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결국 무언가를 '향해' 사랑하는 과정이다.

사랑의 안과 밖 사이 단테 어디쯤

by 달숲작가

커피 마시며 단테 — Coffee with Dante

# 20

사랑의 안과 밖 사이


사랑은 두 개의 표정을 지닌 야누스다.

사랑이라는 뜨거운 태풍의 눈 속에 거할 때, 그것은 나의 우주이자 유일한 진실이 된다. 온 세상이 그 빛깔로 물들어 다른 풍경이 끼어들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나 그 밖으로 걸어 나올 때, 비로소 사랑의 가냘픈 실체가 투명하게 드러난다. 그것이 얼마나 작고 초라한지, 세찬 바람에 얼마나 위태롭게 흔들리는 섬이었는지, 그리고 그 안온함이 얼마나 아찔한 벼랑 끝의 유희였는지를.


단테는 연옥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사랑의 해부학자가 되었다.

그는 지옥의 불길 속에서 사랑의 처참한 파국을 목도했고, 천국의 찬란한 빛 속에서 사랑의 지고한 완성을 보았다. 하지만 정작 그가 사랑의 심장 소리를 들은 곳은 연옥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보았다. 사랑이 어떤 뿌리에서 움트고 어느 방향으로 가지를 뻗는지, 그리고 그 순수한 열망이 어떤 순간에 고결한 덕이 되고 어느 찰나에 무거운 죄로 침전하는지를.

· · ·


연옥의 한가운데, 베르길리우스가 단테에게 말한다. 모든 것은 사랑에서 온다. 덕도 죄도. 사랑이 없는 존재는 없다. 창조주도 피조물도. 그러므로 죄는 사랑의 부재가 아니다. 사랑의 왜곡이다. 잘못된 것을 사랑하거나, 올바른 것을 너무 많이 사랑하거나, 너무 적게 사랑하는 것.


창조주도 피조물도, 아들아,
사랑 없이 존재한 적이 없다,
본능적이든 의지적이든. 너도 그것을 안다.

— 단테, 『신곡』 연옥편 제17곡


· · ·


베르길리우스의 낮은 목소리는 이어진다.

태초부터 각인된 본능적 사랑에는 결코 허물이 없다.

허기가 지면 빵을 갈구하고, 목이 마르면 샘을 찾듯, 아름다운 것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그것은 죄도, 오류도 아닌 그저 존재하는 생의 박동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의지'라 부르는 사랑의 영역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이야기는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린다. 우리가 선택하고 가꾸는 사랑, 그것은 때로 눈먼 과녁을 향하고, 때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뜨겁게 타오르거나 허무할 정도로 차갑게 식어버리는 오류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본능적 사랑은 언제나 오류가 없다.
그러나 의지적 사랑은 잘못된 대상으로,
혹은 너무 강하거나 너무 약한 힘으로 오류를 범할 수 있다.

— 단테, 『신곡』 연옥편 제17곡


사랑이라는 안개 속에 매몰되어 있을 때, 우리는 흔히 '사랑이 나를 시켰다'고 항변하며 자신의 선택을 지워버리곤 한다. 그러나 사랑은 결코 명령하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거창한 핑계 뒤에 숨어, 결국 선택의 칼자루를 휘두른 것은 나 자신이었음을 깨닫는다.


나는 사랑의 노예가 아니라, 내 사랑의 향방을 결정하는 유일한 목격자이자 책임자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 · ·


사랑은 불꽃을 닮아, 나누어 가질수록 결코 줄어들지 않는 신비를 품고 있다.

이 역설적인 진리를 온 마음으로 믿는 자만이 비로소 소유라는 사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랑의 바다를 유영할 수 있다. 연옥의 계단에서 천사는 단테의 좁은 시야를 깨우치며 속삭인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유한한 땅의 재물처럼 여긴다. 누군가 더 많은 파이를 가져가면 내 몫이 줄어들 것이라는 공포, 그 결핍의 환상이 질투라는 풀무를 돌려 우리 가슴에 뜨거운 한숨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하늘의 문법은 다르다. 사랑은 나눌수록 소모되는 자원이 아니라, 서로를 비추며 증폭되는 빛이다.


너희의 욕망이 나눔으로 줄어드는 곳을 향하기에
질투가 풀무질하여 한숨을 만든다.
그러나 사랑이 너희의 욕망을 위로 향하게 한다면
그 두려움이 너희 가슴에 없을 것이다.

— 단테, 『신곡』 연옥편 제15곡


나의 부끄러운 손바닥을 펼쳐 본다. 행여 잃어버릴까, 나누면 닳아 없어질까 두려워 사랑을 꼭 움켜쥐고 있던 날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가두어 둔 사랑은 생명력을 잃고 굳어버린다. 흐르지 않는 물이 고여 썩어가듯, 고립된 사랑은 결국 스스로를 죽이는 독이 된다. 사랑은 흘러야 한다. 누군가에게 닿고, 다시 그에게서 튕겨 나와 세상의 모든 모서리를 비추어야 한다. 사랑의 안감 속에 숨어 그것을 독점하려 할 때 우리는 사랑을 잃는다. 오직 사랑의 바깥으로 기꺼이 그 빛을 흘려보낼 때만, 우리는 죽지 않는 불꽃의 주인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 · ·


사랑이 머무는 곳이 곧 그 사람의 지도가 된다. 단테는 연옥의 열일곱 번째 노래에서 인간의 시원적 갈망을 응시한다. 모든 영혼은 안개 속을 걷듯 막연하게나마 하나의 선(善)을 감지하며, 그 빛 안에서 영혼이 비로소 안식하기를 꿈꾼다. 인생이란 결국 무언가를 '향해' 사랑하는 과정이다. 그 지향하는 방위가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이자 삶의 전부가 된다.


모든 사람은 막연하게 하나의 선을 감지하고
그 안에서 영혼이 쉬기를 바라며 욕망한다.
그래서 모두가 그것에 닿으려 애쓴다.

— 단테, 『신곡』 연옥편 제17곡


나의 사랑은 지금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가.

흩어진 글자들을 불러 모으는 일, 누군가의 영혼이 깃든 문장을 정성껏 수집하는 일, 책장 사이의 적막 속에서 길을 잃는 일. 그것이 나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북극성이다. 이 길이 정답인지, 혹은 막다른 골목인지 지금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방향을 향해 매일 한 걸음씩 내딛는 행위 자체가 내가 뜨겁게 박동하는 살아 있음의 유일한 증거라는 사실이다.


나의 사랑이 가리키는 방향을 정직하게 대면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항로를 결정하는 사랑 밖의 시선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곧 나의 운명이 된다.


· · ·


사랑의 무게가 영혼의 등을 짓누를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사랑이 독이었음을 깨닫는다.

연옥의 다섯 번째 층계, 그곳에는 차가운 흙바닥에 얼굴을 대고 미동조차 하지 못한 채 엎드린 영혼들이 있다. 그들이 생전에 품었던 사랑은 본래 추한 것이 아니었다. 재물을 아끼고, 권력을 탐하며, 안온한 삶의 성벽을 쌓던 그 마음의 시초는 아마도 생에 대한 지독한 애착이었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적당함이라는 경계를 잃어버렸다. 땅의 것들을 전부라 믿으며 너무 무겁게 사랑한 대가로, 그들은 이제 영원히 땅만을 바라보아야 하는 수치의 수의를 입게 된 것이다.


그들은 초록 망토 아래
너무도 큰 수치와 너무도 큰 고통으로 걸어갔다.
그 수치가 내 마음을 조여들게 했다.

— 단테, 『신곡』 연옥편 제19곡


· · ·


마침내, 연옥의 긴 순례가 마침표를 찍는 성스러운 물가에 당도한다. 단테는 연옥산의 정상에서 두 줄기의 강물을 마신다. 과오의 기억을 씻어내어 망각의 저편으로 흘려보내는 레테와, 메말랐던 선의 기억에 다시 숨을 불어넣는 에우노에. 그 신성한 세례를 마친 뒤, 시인은 선언한다.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새순을 틔워낸 어린 나무처럼, 이제 막 돋아난 연두색 잎사귀의 활기를 품고 다시 태어났노라고.


나는 가장 거룩한 물결에서 돌아왔다.
새로운 잎으로 새롭게 된
어린 나무들처럼 다시 태어나
순수하게, 별들을 향해 오를 준비가 되어.

— 단테, 『신곡』 연옥편 제33곡


새로운 잎으로 새롭게 된 어린 나무. 그것은 상처가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상처가 난 바로 그 자리에서 기어이 새살이 돋아나 시련의 흔적마저 생의 무늬로 치환해버린 경이로운 생명력이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빈터에서만 비로소 자라날 수 있는 가장 고결한 초록이다.


나는 여전히 연옥의 어느 중간 층계에 멈춰 서서 숨을 고르는 순례자다. 잘못된 대상에게 쏟았던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고, 비뚤어진 사랑의 각도를 바로잡으며, 너무 단단히 쥐어 진물이 나던 손가락을 하나씩 천천히 펴는 중이다. 사랑의 안감 속에 머물며 위로받는 것과, 그 겉감의 거친 질감을 만지며 성찰하는 것. 이 안과 밖의 경계를 부단히 횡단하는 일 자체가 곧 삶이라는 커다란 유동임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마주한 환희와 통증을 한 줄의 문장으로 기록하는 일, 그것이 바로 내가 세상을 향해 뻗는 가장 정직한 가지이자 글이라는 이름의 생존 방식이다.


달 숲

— 20 —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9화질투는 타인을 향하는 것 같지만, 결국 자신을 죽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