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단테 신곡 사이 어디쯤
커피 마시며 단테 — Coffee with Dante
# 22
우리가 감각하는 시간은 때로 깊은 늪처럼 정체되고, 때로 잃어버린 기억을 향해 역류하며,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가 되어 우리를 집어삼킨다. 단테가 《신곡》의 세계를 통과하며 목격한 것은 바로 이 시간의 서로 다른 표정들이었다.
지옥의 시간은 영원히 닫힌 감옥이다. 그곳에서 시간은 숨을 멈추고 고착되었으며, 고통은 재생되는 악몽처럼 같은 자리를 맴돌 뿐이다. 그러나 연옥으로 들어서는 순간 시간은 비로소 생동하기 시작한다. 그곳의 시간은 정화를 향한 준엄한 흐름이며, 한 층계를 오를 때마다 영혼의 얼룩을 씻어내는 회복의 리듬이다. 그리고 마침내 천국에 당도했을 때, 개별적인 시간들은 거대한 빛의 바다, 즉 영원 속으로 감미롭게 녹아든다.
단테는 하나의 여정 안에서 이토록 상이한 세 종류의 시간을 살았다. 그것은 영혼이 감당해야 할 무게와 방향이 달라지는 존재론적 변이였다. 지옥의 납덩이 같은 시간, 연옥의 땀방울 섞인 시간, 천국의 깃털 같은 시간. 시간의 질감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삶의 형상을 이해하는 일이다. 내가 지금 지옥의 침묵 속에 있는지, 연옥의 물살을 거스르고 있는지, 혹은 영원의 찰나를 예감하고 있는지 아는 것. 단테는 그 시간을 읽어냄으로써 인간의 삶이 지닌 숭고한 궤적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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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아치형 문에 새겨진 준엄한 선언, "희망을 버려라"는 사실 다른 말로 "시간을 버려라"는 명령과 같다. 희망이란 본래 시간의 지평 위에서만 피어나는 꽃이다. '지금'의 고통이 '나중'의 환희로 치환될 것이라는 믿음, 그 간절한 내일의 존재가 비로소 우리 안에서 시간을 흐르게 한다. 그러나 지옥에는 그 어떠한 '나중'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썩은 물처럼 고여, 단 한 뼘의 변화도, 단 한 점의 정화도 허락하지 않는 영원한 오늘의 반복일 뿐이다.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 단테, 『신곡』 지옥편 제3곡
지옥의 영혼들은 저마다 가장 뜨거웠던 생의 한 단면에 박제된 채 영원을 산다. 프란체스카는 파올로와의 그 치명적이었던 사랑의 찰나에 영원히 결박되어 있고, 율리시스는 오만한 탐구의 항해를 멈추지 못한 채 같은 파도 위를 맴돈다. 그들은 달라지지 않으며, 달라질 수도 없다. 변화를 동력 삼는 시간이 그곳에서는 숨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나아가지 못하는 시간, 어제가 오늘을 집어삼키고 오늘이 내일을 거부하는 그 정지의 순간들이 바로 우리 영혼이 갇힌 차가운 소용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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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의 기슭에서 영혼들은 일제히 멈춰 서서 단테를 응시한다. 그들의 눈동자를 뒤흔든 것은 시인의 등 뒤로 길게 늘어진 검은 그림자였다. 빛을 가로막는 단단한 몸, 그리고 그 몸이 증명하는 살아 있음의 증거. 연옥의 영혼들에게 그 그림자는 단순한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지나온 삶과 다가올 내일이 공존하는 시간의 궤적에 대한 경외였다.
'보라, 왼쪽에서 오는 저 사람의 빛이 비치지 않는 것을,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처럼 움직이는 것을!'
— 단테, 『신곡』 연옥편 제3곡
연옥의 영혼들은 간절히 시간을 기다린다. 그들에게 시간은 지옥의 죄인들이 그토록 갈구했으나 끝내 허락받지 못한 유일한 구원이자 희망이다. 한 층계를 오를 때마다 영혼의 얼룩이 엷어지는 정화의 리듬, 그리고 마침내 천국의 문턱에 닿을 수 있다는 나중의 약속. 그들에게 시간은 정체된 형벌이 아니라,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찬란한 유동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곧 시간이라는 거대한 강물 위에 배를 띄운 것과 같다. 어제의 허물을 오늘 씻어낼 수 있고, 오늘의 상처가 내일의 흉터로 아물 수 있다는 것. 이 변화의 가능성이야말로 생이 우리에게 준 가장 눈부신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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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벼랑 끝에서 돌이킨 영혼들이 고백한다. 그들은 마지막 숨을 내뱉는 그 순간까지 어둠의 자식이었으나, 단 한 번의 눈짓으로 쏟아져 들어온 빛이 그들의 영원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노라고. 그 찰나의 마주침이 지옥의 정지된 시간에서 그들을 건져 올려, 비로소 기다림이라는 이름의 살아 있는 시간 속에 안착시켰다.
우리는 모두 폭력으로 죽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죄인이었다.
그때 하늘의 빛이 우리를 깨우쳐
뉘우치고 용서하며 하느님과 화해하여 이 삶을 떠났다,
그분을 보고자 하는 열망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아.
— 단테, 『신곡』 연옥편 제5곡
연옥의 영혼들은 이제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서 있다. 그 기다림이 몇 세기에 걸칠지, 그 고독의 깊이가 얼마나 아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에겐 지옥의 죄인들이 끝내 갖지 못한 결정적인 위안이 있다. 바로 이 기다림에 끝이 있다는 확신이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파동도 없는 정지된 침묵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서는 씨앗이 단단한 땅껍질을 뚫기 위해 제 몸을 부풀리듯 가장 치열하고 깊은 변혁이 일어난다.
기다림은 그저 견디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가올 빛을 향해 자신을 투명하게 갈고 닦는 능동적인 정화의 과정이다. 시간은 기다리는 자에게 가장 공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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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의 길목에서 피아 데 톨로메이는 단 세 줄의 문장으로 자신의 전 생애를 요약한다. 비대해진 슬픔을 쏟아놓을 법도 한데, 그녀는 장황한 곡소리 대신 서늘한 요약만을 건넨다. 남편의 배신과 마렘마의 눅눅한 습지에서 스러져간 고독한 죽음. 그녀는 억울함을 호소하기보다 오직 한 가지만을 당부한다. 나를 기억해 다오. 그 짧은 청원 속에는 한 존재가 세상에 머물다 간 마지막 온기가 서려 있다.
"나를 기억해 다오, 나는 피아라오.
시에나가 나를 만들었고, 마렘마가 나를 망쳤다.
그것을 아는 이는 그의 보석 반지로
먼저 나와 약혼했던 그 사람이라오."
— 단테, 『신곡』 연옥편 제5곡
그녀가 시에나에서 보낸 찬란한 봄날도, 마렘마의 늪지에서 증발해버린 비극적인 생도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 자취를 감추었고, 그녀의 육신은 오래전 흙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 무정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결코 씻겨 내려가지 않은 것이 있다. 그것은 단테의 준엄한 문장 속에 새겨진 그녀의 이름이며, 그 문장을 더듬는 수많은 타자의 가슴속에 일어나는 작고 낮은 떨림이다.
우리의 생 또한 흐르고 흘러 결국은 사라지겠지만, 누군가의 기억 속에 새겨진 그 흔적들이야말로 우리가 한때 이 별에서 뜨겁게 숨 쉬었음을 증명하는 시간의 또 다른 이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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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가장 밑바닥, 얼어붙은 코키토스 호수에서 루시퍼가 그 기괴한 위용을 드러낸다. 단테는 그 공포의 정점을 목격하는 순간을 서두르지 않는다. 마치 짙은 안개가 서서히 걷히듯, 멀리서 거대한 풍차의 날개가 느릿하게 회전하며 다가오듯, 두려움의 실체는 아주 천천히 시인의 망막 위로 번져간다.
짙은 안개가 걷힐 때처럼,
혹은 우리 반구에 밤이 내릴 때처럼,
멀리서 바람에 돌아가는 풍차처럼 보이듯,
그때 나는 그런 구조물을 본 것 같았다.
— 단테, 『신곡』 지옥편 제34곡
두려움의 시간은 한없이 지체되고 비대해진다. 우리는 누구나 경험으로 안다. 고통스러운 순간은 영원처럼 늘어지고, 환희의 순간은 찰나의 불꽃처럼 명멸한다는 것을. 시계 바늘은 일정한 속도로 원을 그리지만, 우리 영혼이 감각하는 시간의 밀도는 저마다 다른 무게를 지닌다. 단테에게 지옥의 한 시간은 납덩이처럼 무거워 발목을 잡았고, 연옥의 한 시간은 정화의 땀방울과 함께 조금씩 가벼워지며 위를 향해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빛의 근원에 닿았을 때, 시간이라는 낡은 개념은 영원의 광휘 속으로 완전히 소멸해버렸다.
사랑의 방향이 곧 시간의 방향이다. 집착에 갇혀 있을 때 시간은 지옥처럼 멈추고, 성장을 향해 나아갈 때 시간은 연옥처럼 흐르며, 비워진 마음으로 존재할 때 시간은 비로소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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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가장 지고한 정점, 시선이 마침내 빛의 근원에 닿았을 때 단테는 우주의 경이로운 비밀을 목격한다. 온 우주에 낱장으로 흩어져 떠돌던 모든 순간들이, 단 한 권의 책 속에 정교하게 제본되어 있음을. 그 책의 이름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그곳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는 더 이상 선후를 다투지 않는다. 모든 시간이 좁쌀보다 작은 하나의 점 속에 응축되어 동시에 맥동하는 곳, 그것이 바로 영원의 실체다. 영원은 시간이 소멸한 진공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유한한 감각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모든 시간이 가장 찬란하게 폭발하며 공존하는, 시간의 완전한 밀집이자 완성이다.
그 깊은 곳에서 나는 보았다,
사랑으로 한 권의 책 속에 묶여
우주에 흩어진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을.
— 단테, 『신곡』 천국편 제33곡
단테는 그 장엄한 광경을 인간의 혀로 옮기려다 끝내 좌절한다. 그것은 보았으나 기억할 수 없고, 깨달았으나 설명할 수 없는 지고의 신비였다. 꿈에서 깨어난 이의 머릿속에서 줄거리는 신기루처럼 사라져도 가슴엔 여전히 뜨거운 박동이 남듯이, 단테의 영혼에는 오직 그 빛의 감각만이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남았다. 《신곡》이라는 백 년의 대서사시는 결국 그 찰나의 감각을 복원하기 위해 바쳐진 고귀한 흔적들이다.
지옥에서 납덩이처럼 멈춰있던 고통의 시간도, 연옥에서 땀 흘리며 거슬러 올랐던 정화의 시간도, 결국은 이 거대한 사랑의 책 속에 묶여 제 자리를 찾아간다. 고통도, 기다림도, 환희도 결국은 같은 저자가 쓴 하나의 문장이었음을 깨닫는 것. 그것이 단테가 우리에게 건네는 마지막 위로다.
커피가 아직 따뜻하다. 지금 이 순간도 그 책의 한 페이지다.
글
달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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