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겸손 사이 단테 그 어디쯤
커피 마시며 단테 — Coffee with Dante
# 18
너무 크게 보아도 안 된다. 너무 작게 보아도 안 된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 — 그것이 평생의 과제다. 단테는 그것을 알았다. 그래서 연옥의 첫 번째 층을 교만한 자들의 자리로 만들었다. 산을 오르려면 가장 먼저 이것을 통과해야 한다. 자신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는 한, 한 발도 오를 수 없다. 단테가 연옥편 10곡, 11곡, 12곡을 통째로 교만에 바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교만은 모든 죄의 어머니다. 그리고 어쩌면 — 가장 고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자신의 교만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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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의 첫 번째 층 벽에는 겸손의 이야기들이 새겨져 있다. 단테가 그 앞에 섰을 때, 조각들이 너무나 생생하여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썼다. 살아 있는 것 같았다고. 수태고지의 마리아가 있었다. 천사 앞에서 고개를 숙인 자. 신의 어머니가 되는 순간, 그녀가 한 말은 이것이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가장 높은 자리가 주어지는 순간, 가장 낮은 자세를 취했다. 다윗 왕은 언약궤 앞에서 왕의 옷을 벗고 맨발로 춤을 추었다. 왕비가 창문에서 그것을 보며 경멸했다. 그러나 다윗은 멈추지 않았다. 황제 트라야누스는 전쟁터로 나가는 길에 말에서 내렸다. 아들을 잃은 한 과부가 고삐를 잡았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눈물로 기다린 평화의 선언을 가지고
땅으로 내려온 천사가,
우리 앞에 새겨진 그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여
부드러운 몸짓으로 새겨진 그 형상은
침묵하는 조각상처럼 보이지 않았다.
— 단테, 『신곡』 연옥편 제10곡
겸손을 나약함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마리아는 나약하지 않았다. 다윗은 나약하지 않았다. 트라야누스는 나약하지 않았다. 그들은 강했다. 그리고 그 강함이 있었기에 낮아질 수 있었다. 진짜 강한 자만이 낮아질 수 있다. 약한 자는 낮아지는 것이 두렵다. 더 낮아질까봐. 그러나 강한 자는 낮아져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겸손은 약자의 굴복이 아니다. 강자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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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는 무거운 돌을 등에 진 자들 사이에서 오데리시를 알아보았다.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세밀화가로 불렸던 사람. 그는 고개를 숙인 채 걷고 있었다. 단테가 묻는다. 당신이 오데리시가 아닌가. 그는 답한다. 그렇다. 그러나 이제 볼로냐의 프랑코가 나보다 낫다. 살아 있을 때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온 마음이 위대해지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다고. 그리고 오데리시는 말한다. 치마부에가 회화의 왕이었다. 이제 조토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시에서는 구이도 귀니첼리가 있었다. 이제 구이도 카발칸티가 그를 밀어냈다.
오, 인간의 능력이여, 그 헛된 영광이여!
거친 시대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꼭대기의 푸름이 얼마나 짧게 머무는가!
치마부에는 회화에서 자신이 왕이라 믿었다.
이제 조토가 그 명성을 차지했고
치마부에의 명성은 어두워졌다.
— 단테, 『신곡』 연옥편 제11곡
오데리시는 단테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한 구이도가 다른 구이도에게서 언어의 영광을 빼앗았다. 그리고 어쩌면 둘 모두를 둥지에서 몰아낼 자가 이미 태어났는지도 모른다고. 나는 그 시선이 보인다. 당신도 언젠가 밀려날 것이라고. 당신의 명성도 바람이라고. 단테는 그것을 알면서 썼다. 자신도 언젠가 잊힐 것임을. 그럼에도 썼다. 나도 쓴다. 매일 쓴다. 그리고 가끔 묻는다. 이 글이 남을까. 누가 읽을까. 기억될까. 오데리시의 말이 그 질문에 답한다.
명성을 위해 쓰지 마라. 명성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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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의 첫 번째 층 바닥에는 교만의 최후가 새겨져 있다. 교만한 자들이 걸으며 밟고 지나가야 하는 것들. 루치페로가 있었다. 가장 아름답고 가장 높은 천사. 신과 같아지려 했던 자. 번개처럼 떨어진 자. 니오베가 있었다. 자신의 열네 자녀가 신의 자녀들보다 낫다고 자랑했던 자.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화살에 모두 잃은 자. 아라크네가 있었다. 아테나보다 베 짜기를 잘한다고 자랑했던 자. 거미로 변한 자.
오 니오베여, 얼마나 슬픈 눈으로
너는 네 일곱 아들과 일곱 딸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는가!
— 단테, 『신곡』 연옥편 제12곡
니오베는 자신의 자녀들을 사랑했다. 그 사랑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사랑을 자랑으로 바꾸었다. 내 자녀들이 신의 자녀들보다 낫다고. 그 순간 사랑은 교만이 되었다. 그리고 교만은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앗아갔다. 나는 생각한다.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이 언제 사랑에서 교만으로 넘어가는가. 그 경계가 어디인가. 니오베는 그 경계를 넘었다. 그리고 알았다. 너무 늦게. 교만은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무기로 삼는다. 그것이 교만의 잔인함이다.
나는 보았다,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
고귀하게 창조되었던 그가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 단테, 『신곡』 연옥편 제12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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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한 자들은 무거운 돌을 등에 지고 걷는다. 어떤 자는 돌의 무게에 짓눌려 무릎이 가슴에 닿을 것처럼 구부러져 있다. 고개를 들 수 없다. 앞을 볼 수 없다. 땅만 보며 걷는다. 살아 있을 때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던 자들이. 자신이 가장 높다고 생각했던 자들이. 단테는 그들을 보며 멈추었다. 그리고 자신도 그 무게를 느꼈다.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며 솔직해졌다. 나도 교만하다. 글을 쓰면서 교만하다. 더 잘 쓴다고 생각할 때. 누군가의 글을 읽으며 속으로 비교할 때. 인정받고 싶을 때. 그것이 교만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잘 보지 못한다.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 때문이다. 자존심이라고. 기준이라고. 소신이라고.
타인의 교만은 잘 보인다.
자신의 교만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교만이 가장 고치기 어려운 이유다. 자신의 이마에 새겨진 것은 스스로 볼 수 없다. 누군가 말해주어야 안다. 그리고 지워졌을 때 — 몸이 가벼워진 것으로 안다.
오만과 겸손은 서로 반대편에 있지 않다.
더 잘 보일수록 겸손해진다. 흐릿하게 볼수록 교만해진다. 단테는 연옥의 첫 번째 층을 통과했을 때 이마의 P 하나가 지워졌다. 그리고 몸이 가벼워졌다. 나는 그 가벼움이 어떤 것인지 안다. 오래 붙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았을 때의 그 가벼움.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 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 비교를 멈추었을 때. 그 순간 몸이 가벼워진다.
글
달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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