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가 우리를 안아 더 나은 자리로 옮긴다.

어머니 티테스와 단테 신곡 사이 어디쯤

by 달숲작가

커피 마시며 단테 — Coffee with Dante

# 16


어머니 테티스와 단테

잠든 아이를 안아 바다를 건넌 어머니,
그리고 깨어나면 낯선 곳에 있는 자


단테는 연옥의 첫 밤에 꿈을 꾼다.

연옥편 제9곡. 단테는 연옥 전정의 계곡에서 잠이 든다. 그리고 꿈속에서 독수리 한 마리가 나타난다. 황금빛 깃털, 날개를 활짝 펼친 채 하늘에 떠 있다가 단테를 낚아채 불 속으로 날아오른다. 단테는 타는 것 같은 열기 속에서 깨어난다. 그런데 깨어보니 — 자신이 다른 곳에 있다. 연옥의 진짜 입구 앞이다.


베르길리우스가 설명한다. 잠든 사이에 성 루치아가 단테를 안아 이곳까지 데려왔다고. 그리고 단테는 이 장면을 이해하기 위해 하나의 신화를 불러온다. 테티스.

테티스가 아들을 케이론에게서 숨기려
스키로스 섬에 감춘 것처럼,
그리스 군대가 무장하고 나타났던 그 밤에.

— 단테, 『신곡』 연옥편 제9곡


테티스. 바다의 여신.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그녀는 아들이 트로이 전쟁에서 죽을 운명임을 알았다. 그래서 어린 아킬레우스를 스키로스 섬에 숨겼다. 여자아이 옷을 입혀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게. 잠든 아이를 안고 바다를 건너 숨긴 어머니. 단테는 이 신화로 자신의 꿈 장면을 설명한다.

· · ·


모성의 계보 — 신화에서 신학으로

Ⅰ테티스 — 운명을 거스르는 밤의 포옹, Teti · 연옥편 제9곡의 직접 비유


연옥편 제9곡, 단테는 깊은 잠에 빠져든다. 이때 그는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를 떠올린다. 아들의 비극적인 죽음을 막기 위해, 잠든 아이를 품에 안고 밤의 바다를 건너 스키로스 섬으로 숨어들었던 비장한 모성. 비록 운명을 완전히 되돌리지는 못했으나, 자식을 사지(死地)에서 빼내어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는 그 간절한 '옮김의 사랑'은 연옥의 문턱에서 다시 재현된다.

신화의 시작점 — 유한한 어머니의 절박한 사랑


Ⅱ성 루치아 — 은총이 나르는 잠의 여정, Santa Lucia · 테티스의 신학적 대응


잠든 단테를 안아 연옥의 입구까지 실어 나른 존재는 성 루치아이다. 그녀는 테티스의 신화적 행위를 신학적 은총으로 변주한다. 인간이 고통과 피로에 지쳐 잠든 사이, 즉 스스로의 의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순간에도 신의 은총은 어머니처럼 우리를 안아 더 높은 곳으로 옮겨 놓는다. 눈을 떴을 때 이미 구원의 문턱에 와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단테가 경험한 은총의 모성이다.

신화의 변주 — 인간이 모르는 사이 작동하는 은총


Ⅲ 베아트리체 — 여정을 설계한 보이지 않는 손, Beatrice · 여정의 설계자


이 모든 여정의 시작점에는 베아트리체가 있다. 그녀는 지옥의 벼랑 끝에 선 단테를 구하기 위해 베르길리우스를 보낸 설계자이다. 아이가 위험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움직이는 어머니처럼, 그녀는 멀리 하늘 위에서도 단테의 발걸음을 살핀다. 때가 되면 직접 나타나 엄하게 꾸짖으면서도 끝내 눈물을 닦아주는, 그녀는 단테에게 구원의 이정표이자 영원한 사랑의 인도자이다.

사랑의 완성 — 멀리서 보살피다 직접 나타나는 자


Ⅳ 성모 마리아 — 연옥을 흐르는 자비의 원형, Santa Maria · 연옥의 덕의 모범


연옥의 모든 테라스에서 가장 먼저 불리는 이름은 마리아이다. 교만의 언덕에서는 가장 겸손한 여종으로, 분노의 연기 속에서는 온유한 어머니로 등장하며 정화의 기준이 된다. 그녀는 연옥의 모든 영혼이 닮아야 할 덕의 원형이며, 신화 속 테티스가 가졌던 유한한 사랑을 무한한 자비로 승화시킨 절대적인 모성의 상징이다.

모성의 정점 — 유한한 사랑이 무한한 자비로


신화의 어머니가 아들을 숨기려 했다면,
신학의 어머니들은 단테를 빛의 세계로 드러내기 위해 안고 달린다.
이 지극한 돌봄 속에서 단테의 영혼은 비로소 단단해진다.

· · ·


연옥편 제9곡의 꿈 장면은 단테 전체에서 가장 신비로운 장면 중 하나다.

독수리의 꿈은 무엇인가. 학자들은 독수리를 은총의 상징, 또는 세례의 상징으로 해석한다. 뜨거운 불 — 그것은 정화의 불이다. 그 불 속에서 깨어난 단테는 이미 변해 있다. 잠든 사이에 무언가가 일어났다.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 안겨서 옮겨진 것이다.

이제 태양은 저 지평선에 다다랐으니,
그 정오의 원이 예루살렘을
가장 높은 꼭대기로 덮는 곳에.

— 단테, 『신곡』 연옥편 제9곡


단테가 꿈에서 깨어났을 때의 시각 묘사다. 태양이 예루살렘의 정오를 가리키는 자리에 있다. 단테는 정확한 천문으로 시간을 새긴다. 아침이다. 새로운 하루다. 잠든 사이 옮겨진 자가 눈을 뜨는 아침. 어머니의 팔에서 내려놓인 아이가 처음으로 발을 딛는 아침.

· · ·


테티스는 비극의 어머니다. 아들의 죽음을 알면서도 막지 못했다. 그러나 단테가 이 어머니를 소환한 것은 그 비극을 반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테티스가 한 행위의 순수함 때문이다. 잠든 아이를 안는다. 바다를 건넌다. 더 안전한 곳에 내려놓는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다. 어머니만 안다.


단테는 이것을 은총의 비유로 사용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가 잠든 사이, 무언가가 우리를 안아 더 나은 자리로 옮긴다. 우리는 깨어나서 낯선 곳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 있다. 더 높은 곳에. 더 빛 있는 곳에.

모르는 사이 옮겨진 것들이 있다.
깨어보면 어제보다 높은 곳에 있는 아침처럼.

· · ·

단테는 연옥편 전체에서 어머니의 이미지를 반복한다. 테티스, 루치아, 베아트리체, 마리아. 그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단테를 안는다. 설명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고, 그냥 안아서 데려간다. 그것이 어머니의 방식이다.


단테가 피렌체에서 추방당했을 때 그의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는 고향도, 가족도, 어머니도 없이 유랑했다. 연옥의 어머니 이미지들이 그토록 따뜻한 것은 — 어쩌면 그가 평생 그리워한 것을 글 속에 새겨 넣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밤의 서리에 고개 숙이고 오므라들었던 작은 꽃들이,
태양이 그것들을 희게 비추면
줄기 위에 활짝 펴서 곧추서는 것처럼.

— 단테, 『신곡』 연옥편 제2곡


연옥편 초반에 등장하는 이 비유가 내게는 테티스의 이야기와 겹쳐 보인다. 밤의 서리에 고개를 숙이고 오므라든 꽃. 그것이 태양을 받아 활짝 피는 것. 잠들고 숙여진 것이 깨어나 펼쳐지는 것. 어머니가 안아 옮긴 아이가 아침에 눈을 뜨는 것처럼.


나는 오늘 아침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모르는 사이 누군가 나를 안아 여기까지 데려온 것들이 있지 않을까. 잠든 사이 일어난 일들. 내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일어난 변화들. 아프고 나서 달라진 것들. 실패하고 나서 생긴 것들. 어쩌면 그것들이 테티스의 팔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모르는 사이, 나를 안아 조금 더 높은 곳에 내려놓은.


단테는 잠에서 깨어나 자신이 연옥 입구 앞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왔는지 몰랐지만, 여기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깨어난 것이다. 아침이 온 것이다. 태양이 예루살렘의 정오를 가리키는 자리에 있었다.


오늘 아침, 눈을 뜨면 어제와 다른 곳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를.


밤의 서리에 오므라들었던 꽃이 태양을 받아 피어나듯 —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달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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