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빛은 결코 서두르거나 무례하게 오지 않는다.

새벽과 단테 사이 그 어디쯤

by 달숲작가

커피 마시며 단테 — Coffee with Dante

# 21

새벽과 단테


새벽은 아직 이름이 없는 시간이다.

밤이라고 부르기엔 이미 어둠이 물러서고 있고, 낮이라고 부르기엔 아직 빛이 세상의 윤곽을 다 그리지 못했다. 그 경계의 틈새,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그 애매한 숨결의 시간. 새벽은 세상이 가장 솔직해지는 순간이다.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으므로 아무것도 꾸밀 필요가 없는 시간. 어제의 무게는 아직 어둠 속에 잠들어 있고, 오늘의 소음은 아직이다.


단테는 새벽의 비밀을 아는 자였다.

그에게 연옥의 새벽은 태양이 떠오르는 단순한 물리적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영혼이 가장 맑은 수면을 드러내며 깨어나는 시간, 비로소 천사의 날개짓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내면이 고요해지는 신성한 틈새였다. 순례자는 그 푸르스름한 박명 속에서 예지적인 꿈을 꾸었고, 이슬 맺힌 길을 따라 산을 올랐으며, 어스름을 뚫고 내려온 새벽빛 속에서 구원의 인도자를 마주했다.


새벽은 어둠의 잔재와 빛의 전조가 서로의 몸을 섞는 찰나의 시간이다. 그 모호하고도 투명한 경계 위에서 인간의 의식은 비로소 가장 깊은 심연에 닿는다. 밤새 앓았던 고통은 서늘한 공기에 씻겨 내려가고, 다가올 빛에 대한 열망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기도가 되어 피어오른다.

· · ·


연옥에서 단테는 세 번의 꿈을 꾼다.

그리고 세 번 모두 새벽에 꾼다.

단테는 고대의 전통을 알고 있었다. 낮의 열기가 완전히 식고 아직 아침의 빛이 닿지 않은 그 시간, 새벽 직전의 그 서늘한 어둠 속에서 꾸는 꿈은 다른 꿈들과 다르다. 더 선명하다. 더 진실에 가깝다. 몸의 감각이 잠들어 있는 동안 영혼이 홀로 깨어 말을 건네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낮의 열기가 달의 차가움을
더 이상 데울 수 없는 그 시간,
점성술사들이 동쪽 하늘에서
새벽이 오기 전 대운이 떠오르는 것을 보는 그 시간,
나는 꿈속에서 말을 더듬는 한 여인을 보았다.

— 단테, 『신곡』 연옥편 제19곡


아리스토텔레스와 키케로, 그리고 마크로비우스까지—고대의 현자들은 입을 모아 새벽의 꿈을 예언이라 일컬었다. 그것은 신의 계시이기 이전에, 영혼이 가장 순수하게 자신을 투영하는 거울이었기 때문이다.


단테는 그 유구한 지혜의 전통을 이어받아 연옥의 세 가지 꿈을 모두 새벽의 들녘에 배치했다. 영혼의 정화가 가장 치열하고도 깊숙이 일어나는 찰나. 낮의 의식이 견고하게 쌓아 올린 이성의 방어막이 잠시 느슨해진 사이, 그 무너진 틈새를 타고 서늘한 진실이 스며드는 시간이다. 새벽은 영혼이 더 이상 자신을 속이지 못하는, 생의 가장 솔직한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우리의 꿈은 이미 알고 있다. 우리가 낮 동안 무엇을 그러한 척했는지, 그리고 사실은 무엇을 그토록 간절히 갈구하며 아파했는지를. 새벽의 꿈은 그 가식의 껍질을 벗겨내고 우리 앞에 가장 날 것의 '나'를 데려다 놓는다.

· · ·


저녁과 새벽은 닮은 쌍둥이다. 저녁은 낮이 죽는 시간이고, 새벽은 밤이 죽는 시간이다. 둘 다 무언가의 끝이자 무언가의 시작이다. 항해자들이 저녁에 고향을 그리워하듯, 새벽에는 밤새 꾸었던 꿈의 나라가 그리워진다.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가 죽어가는 하루를 애도하듯, 새벽의 첫 새소리는 사라져가는 밤을 배웅한다.


이미 그 시간이었다, 항해자들의 그리움을 돌이키고
그날 다정한 벗들에게 작별을 고한 이들의
마음을 여리게 하는 그 시간,
멀리서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가
죽어가는 하루를 애도하는 것처럼 들릴 때.

— 단테, 『신곡』 연옥편 제8곡


단테는 이 경계의 시간이야말로 인간의 감각이 가장 날카로운 끄트머리에 닿는 때임을 간파했다.

수평선 너머로 아스라이 멀어지는 육지를 바라보는 항해자의 지독한 그리움, 낯선 길 위에서 홀로 저녁 종소리를 듣는 순례자의 아픔, 그리고 정든 벗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돌아선 자의 형언할 수 없는 여린 마음들. 낮의 견고한 일상이 단단하게 두르고 있던 방어의 껍질이 속절없이 벗겨져 나가는 그 순간, 억눌려 있던 모든 감정은 일제히 수면 위로 솟구친다.


새벽은 하루 중 가장 살갗이 얇고 여린 시간이다. 무방비하게 노출된 그 영혼의 살결 위로 세상의 모든 미세한 진동이 물결처럼 밀려든다. 가장 연약해진 자만이 가장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는 역설.

그 서늘한 박명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내가 무엇을 그토록 아쉬워했는지, 무엇이 내 가슴을 이토록 시리게 저미고 있었는지를.

· · ·


연옥산을 오르는 단테의 등 뒤에서 태양이 타오른다. 그림자가 앞에 생긴다. 단테의 그림자. 연옥의 영혼들은 그림자가 없다. 빛이 그들을 통과한다. 그러나 단테에게는 그림자가 있다. 살아 있는 몸이 빛을 막는다. 영혼들이 그것을 보고 놀란다. 저 사람은 살아 있다고. 빛을 막는 몸을 가지고 있다고.


뒤에서 붉게 타오르는 태양이
내 앞에서 꺾여 있었다,
내 형체가 그 빛살을 막고 있었기에.

— 단테, 『신곡』 연옥편 제26곡


새벽빛은 결코 서두르거나 무례하게 오지 않는다.

그것은 눈을 멀게 하는 한낮의 폭력적인 광채와는 다르다. 등 뒤에서, 혹은 아주 비스듬한 각도로 스며들어 어둠 속에 잠겨 있던 세상의 윤곽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깨울 뿐이다. 그 빛은 아직 만물의 세세한 무늬까지 다 보여주지는 않는다. 여전히 많은 것은 그림자 속에 숨어 있고, 풍경은 안개에 젖어 흐릿하다.


그러나 새벽빛은 '모든 것'을 밝히는 대신 '단 하나'를 가리킨다. 바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이 희미한 빛은 삶의 모든 수수께끼를 풀어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다음 걸음을 어디에 디뎌야 할지, 내가 서 있는 이 진흙탕에서 어떻게 빠져나와 별을 향해 걸을 수 있는지를 일러주기엔 충분하다.


완전하지 않기에 더욱 간절한 빛. 그 빛은 우리에게 길을 잃지 않을 만큼의 최소한의 용기를 건네며, 우리가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도록 묵묵히 지켜봐 줄 뿐이다.

· · ·


새벽은 고백이 가능한 시간이다. 낮에는 말하지 못했던 것들이 새벽에 입을 연다. 연옥의 다섯 번째 층,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위그 카페. 카페 왕조의 시조. 그는 어둠 속에서 고백한다. 나는 악한 뿌리였다고. 변명하지 않는다.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말한다. 있는 그대로.


나는 악한 나무의 뿌리였다,
온 기독교 땅을 그늘지게 하여
좋은 열매가 거의 맺히지 않는 그 나무의.

— 단테, 『신곡』 연옥편 제20곡


새벽은 세상을 향한 모든 문이 닫히고, 나를 향한 단 하나의 문이 열리는 시간이다.

태양의 명징한 빛이 대지를 점령하기 전, 그리고 세상의 무수한 시선들이 깨어나 나의 외곽을 규정하기 전. 그 푸르스름한 어스름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위선의 옷을 벗고 가장 정직해진다.


우리에겐 낮을 견뎌낼 체면이라는 갑옷이 있고, 밤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선 나 자신조차 잃어버리는 막막함이 있다. 하지만 새벽은 다르다. 세상은 여전히 깊은 잠의 침묵 속에 잠겨 있고 오직 나만이 깨어 있는 그 기적 같은 고립 속에서, 우리는 생전 처음 마주하는 '진짜 나'와 독대한다.


새벽 거리를 가로지르는 이들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해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의 표정 위엔 낮의 활기나 밤의 피로 대신, 가공되지 않은 영혼의 날것이 그대로 흐르고 있다. 아직 타인에게 보여줄 표정을 채 고르지 못한, 꾸밈없는 영혼의 민낯들.


새벽은 그토록 날것의 시간이다. 세상이 들이미는 잣대로부터 해방되어, 오직 자신의 심장 소리에만 귀 기울일 수 있는 단 하나의 성소(聖所). 그 서늘한 공기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내가 아닌, 온전한 '나'로서 첫 숨을 내뱉는다.

· · ·


단테의 연옥에서 천사는 새벽에 온다. 빛보다 빠르게. 예고 없이. 새벽 바다, 연옥의 해변, 수평선 너머에서 빛이 온다. 천사가 배를 몰고 온다. 영혼들을 싣고. 그 움직임이 어떤 상상도 능가할 만큼 빠르다. 새벽빛보다 더 빠르게. 그 빛이 너무 강해 단테는 눈을 감아야 했다. 베르길리우스도 눈을 가렸다. 그 빛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냥 받아들이는 것밖에.


나는 꼭대기에서 하얗게 빛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너무도 빠르게 오는 것을,
그 움직임이 어떤 상상도 능가할 만큼.

— 단테, 『신곡』 연옥편 제2곡


새벽에는 예고 없이 오는 것들이 있다. 수평선 너머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첫 빛처럼. 새벽 공기를 가르며 들려오는 첫 새소리처럼. 잠들어 있던 세상이 한 순간에 깨어나는 그 찰나처럼. 그것들은 준비한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그냥 온다. 그리고 그것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은 새벽에 깨어 있는 사람뿐이다.

새벽에 깨어 있다는 것은 그 예고 없는 빛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 · ·


새벽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시간이다.

인류가 처음 눈을 떴을 때도 새벽이었을 것이다.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오는 그 순간을 처음 본 인간은 무엇을 느꼈을까. 두려움이었을까. 경이였을까. 아마도 둘 다였을 것이다. 새벽은 언제나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품고 있다. 단테는 그 시간을 알았다. 연옥의 순례자는 새벽에 꿈을 꾸고, 새벽에 산을 오르고, 새벽빛 속에서 천사를 만났다. 새벽은 그에게 정화가 가장 깊이 일어나는 시간이었다. 진실이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시간이었다.


오늘도 새벽이 온다. 어제와 같은 새벽이지만 어제와 다른 새벽이다. 밤새 쌓인 것들을 안고, 아직 시작되지 않은 하루를 품고, 별들을 빛 속으로 돌려보내며. 새벽은 매일 새로 쓰이는 첫 문장이다.


커피가 아직 따뜻하다. 새벽이다.


달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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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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