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타인을 향하는 것 같지만, 결국 자신을 죽인다.

편애와 질투 사이 단테 그 어디쯤

by 달숲작가

커피 마시며 단테 — Coffee with Dante

# 19

편애와 질투 사이


타인의 행복이 나의 고통이 되는 순간, 사랑은 이미 질투가 되어 있다


사랑은 공평하지 않다. 부모는 자식을 똑같이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음속 어딘가에는 더 많이 기울어진 쪽이 있다. 친구도 그렇다. 스승도 그렇다. 신도 그렇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왜 저 사람에게는 더 많이 주는가. 왜 나에게는 이것뿐인가. 그 질문이 편애를 만든다. 그리고 편애는 질투를 만든다. 단테는 연옥의 두 번째 층을 질투한 자들의 자리로 만들었다. 교만을 정화한 자들이 다음으로 마주하는 것.

자신을 정확하게 보는 것을 배운 뒤, 이제 타인을 어떻게 보는가를 배워야 한다.

나는 그 층을 읽으며 오래 멈추었다. 나도 그 층 어딘가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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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는 질투를 사랑의 부재로 보지 않았다. 사랑의 왜곡으로 보았다. 질투는 타인이 가진 것을 잘못 사랑하는 것이다. 타인의 행복을 보며 자신의 불행을 느끼는 것. 타인의 성공이 자신의 실패처럼 느껴지는 것. 그것이 질투다. 그러므로 질투를 치료하려면 사랑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방향을 바로잡아야 한다. 타인의 것을 향하던 눈을 거두어 자신의 것을 향하게 하는 것.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우리는 언제나 옆을 본다. 비교한다. 그리고 질투한다.


창조주도 피조물도, 아들아,
사랑 없이 존재한 적이 없다,
본능적이든 의지적이든. 너도 그것을 안다.

— 단테, 『신곡』 연옥편 제17곡


모든 것은 사랑에서 온다. 덕도 죄도. 질투도 사랑에서 온다. 다만 그 사랑이 잘못된 곳을 향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생각한다. 내가 질투할 때, 나는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 그 사랑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그 질문이 질투를 치료하는 첫 번째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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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의 두 번째 층에서 단테는 그림자들을 보았다. 그들의 눈꺼풀은 철사로 꿰매어져 있었다. 볼 수 없었다. 앞도 옆도 볼 수 없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기대어 걸었다. 눈 먼 자들처럼. 벽에 몸을 기대어 걸었다. 살아 있을 때 너무 많이 보았던 자들. 옆을 보고, 비교하고, 타인의 것을 탐내었던 자들. 이제 그들은 볼 수 없다. 몸이 기억하게 한다. 보는 것이 어떻게 질투를 만드는지를.


내게는 사람들로 가득 찬 길을
걷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바라보았고
눈꺼풀이 꿰매어진 그림자들을 보았다.

— 단테, 『신곡』 연옥편 제13곡


눈에서 시작된다. 질투의 치료는 눈을 감는 것이 아니다. 보는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 눈을 감아야 할 때가 있다. 철사로 꿰매어진 눈꺼풀처럼. 잠시 보지 않는 것. 비교를 멈추는 것. 그것이 치료의 시작이다.

질투는 눈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치료도 눈에서 시작된다. 보는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 · ·


단테가 천사에게 묻는다. 왜 나누면 줄어드는가. 천사가 답한다.

너희는 나눔이 줄어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은 나눌수록 늘어난다.

불꽃이 그렇듯이. 하나의 불꽃에서 천 개의 불꽃을 피워도 처음 불꽃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믿지 못한다. 저 사람이 더 많이 받으면 내가 덜 받는다고 생각한다. 저 사람이 사랑받으면 내가 덜 사랑받는다고 느낀다. 편애받는다는 느낌이 거기서 온다.


너희의 욕망이 나눔으로 줄어드는 곳을 향하기에
질투가 풀무질하여 한숨을 만든다.

— 단테, 『신곡』 연옥편 제15곡


나는 생각한다. 내가 편애받지 못한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있다. 부모에게. 스승에게. 세상에게. 그 느낌이 어디서 왔는가. 타인이 받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 것을 줄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은 나눌수록 늘어난다. 그것을 믿는 것이 질투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다. 믿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믿지 않으면 — 질투의 풀무는 계속 한숨을 만든다.

· · ·


연옥의 두 번째 층에서 목소리들이 들린다. 겸손의 예들이 외쳐진다. 가나의 혼인 잔치.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마리아가 말한다. 그들에게 포도주가 없다고.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인의 필요를 먼저 본 자. 오레스테스와 필라데스. 서로 자신이 죽겠다고 다투었던 자들. 타인의 생명을 자신의 것보다 귀하게 여긴 자들. 그리고 질투의 예들도 외쳐진다. 카인의 목소리.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리라. 아글라우로스. 헤르메스가 자신의 언니를 사랑하는 것을 질투하여 돌이 된 자.


타인의 선을 사랑하지 않은 자는 스스로를 죽인다.
이제 알라, 그 반대도 마찬가지임을,
타인의 선에 지나치게 굴복하는 자도.

— 단테, 『신곡』 연옥편 제14곡


나는 카인의 목소리에서 멈추었다. 카인은 아벨이 편애받는다고 느꼈다. 신이 아벨의 제물을 받고 자신의 제물을 받지 않았다고. 그 편애의 느낌이 질투가 되었다. 그리고 질투가 살인이 되었다. 편애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얼마나 깊은 상처를 만드는가. 카인의 이야기가 그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상처가 치료되지 않으면 —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향해 칼을 든다. 질투는 타인을 향하는 것 같지만, 결국 자신을 죽인다.

· · ·


구이도 델 두카는 고백한다. 나는 질투로 불타올랐다. 타인이 기뻐하는 것을 보면 내 피가 끓었다. 타인의 행복이 나의 고통이었다. 그것이 나의 죄였다고. 나는 이 고백에서 오래 앉아 있었다. 솔직한 고백이었다. 변명하지 않았다. 설명하지 않았다. 그냥 말했다. 나는 질투했다고.


나는 라틴인이었고 위대한 토스카나인의 자손이었다.
나는 구이도 델 두카였다. 질투로
내 피가 그토록 불타올랐다.

— 단테, 『신곡』 연옥편 제14곡


구이도는 지금 연옥에 있다. 정화되고 있다. 질투를 고백하는 자는 이미 질투에서 한 발 물러선 자다. 자신의 질투를 보는 것. 그것이 자유의 시작이다. 타인의 성공이 나의 실패가 아님을 아는 순간 — 눈꺼풀의 철사가 풀린다.

자신의 질투를 고백하는 자는 이미 질투에서 한 발 물러선 자다. 보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다.

· · ·


질투는 나를 갉아먹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성공을 기뻐하지 못하게 했다. 타인의 행복을 함께 누리지 못하게 했다. 단테는 그 층을 걸으며 눈꺼풀이 꿰매어진 자들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도 그 무게를 느꼈다. 이마에 새겨진 두 번째 P.

사랑은 나눌수록 늘어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 질투는 사랑이 없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 잘못된 방향을 향할 때 생긴다. 그러므로 치료는 사랑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눈을 들어 옆을 보는 것이 아니라 — 앞을 보는 것.


자비로운 자는 복이 있나니.
질투의 층을 통과할 때 천사가 부르는 노래

— 단테, 『신곡』 연옥편 제15곡


오늘 아침, 나는 누구의 행복을 함께 기뻐할 수 있는가.


달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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