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쓰다 Apr 01. 2024

목련이 피길 기다렸지

매일 창밖으로 노란 산수유꽃을 보며 목련이 피기를 기다렸다. 내가 사는 지역은 개나리보다 목련이 많다. 개나리가 봄의 전령이라고들 하지만 집 주변엔 개나리보다 목련이 많아 어느샌가 나는 목련을 봄의 전령으로 여기게 됐다. 올해 목련은 예상과 달리 늦게 얼굴을 드러냈다. 목련이 지고 나면 벚꽃이 피었던 것 같은데 올해는 벚꽃보다 조금 앞서 피는 정도다. 그러면 어떤가. 안 잊고 얼굴 보여주면 됐지. 그저 감사하다. 하얀 목련은 깨끗하면서도 탐스럽고, 자목련은 화려하고 신비롭다. 벚꽃이 봄이라는 계절이 주는 설렘과 행복을 만끽하게 하며 봄의 절정을 장식하는 것에 비해, 목련은 금세 피었다 지는 것으로 봄날이 그리 길지 않으면서도 꽤 쓸쓸한 계절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다. 여기에 아직 찬기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밤에 떨어지는 꽃잎은 그야말로 처연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 어렸을 때부터 3월을 좋아하지 않았다. 봄이라기엔 쌀쌀한 날씨, 새 학년 새 학기의 낯섦과 적응으로 31일은 다른 달의 31일 보다 2배는 더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중년에 맞이한 이번 3월은 좀 달랐다. 마음에 한가득이었던 찬기운이 덜해지면서 뭔지 모를 따뜻함을 안고 차분하게 시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내 조용하게 숨죽이고 있던 만물이 기지개를 켜면서 맞이하는 3월은 1월과는 또 다른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달이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둔 부모라면 으레 그렇듯 나도 새 학년이 시작되는 이 때에 아이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기를 바라다보니 긴장도 되고 설레기도 했다. 방학이라 정신없던 2월과는 또 다르게 뒤숭숭하고 바빴지만 아이가 학교생활에 조금씩 적응을 해나가니 나 또한 몸과 마음이 점차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을 느꼈다.



1. 새로운 출발이라는 점에서 3월에는 몸과 마음을 재정비하고 싶었다. 지난 몇 달 여러 가지 일로 힘들었던 마음이 요동치지 않고 고요했으면 했다. 그러기 위해 일주일에 이삼일은 30분 정도 스트레칭을 하고 주말에는 남편과 만보 걷기를 했다. 주위도 돌아보고 남편과 이런저런 얘기도 하며 빠르게 동네 주변을 걸었다. 골반과 다리가 묵직하고 뻐근했지만 아픈 만큼 머리는 비워지고 마음은 가벼워졌다. 요즘은 처음 시작할 때 없던 꽃구경도 하니 좋았다. 날씨가 허락하고 시간만 오케이라면 부부싸움을 하지 않는 한 휴일에는 남편과 만보 걷기를 하기로 했다. 혹 부부싸움을 한 날은 각자 실컷 욕하면서 다른 길로 걸으면 된다.

이미지 출처: pixabay


해가 지날수록 체력이 중요하는 것을 느낀다. 마음도 체력을 따라가는지 오래되고 낡은 마음에는 열정도 없고 의지도 없고 끈기도 없어 자꾸 의기소침해지고 게을러지고 그만하고 싶은 생각이 많아진다. 눈에 보이는 노화도 신경이 쓰이지만 보이지 않는 몸속 노화가 마음도 갉아먹나 보다. 열정적이지만 강하고 흔들리지 않는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을 갖고 싶다. 만보 걷기로 마음 편안해짐을 맛보았으니 4월엔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는 꾸준함을 장착할 수 있게 힘써보려 한다.


2. 강제로라도 글을 쓰기 위해 연재북을 시작했다. 그동안 쓰려면 얼마든지 쓸 수 있었을 텐데 상황을 탓하며 글을 쓰지 않았다. 글이 쓰고 싶어 시작한 브런치인데 그동안 뭘 먹고 있었던 걸까? 글을 써도 안 써도 별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니었다. 양치하고 입 안을 헹구지 않은 것처럼 찝찝한 기분은 영 별로였다. 안 써도 편하지 않다면 강제로라도 쓰는 환경을 만드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기 전에는 두렵지만 쓰기 시작하면 다 잊게 되고 오로지 글과 나만 생각하는 이 일이 너무 좋았다. 그래 잘했다. 그래서 일단 일주일에 한편은 꼭 쓰기로 했다.


3. 이번 달은 아이와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기로 마음먹었었다. 하고 싶은 말을 반으로 줄이고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기로 했다. 학교를 가니 물리적 거리가 생겨 심리적 거리도 자연스레 생겼지만 아직은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는다. 거리 유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가 서로 기분만 상한 적이 여러 날이다. 매일매일 반성하고 다짐을 한다. 말없이 뒤에 서있다가 도움을 요청할 때 힘이 되어 주는 엄마가 되기 위해 4월에는 마음을 더 갈고닦아야 한다는 것을.



돌아보니 3월은 아이의 새 학년 준비로 긴장은 됐으나 예년과 다르게 혼란스럽거나 불안하지 않았다. 개학 덕분이었을까. 내일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면서 몸과 마음을 재정비할 수 있었다. 재정비를 위해 사브작사브작 조금씩 일을 시작하되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러면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에너지도 충전할 수 있었다. 마치 겨울나무들이 죽은 것 같지만 안으로 양분을 비축하고 있다가 봄이 되면 움을 틔우는 것처럼 나도 그런 시간을 보냈다.


반면 적극적인 모습은 부족했다. 준비가 다 되면 시작하자는 마음은 자꾸 시기를 뒤로 늦추고 있었다. 특히 글쓰기가 그랬다. 또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두려워 자꾸 머뭇거렸다. 하고는 싶은데 내가 할 수 있을까, 잘할 수 있을까를 매번 새로운 것을 맞닥뜨릴 때마다 매번 하고 있었다. 좀 덜 고민하고 마음이 가는 일이라면 일단 시작해 보겠다.(결혼해 보니 장단점을 분명하게 너무도 잘 알 수 있듯이 안 해보면 알 수 없지 않나. 어차피 안하면 안한대로 미련은 남을테니.)


4월에도 운동, 연재북 발행일 지키기, 독서, 아이와 좋은 관계를 이어가기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아침 기상 시간을 30분 앞당기기 위해 전날 밤에 '일찍 자기'이다. 참 무던히 안 되는 것 중의 하나다. 다시 다이어리 4월 계획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힘주어 빨갛게 동그라미를 치며 열흘만이라도 시간을 지켜보기로 수백 번째 다짐을 해 본다. 

 

점점 날씨가 따뜻해지면 벚꽃이 만개할 것이다. 더불어 내 마음에 움튼 싹도 자라겠지. 그렇지만 싹이 빨리 자랄지 더디게 자랄지 어떻게 자랄지 잘 자랄지 미리 걱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조바심 내지 않고 3월 목련이 피길 진득하게 기다렸던 마음처럼, 4월에는 벚꽃 속에서 고요하고 차분한 마음을 유지하며 천천히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내디뎌 보련다.


이미지 출처: pixabay




*상단 이미지 출처: pixaba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