼져. 두려움이 분노의 탈을 쓰고 토악질을 하고 있는 것 같거든. 참 웃긴 건 말야. 그런 추악해 보이는 사람들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딱한 부분이 한두 가지씩은 있더라. 그래서 어떤 사람이 절대적으로 악하다고 말하기엔 곤란한 부분이 있어.
그런데 이건 또 다른 이야기인데 말이야. 왜 SNS에서는 다들 행복해 보이는 걸까? 사실 행복해 보이려고 발악한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인 것 같아. 온라인 세상에서는 증명하고 싶어서 미쳐 날뛰는 사람들이 넘쳐나. 악다구니에 차서 뭔가를 보여주지 못해 안달이 난거지. 어쩌면 그런 사람들을 은밀하게 관찰하는 내가 가장 딱한 사람일지도 몰라.
은정이 너라면 나처럼 살지는 않을 텐데.
살아오며 성격이 비뚤어져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면 너를 생각했어. 너는 왜곡된 자아가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사람은 내 삶에 오직 너 하나뿐이었어.
은정아 기억나니?
대학교 다닐 때 나를 정말 힘들게 했던 당시 내 남자친구 말이야. 우리는 걔를 ‘지뢰남’이라고 부르곤 했잖아. 겉은 멀쩡하게 생겼는데 어찌나 이상한 아이었던지. 알고 보니 다 거짓이었어. 명문대 재학생이란 사실도, 부모님이 미국에 산다는 사실도. 타고 다니던 자동차도 어디서 훔친 차였잖니? 어쩜 캐면 캘수록 끔찍한 사실들이 계속해서 나오던지. 그 덕에 꼭 지뢰를 밟은 것처럼 내 삶이 꽤나 참담해졌잖니.
그런데 말이야. 나한테 무릎 꿇고 빌어도 시원찮을 판에 그 지뢰남이 글쎄 가스라이팅을 하면서 도리어 나를 죄인으로 몰고 가지 않겠니? 나를 정말 쉽게 봤던 거지. 그래서 나는 걔를 아주 납작하게 밟아줘야겠다고 다짐했어.
사람들은 가끔 나를 맹하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참 바보 같다고 생각해. 왜 보이는 것 너머의 것을 모르는 걸까 인간들은? 적당히를 모르는 사람들은 꼭 피를 봐야 정신을 차리잖니. 선의를 받았으면 감사합니다 하고 좋게 끝낼 것이지, 악의로 돌려주는 건 또 어떤 경우라니? 나는 세상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여하튼 그렇게 지뢰남에게 피의 심판을 내리고 단칼에 퇴치해 버렸지. 그러고 나서 은정이 네가 꽤 근사한 술집에 나를 데려가서 위로를 해주었잖니?
내 인생은 그때만 해도 꽤나 괜찮을 것 같았어.
근데 재밌는 사실은 그 지뢰남이 얼마 안 가 연애를 시작했다지? 그때 나는 너무나도 겁을 먹었어. 그 찌질한 자식이 순진무구한 여성의 일생을 흔들어 버릴 거란 걸 짐작했기 때문 일거야.
그런데 곧이어 그 둘이 결혼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더라고? 그때 나는 깨달았어. 흔들리고 있는 여자가 사실은 나란 것을. 내 깊은 곳에는, 지뢰남이 잘못된 게 아니라 나에게 하자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공포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던 거야. 걔네들 결혼 소식을 듣자마자 불안감이 들불처럼 순식간에 퍼지기 시작했어.
은정이 너는 내 말을 듣고 다 잊어버리라 말했지만 나는 정말 그럴 수가 없었어. 그래서 한 동안 방황했잖니. 어찌어찌 마음을 잡는 데까지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지.
그리고 시간이 흘러 몇 년 전, 우연찮게 연락이 닿은 대학 동기가 뜻밖의 소식을 전해줬어. 글쎄 지뢰남이 또 뭔 짓거리를 했는지 위자료를 옴팡 뒤집어쓰고 홀아비처럼 살고 있다는 게 아니겠니? 나는 안 됐네라고 말하며 가슴이 미어지는 표정을 지었지만 아주 후련한 기분이 들었어. 기분이 너무나도 상쾌해서 글쎄 그 친구에게 한 턱을 쏘기까지 했다니까? 그날 얼마나 홀가분하게 잠자리에 들었는지, 지뢰남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어.
그런데 그런 감정을 느끼는 건 아주 찰나이고 나에게 주어진 삶은 지루함과 짜증의 연속이야.
이제는 정말 정착을 하고 싶다고 언젠가 너에게 말한 적이 있었지? 그때에도 은정이 너는 자꾸만 떠나고 싶어 했어. 남미로, 아프리카로, 저 너머의 세계로.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훌쩍 떠나곤 했지. 생각해 보면 난 언제나 정착하는 삶을 살았던 것 같은데. 왜 나는 정착이 하고 싶다고 말한 걸까?
언제고 나는 은정이 네가 잠깐 한국에 들어오기를 기다리곤 했어. 늘 너는 세상의 재미난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곤 했으니까. 나는 그런 너의 용기가 대단하다고만 느꼈지, 너와 같은 삶을 살고 싶다거나 뭐 그런 류의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아. 내가 동경하는 삶은 <안정적인 중산층>의 삶이었거든. 서울에 있는 내 아파트에서 조신하게 커피를 내주며 너를 맞이하는 삶. 여행 일화를 들으며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호호 그렇구나라고 교양 있게 맞받아치는 그런 삶을 꿈꿨던 거지.
그래서 지금의 남편과 소개팅을 했을 때
딱 이 남자다 싶었어.
재미는 없지만 안정감이 있는 남자.
이 사람과 결혼하면 내 삶에 지뢰는 단 하나도 터지지 않겠다 싶었지. 그래서 오히려 내 쪽에서 마음이 급해져서 결혼을 서둘렀어. 알고 보니 이 남자, 서울에 자가도 있고 저축도 착실하게 해 온 터라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을 것 같더라고. 허튼 짓은 안 할 놈이다 싶었어. 인생에 청사진이 있는 그런 계획적인 남자니 말이야. 그런데 딱 한 가지 흠이 있었는데 우리의 대화가 뚝뚝 끊긴다는 거였어. 그리고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이 사람 앞에서는 자꾸만 기가 죽더라고. 당시에는 결혼을 앞두고 예민해서 그런 거라 생각했어. 그래서 그렇게 후루룩 뚝딱 결혼을 해버렸지.
연애는 야무지게 잘하던 내가 결혼에서만큼은 왜 이렇게 허술했는지 모르겠어.
결혼하고 보니 남편은 정말 무뚝뚝한 사람이더라고. 물론 연애할 때도 자상하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나는 아이를 낳으면 나아질 거라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 순진했던 거지. 그런데 아이를 낳으니 이 남자가 글쎄 가정이 아니라 업무에 더 몰두를 하더라고? 그래서 나는 아이 둘을 낳으면 더 나아지려나 싶어서 애를 하나 더 낳게 되었지. 그랬더니 아이 아빠는 업무량을 두 배로 늘리더라고. 정말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렸어.
우리 부부 사이에 대화는 점점 줄어들고 언젠가부터 여보, 자기라는 호칭은 저 멀리 자취를 감췄어. 대신 애들 아빠, 애들 엄마라고 서로를 부르기 시작하다가 요즘엔 그마저도 없는 상태야. 남편의 청사진엔 아내와 하하 호호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며 사는 그림은 없었던 거야. 그저 자신의 목표가 잘 실현될 수 있도록 군말 없이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여자를 찾고 있었던 거였어.
이런 이야기를 네가 들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지뢰남을 피해 지금의 남편에게 정착했는데 이게 잘 한 결정인지 모르겠어. 물론 지금까지 서로에게 쌍욕을 하거나 물건을 던지며 싸우 적은 없어. 어쩌면 그럴 애정마저 없는 걸지도 모르지.
그 사람과 나 사이에는 뭐랄까... 비무장지대가 존재하는 것 같아. 강제적이고도 의무적인 평화가 우리 사이엔 깔려있지. 그곳에 얼마나 많은 지뢰가 깔려 있는지 영원히 알지 못한 채 죽어버리고 말 거야. 누구도 용기 내어 한쪽으로 넘어가려고 하지 않으니까.
남편은 부부사이의 일도 회사일 하듯이 사무적으로 처리해 버려. 그런 것들이 나를 얼마나 쓸쓸하게 하는지 그 사람은 알지 못할 거야.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거고. 그 사람 얼굴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어.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아. 이런 결혼 생활을 내가 하게 될 줄이야. 정말로 몰랐어. 그런데 이렇게 되어버렸네. 지뢰남이 이혼당해 조촐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만이 불행한 내 삶을 소소하게 위로해 줄 뿐이야.
타인의 일에 끼어들지 않는 네가 지금 내 남편, 그러니까 애들 아빠와 함께 식사를 하고 나서 내게 조심스레 해주었던 말이 갑자기 떠오르네. 나한테 이 결혼 정말 괜찮겠냐고, 후회하지 않겠냐고 딱 두 마디를 건넸었지. 어째서인지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불같이 화가 나서 너를 몰아세웠어.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 마음을 네가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아서, 괜히 부끄러워서 그랬던 것 같아. 항상 당당하던 너에게 나는 은은한 질투를 느끼며 살고 있었는데 혹시 알고 있었니? 나의 옹졸한 마음과 알량한 자존심이 끝끝내 너의 사과를 이끌어냈지. 그때도 지금도 나는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화만 내는 초라한 사람이야.
그때 사과를 해야 하는 건 나였는데 말이야.
은정이 너는 언제나 좋은 친구였어.
근데 나는 너를 지치게 만들었지. 언제나 속마음을 털어놓는 건 내 쪽이었고 은정이 너는 가만가만 듣기만 했어. 그러니까 너와 나 사이에 비밀이 없다는 건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몰라. 은정이 네가 어떤 마음 상태였는지 나는 도무지 알 턱이 없었고, 알려고 하지 않았으니 말이야. 내 이야기를 하느라 너무 바빠서 너를 챙기지를 못했어. 그럼에도 넌 아쉬운 소리 하나 없었지. 은정이 너는 늘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람이었어. 그것도 진심을 다해.
이런 점에서도 우린 너무나도 다르구나.
내가 다른 사람의 말을 너무 안 듣고 내 말만 하고 살아서 저주에 걸린 건 아닐까?
지금 나와 살을 부대끼고 살고 있는 우리 집 남자들은 말이야. 애들 아빠와 두 아들말이야. 이 남자들은 정말 소름 끼치도록 자기밖에 모르는 족속들이야. 글쎄 나는 집안일하느라 바빠 죽겠는데 그 와중에 셔츠가 다림질이 안 되어있네, 골프채는 어디다가 놔뒀느냐고 묻질 않나, 한 놈은 또 운동화 빨래를 왜 안 해놨냐고 투덜거리지. 정말 화딱지가 난다니까? 천불이 터져서 언젠가는 소리를 빽 지른 적도 있는데 그랬더니 자기네들끼리 서로 눈빛 교환을 하면서 나를 무슨 갱년기 환자 취급을 하더라니까?
정말 지겨워. 똑같은 마트에 가서 찬거리를 한다고 나 홀로 장을 보고, 별반 다를 것도 없는 고만고만한 반찬을 만들고 나면 하루가 홀랑 다 가있어. 후다닥 저녁거리를 만들고 가족들이 돌아오면 대화 없는 식사를 시작하지. 그다음엔 설거지를 하고 더러워진 화장실을 청소하고. 이 모든 것이 정말 내가 꿈꿔왔던 삶이었을까? 변기에 떨어진 오줌 자국을 보면서 오늘도 참을 인을 몇 번을 새겨 넣었는지 몰라. 바뀌지 않을 것들에 끝없이 잔소리하는 삶이 나에게 다가올 미래란 걸 알았더라면, 절대 이 삶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거야. 제 발로 지옥엘 찾아왔으니 앞으로 인생에 남은 낙이라고는 정말 하나도 없지 싶어. 구질구질한 삶에 미쳐서 날뛰거나 포기하거나, 둘 중에 하나일 거야.
은정아,
나의 은정아.
왜 그렇게 가버린 거야? 방랑벽이 있는 네가 지구로는 만족하지 못할 거라 생각을 한 적은 있어. 그래서 언젠가는 분명 우주에도 갈 거라고 생각했지. 그때에도 은정이 네가 돌아와서 나에게 무중력 체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겠지?라는 생각을 막연히 했던 것 같아. 그런데 너는 어디로 떠나버린 거니? 이혼한 지뢰남 소식은 잘만 내 귀에 들리는데 왜 은정이 너의 소식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 걸까. 혹시 내가 너무 떠들어서 질려버린 거니? 아니면 너를 가두는 새장을 드디어 파괴하고 진정한 평화가 있는 그 너머의 세상으로 가버린 거니?
불교에서 삶은 고통이라고 말하더라.
고통에 울부짖으면서도 삶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어쩌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를 토하면서도 살아있고 싶은 게 인간의 고약한 운명이지 않을까 싶어. 이런 인생을 꾸역꾸역 이어가고 있는 나 역시 아직 인간의 삶 속에서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나 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무언가를 말이야. 어리석게도 말이야.
이건 집착일까, 아니면 희망일까? 두 단어는 동전의 양면처럼 착 달라붙어 있는 것 같기도 해. 은정아, 나의 은정아. 너와 나는 너무 다르면서도 정말 잘 맞아서 항상 착 달라붙어있었는데. 동전의 양면처럼 말이야. 그런데 이제 네가 없는 삶을 살아야 하니 내 마음엔 채울 수 없는 큰 구멍이 뚫린 것 같아. 그곳은 네가 바라던 그런 곳이니? 오늘은 정말 은정이 네가 보고 싶은 하루구나. 거기에서 너의 마음이 가는 대로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바라고 또 바랄게.
너의 친구 난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